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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은 얼어버렸고, 사료통은 깨끗히 비었다. 오른쪽의 흰색강아지는 이미 죽어있고 살아남은 녀석들도 지쳐보인다
ⓒ 정민규

지난달 27일 오전 10시, 쌀쌀한 아침 공기를 가르며 경기도 광주 퇴촌면에 위치한 한 애완견 사육 농장에 도착했다. 이날 한국동물구조관리협회(이하 동구협. 대표 이덕재)는 '주인이 보살피지 않아 개들이 집단으로 폐사했다'는 제보를 받고 출동했고, 기자는 이들과 동행했다.

이곳에는 발목에 빠질 만큼 눈이 쌓여있었지만, 동구협 사람들의 발자국 외에 다른 사람들의 행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적어도 한파가 닥쳤던 지난 며칠 동안 사람의 보살핌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농장 담 주위에는 광견병을 옮기는 것으로 알려진 너구리 등의 야생동물 발자국도 보였다. 이 상태에서 개들이 과연 무사할 수 있을까? 아니나다를까. 농장 입구부터 피골이 상접한 세퍼드 한 마리가 눈 위에 누워있었다.

자세히 보니 3마리가 엉겨 붙어있다. 아마도 추위를 피하기 위해 같이 붙어 자다가 얼어죽은 모양이었다. 농장 구석구석을 살펴보니 우리 밑에도, 우리 안에도, 심지어 불법으로 설치한 소각로에도 타다만 개 사체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많을 때는 60마리까지 키웠다는 이 사육장에서 살아남은 개는 불과 10마리 정도였다.

▲ 생후 한달도 되지 않은 것 같은 강아지들도 죽어 있다.
ⓒ 정민규
그래도 간밤에 동구협 사람들이 와서 일부 사체를 수습한 게 이 정도였다. 처음 발견했을 당시는 어림잡아 30여 마리가 죽어있었다고 한다.

인근의 다른 개 사육장 주인은 "낮에 우리 집 개 먹이 주다 보면 옆 집 개들이 사료 냄새를 맡고 짖곤 했는데 어느 날부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면서 "설 연휴 이전부터 눈이 계속 쌓여 있었지만 사람이 들어간 발자국이 없었다. 하지만 남의 집이어서 가 볼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한참 현장을 살펴보고 있는데 사육장의 주인 나모(38)씨가 나타났다. 남한산성 근처에서 식당을 하고 있다는 나씨는 "사실 시작할 때는 개 값도 잘 쳐줘서 시작했지만 요즘엔 개 값도 떨어지고 가게 수리를 하다보니 신경도 못 썼다"고 토로했다.

나씨는 신고를 듣고 달려온 광주시청과 면사무소 직원 앞에서 "2월 5일까지 정리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씨가 설령 이 약속을 어긴다고 해도 처벌할 규정이 마땅치 않다. 광주시청 축산행정팀 박미남씨는 "개 사육장을 하기 위해서 허가가 필요하지 않다"며 "보통 환경보호과나 농지관리과에서 불법건축물이나 소음, 폐기물(문제)로 처벌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출동했던 동구협 구조대원들이 허기졌을 개들에게 물과 사료를 건네주자 살아남은 개들은 양동이에 가득한 물을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단숨에 먹어버렸다.

장염에 걸렸는지 혈변을 싸놓은 개도 있었다. 오랜 기간 방치돼 전반적으로 건강 상태가 나빠 보였다. 처참한 지경에 처한 개들을 보면서 애가 탄 동구협 구조원들이 "차라리 우리가 돈을 주고 사서 구조해 가겠다"고 애원조로 부탁했지만 주인은 여전히 "그냥 내가 알아서 처리하겠다"는 말만 반복했다.

오랫동안 버려진 개를 구조해왔던 동구협 구조대 임성규 대장은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원래 주인 있는 개는 안 받는 게 원칙이지만 이 경우는 너무 심각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 쇼윈도우에 달라붙어 행인의 눈길을 끌던 강아지들의 모습도, 강아지에 대해 상담하던 손님도 부쩍 줄었다.
ⓒ 정민규
사육장에서조차 개들이 버려지고 있는 것은, TV 등을 통해 귀여운 동물들이 연일 등장하면서 부풀었던 애완견 거품이 식고, 경기가 침체되면서부터라고 한다.

애완동물 시장의 침체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국내 최대의 애완동물시장인 충무로를 찾았다. 한 집 건너 한 집씩 다닥다닥 붙어있는 애완동물 가게들은 무척 썰렁해 보였다.

ㅇ업체를 찾아가 경기가 어떠냐고 물었다. 예전에 비해 손님이 반 정도로 줄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업체 사장은 "단지 경기가 안 좋아서일 뿐 애들이 원하는 선물 1위가 강아지"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버려지는 강아지의 숫자는 제대로 모르는 듯했다.

이어 ㅈ업체를 찾아가 경기가 어떠냐고 물으니 대뜸 "죽겠죠"라고 답한다. 이전에는 못해도 하루에 5~6마리는 팔리고 주말에는 10마리씩도 팔렸는데 최근에는 한 마리도 안 팔리는 날도 있다는 것이다. 버려지는 애완동물에 대해 이 업체 사장은 "특히 수놈 같은 경우에 버리는 경우가 많고, 병이 걸릴 경우 개 값보다 병원 치료비가 비싼 경우가 많다보니 많이 버린다"고 말한다.

인간에게 버림받은 애완동물의 안식처 '양주 동물보호소'

▲ 카메라를 들이대자 물끄러미 카메라를 쳐다본다.
ⓒ 정민규
이렇게 버림받은 애완동물들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최근 들어 버려지는 동물들이 늘어나자 이를 담당하는 각 구청에서는 이런 개들을 처리할 곳을 찾았다. 동구협이 운영하는 동물보호소가 그 중 하나다. 현재 동물보호소에는 서울시내 대부분의 자치구와 경기도 일부 자치단체에서 포획된 동물들이 수용되어 있다.

같은 날 오후 동물보호소를 찾아가 보았다. 직원들이 생활하는 사무실까지 개 냄새와 배설물 냄새가 가득했다. 직원의 도움을 받아 개들이 집단으로 수용된 보호장에 들어가는 순간 냄새에 숨이 '턱!' 막혀왔다. 낯선 사람이 들어오자 사방에서 개들이 짖어대기 시작했다. 개들은 혀로 핥고 꼬리를 흔들며 폴짝 폴짝 뛰어댔다.

한켠에는 서울 시내를 떠돌다 구조대에 포획돼 새로 보호소 식구가 된 개들이 '입소절차'를 밟고 있었다. 이 개들은 목에 포획된 위치 등을 표시한 줄을 메고 건강 진단도 받게 된다. 그나마 이곳에 들어오는 개들은 운이 좋다고 할 수 있다. 보신탕 집으로 팔려가거나 실험용으로 가는 동물들도 있다.

입양을 기다리는 개들을 따로 모아놓은 입양장은 새로 지은 깨끗한 건물이었다. 거기다 깔끔한 동물병원도 신축 중에 있었다. 지금까지는 직원들이 일하는 사무동에서 동물 치료에서부터 입원 치료까지 모든 걸 해왔다. 이마저도 동구협의 관리이사 한 명이 2억원이 넘는 자비를 빌려줘 마련한 것이라고 한다.

▲ 동구협 사무실 한쪽 벽면, 그나마 주인들이 찾으려고 전단지를 보내거나 붙여놓고 가는 경우는 다행이다.
ⓒ 정민규
사무동에 있는 애완동물 병원에는 짖을 힘조차 남아있지 않아 쓰러져서 죽어가고 있는 개들이 우리 안에서 힘없는 눈으로 기자를 바라보았다. 그나마 바닥에서 뛰어 노는 녀석들은 상태가 나아 보였다. 이덕재 소장은 "이곳에 들어오는 개들 95% 이상이 병에 걸려 있다"고 말했다.

앞서 말했듯이 서울시내 대부분의 자치구와 경기도의 몇 개 자치단체에서 포획돼 이곳으로 오는 개들은 월 평균 520마리. 일년에 7천여 마리가 이곳을 거쳐갔다. 이 중에는 좋은 주인에게 간택되어 간 녀석도 있지만 끝내 주인을 만나지 못하면 차가운 병원 침대에서 안락사로 생을 마감한다. 건강이 좋지 못한 개들이 많이 오다보니 자연 폐사도 빈번하다고 한다.

세 명의 수의사가 일주일에 한번씩 동물보호소를 찾아와 진료를 해주는 데 처음에는 수의사들이 안락사를 거부해 사람 구하는 게 무척이나 힘이 들었다고 한다. 30일동안 주인을 찾지 못한 개들은 입양을 기다리게 되고 그래도 안되면 최종적으로 안락사 판정이 내려지게 된다. 개들은 계속 늘어나는데 시설에는 한정이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동구협 임희진 관리부장은 "사는 것이 사는 게 아닌 녀석들을 보고 있으면 안락사가 그래도 나은 방법이지만 직원들이 잘 안하고 싶어해요"라고 말했다.

▲ 목줄이 목을 죄어들어 살이 심하게 썩어있는 개. 구조되지 않았다면 오래가지 못했을 것이다
ⓒ 정민규
그는 또 "주인이 있는 개는 맡지 않는다는 동구협의 기준 때문에 간혹 개 주인들이 개를 맡기는 것을 거절당하면 '그럼 그냥 길에 버리겠다'는 협박조의 이야기도 많이 한다"면서 "이런 전화를 받으면 '차라리 그냥 주인 손에서 안락사를 시켜주세요'라고 주문한다"고 말했다.

임 부장은 또 "개를 키우고 싶다는 사람들은 단지 애들이 조른다고, 남들이 키워보니깐 한번 키워보겠다는 생각은 지양했으면 좋겠다"면서 "적어도 15년 이상 죽을 때까지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만 개를 길렀으면 한다"고 말했다.

임 부장은 "현행 동물보호법으로는 늘어나는 개를 막을 수가 없다"면서 "아무나 번식장을 차려 공장처럼 생산하는 게 아니라 선진국처럼 등록제로 관리해야 하고 사람들의 인식이 변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시민의식 부재 속 유기동물 늘어...관련법은 제자리
미국은 140여년 전부터 애완동물 등록제 실시

지난해 서울시 유기동물 발생건수는 9월(3/4분기)까지만 5500마리에 이른다. 한 개 자치구 당 250마리 정도가 발생했다는 이야기다. 이중 반이 넘는 유기동물이 폐사하거나 안락사 되었고 주인에게 인도된 동물은 불과 120마리 남짓이다.

나머지 유기동물은 일부 입양되거나 기증되었다. 유기동물을 담당하고 있는 일선 자치구의 공무원들도 늘어나고 있다.

강서구청 지역경제과 홍순유씨는 "최근 경기가 안 좋다보니 부쩍 늘었다"며 "동물보호법도 미약하니 처벌도 힘들고 일본처럼 애완동물에 칩을 장착하던지 조치를 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씨는 "유기동물에 너무 많은 예산이 배정되다 보니 윗분들이 인식이 안 좋고, 심지어 삭감되는 구도 있다고 들었다"고 말한다.

한국동물보호협회 금선란 회장은 "기존 동물보호법의 벌칙조항이 너무 미약하다"며 "개정되는 보호법에는 처벌조항도 강화되고 체계적으로 관리할 보호소도 시급하다"고 말한다.

금 회장은 "늘어나는 애완동물을 막기 위해서는 법으로 정해서라도 불임수술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애완동물을 살 때 불임수술을 꼭 받을 것을 당부했다.

하지만 기존 동물보호법의 개정이 쉽지 만은 않아 보인다. 농림부 축산행정과의 한 관계자는 "처벌조항을 강화하는 방안으로 개정을 추진하지만 동물보호단체 측에서 보신탕에 대한 금지규정까지 요청해 난감하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동물보호단체와의 이견이 커 언제쯤 법이 개정될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미국의 경우 1860년부터 애완견에 대한 등록제를 실시했다. 가까운 동물보호소에서 일정 금액의 돈을 내고 등록을 하면 전화번호와 예방접종 유무를 표시하는 인식표를 개 목줄에 달아준다. 미국은 인식표로 유기견을 방지하고 광견병 같은 질환으로부터 시민들의 불안을 감소시키는 1석 2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 정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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