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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7일 오후 1시, 명동성당에서 노숙 투쟁을 하고 있던 평등노조 이주노동자 지부 조합원 80여명은 용산구 한남동에 있는 주한 방글라데시 대사관 앞에서 방글라데시 정부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지난 12월 30일 강제 출국 당한 비두씨와 자말씨가 한국 체류 당시 노조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방글라데시 정부가 이들을 '국제적 범죄자'로 규정, 구금했기 때문이다.

당시 집회가 끝나고 도보로 이동하던 중 경찰 200여명이 이들을 에워쌌고, 곧이어 도착한 법무부 출입국관리소 직원 50여명은 상대적으로 왜소해 보이는 케비(34·네팔)씨와 헉(41·방글라데시)씨의 목덜미를 잡아 차에 강제로 태우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출입국 관리소 직원들은 저항하는 조합원들에게 폭력을 행사했고, 항의하던 성공회 이정호 신부가 길거리에 내동댕이쳐지고 얼굴과 가슴에 발길질을 당했다.

또한 한 출입국관리소 직원이 가스총을 발사해 케비씨와 헉씨가 실신했으며, 이들은 버스에 태워질 때까지 계속해 주먹 세례를 받아야 했다. 이 때문에 두 사람은 각각 가슴과 목에 심한 부상을 입고 연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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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투쟁 이주노동자 '표적 연행' 논란

1월 29일 경기도 화성군 마도면에 있는 출입국관리소 화성 외국인보호소에서 3주째 감금돼 있는 케비씨와 헉씨를 만날 수 있었다.

지난 1월 29일 화성 외국인보호소에서 만난 케비씨와 헉씨. 두 평 남짓한 면접실 중앙에 가로놓여진 두꺼운 유리벽 너머로 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지난 1월 29일 화성 외국인보호소에서 만난 케비씨와 헉씨. 두 평 남짓한 면접실 중앙에 가로놓여진 두꺼운 유리벽 너머로 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 전민성
-한국에 체류하신 지 얼마나 되었나요?
케비: "12년 되었어요."
헉: "8년 되었어요."

-이 곳 생활은 어떤가요?
케비: "밥은 하루 세 끼 먹고 있지만, 말레이시아에서 온 한 친구는 반찬이 입에 맞지 않아 하루에 겨우 한 끼 정도 먹고 있어요."

-연행 당시 상황을 말씀해 주세요.
케비: "연행 때 저는 오른쪽 가슴을 많이 다쳤어요. (오른쪽과 왼쪽 팔을 들어 보이며) 아직도 팔을 들면 여기가 많이 아파요. 8일간 두 가지 약을 주었어요."
헉: "저는 목을 다쳤는데, 지금은 많이 나았어요. (왼손 등 위에 가로로 깊이 패인 상처를 내밀어 보여준다) 처음엔 피가 많이 났어요."

-이 곳에서 가장 힘든 게 뭐예요?
헉: "하루종일 계속 방안에만 있어야 하니까 그게 제일 힘들어요. 지금까지 3주 동안 딱 한 번 10분, 15분 정도 밖에 나가봤어요. 밖에 나가 운동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춥거나 눈이 와서 안 된다며 들어주지 않았어요. 또 투쟁 못하고 있으니까 마음도 안 좋아요."

-방 안의 크기는 어느정도인가요?
헉: (가로 2m, 세로 4m의 면접실 폭을 가리키며) "이 정도 돼요. 이곳에서 네 명이 지내요. 방 안에는 나무 책상이 하나 있어서 거기서 식사를 해요."

-방 안에 창문은 있나요?
헉: (가로 30cm, 세로 20cm 정도의 직사각형을 만들어 보이며) "이 정도 되는 창이 하나, 키 보다 높이 있어요."

-이곳에는 모두 몇 명의 외국인들이 있나요?
케비: "약 200명 정도 있어요. 다른 사람들 모두 방안에만 있으니까 모두 힘들어해요. 스물 여섯 살 먹은 카자흐스탄 친구 한 명은 ‘담배 줘, 소주 줘, 집에 가고 싶어’ 라고 매일 소리를 질러대요."

-한국에 와서 어떤 일을 하셨나요?
케비: "건축일, 금속회사에서 기계, 용접 등의 일을 했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으세요?
케비: "이 곳(외국인보호소)에 오고 얼마 있다 서울 출입국관리소 사람들이 어떤 서류를 갖고 왔어요. ‘아무 문제 없으니, 이곳에 서명하라’고 계속 저를 설득했어요. 결국 저는 서명을 했지만, 나중에 그 서류는 제가 강제출국에 동의한다는 내용이라고 들었어요.

우리가 외국인이라고 거짓말을 했어요. 만약에 네팔에서 외국인에게 거짓말하고 무시하는 행동하면 저는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 약속해요."

경기도 화성군 마도면에 있는 출입국관리소 화성 외국인보호소
경기도 화성군 마도면에 있는 출입국관리소 화성 외국인보호소 ⓒ 전민성
평등노조 이주노동자지부 성수분회 송수진 사무국장에 따르면, 출입국사무소는 외국인 보호소에 있는 외국인들을 출국시키기 위한 한 가지 방법으로 ‘자신이 범법자이며, 강제출국에 동의한다’는 내용의 ‘강제퇴거 명령서’에 서명하도록 요구한다고 한다. 하지만 보통은 그런 내용의 서명이라는 설명도 하지 않고, 또 외국인 본인들이 그 서명을 거부하고 이의신청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사실도 알려주지 않는다고 했다.

또한 변호사를 선임하거나 여권, 체불임금, 산재신청 등 개개인이 처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보호소에 ‘보호’하고 있으며, 법으로 규정돼 있는 야외운동시간조차 지키지 않고 있다고 했다. (2000년 3월 9일 개정된 ‘외국인 보호규칙’은 ‘하루 생활표에는 식사시간·자유시간·운동시간 및 취침시간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제7장 ‘보호 외국인의 생활’ 22조 2항)

이는 국가기관이 ‘잡혀있는 외국인’이라는 스스로 변화할 수 없는 상황을 악용해 저지르는 심각한 인권침해 사례라고 지적했다.

평등노조 이주지부는 지난 1월 19일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앞에서 집회를 갖고, 1월 7일 연행과정에서 일어난 폭행, 가스총 사용 등 인권침해 사례에 대해 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덧붙이는 글 | 현재 명동성당에서 노숙투쟁하고 있는 이주노동자 80여 명은 전기도 나오지 않고 온수도 없는 상태에서 79일 째를 맞고 있습니다. 턱없이 부족한 생필품과 식수이 외에도 산재의 후유증, 추위로 인한 근육통, 감기 등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40만 이주노동자의 권리와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싸우고 있는 이들의 후원계좌는 

농협 386-12-095004 (예금주: 김선희) 입니다. 

싸이트에 격려의 글도 부탁드립니다. 
http://migrant.nodong.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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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동네의 성미산이 벌목되는 것을 목격하고 기사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2005년 이주노동자방송국 설립에 참여한 후 3년간 이주노동자 관련 기사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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