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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우리의 산과 들 어디에서고 시절에 따라 지천으로 나고 죽는 들풀들의 이름을 얼마나 알고 계시는지? 이를테면 며느리밑씻개, 닭의 덩굴, 딱지꽃, 주름잎, 방가지똥, 까마중, 땅빈대, 수까치깨, 왕고들빼기 등등의 이름을 들어보셨는가? 어디 이뿐이겠는가! 수크령, 조뱅이, 괭이밥, 매듭풀, 중대가리풀, 돌콩, 박주가리 덩굴….

<야생초 편지>의 지은이 황대권씨는 조금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전두환 철권통치 시절, 이른바 '구미 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13년 2개월의 무고한 옥살이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는 문화방송이 2001년 6월 8일 방영한 프로그램 <이제는 말할 수 있다>에서 밝혀낸 공안당국 조작사건의 희생자로 중년의 나이에 출옥하였다고 전해진다.

내가 '조금'이라고 쓴 것은 이유가 있다. <인도의 발견>과 <세계역사 이야기>를 쓴 네루. 시집 <조국은 하나다>로 우리에게 친숙한 시인 김남주.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신영복. <고대 문명교류사>로 이 땅의 인문학 분야에 새로운 지평을 연 정수일. 이들 모두가 지은이처럼 이른바 '빵잡이' 출신이다. 그들에게 감옥은 또 다른 학교였다.

어디 이들뿐인가! 영화 <선택>의 주인공 김선명씨는 43년 10개월 동안 옥살이를 함으로써 세계 최장기수 기록을 가지고 있다. (아아! 부끄럽고 또 부끄럽다!) 남아공의 대통령을 지낸 대표적인 인권운동가 넬슨 만델라는 28년 동안 세상과 격리되어 있어야 했다. 러시아의 혁명적인 극작가이자 시인인 블라지미르 마야코프스키 역시 어린 시절 감옥에서 사사하였다.

높다란 장벽과 철조망으로 자유로운 세계와 완전히 절연되어 있는 차가운 유폐의 공간. 그 감옥에서 들풀들을 들여다보며 자신의 인생과 세상을 반추했다는 지은이의 이야기가 잔잔하게 울려나오는 서책이 <야생초 편지>다.

지은이는 우리가 흔히 '잡초'라 부르는 풀들을 '야초'나 '야생초'로 부르면서 잡초에 대한 일상화된 개념을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잡초를 한자로 풀면 "잡스러운 풀"이 됩니다. 학술서적을 뒤져보면 영어로는 수십 가지 정의가 나와요. 그 가운데서 가장 대표적인 정의를 한두 가지 들어보면, "원치 않은 장소에 난 모든 풀들", 또는 "잘못된 자리에 난 잘못된 풀". 대개 이렇습니다. 이것은 풀에 대한 철저히 인간 중심주의적인 정의입니다." (264쪽)

농대를 나온 그의 말에 따르면 지구상에 알려져 있는 식물은 약 35만종이라 하는데, 인간이 재배하여 먹는 식물은 고작 3천종 정도 밖에 안된다고 한다. 이런 수치와 생물종의 다양성 확보 및 유지에 근거하여 지은이는 들풀에 대한 그릇된 규정부터 고쳐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야생초 편지>는 매우 유익하고 재미있는 서책이다. 본래 화가를 꿈꾸었다는 지은이가 꼼꼼하게 그려낸 야생초 그림들이 우선 우리의 시선을 붙든다. 동생에게 보내는 봉함엽서의 글줄들 사이참에 단아하게 그려나간 야생초들의 전신상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콜라병에 거주하는 청개구리나, 마아가린 통에 담긴 선인장 스타펠리아, 고사성어 '당랑거철'로 유명한 사마귀 그림 또한 유쾌하고 매력적이다.

물론 그가 감옥에서 만난 100여 종의 야생초들 가운데 서른 대여섯 종류의 야생초들에 대한 지은이의 설명과 독특한 시각이 독자들에게는 더욱 소중하다. 언제 피어나서, 언제 꽃을 피우고,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인체에 어떤 약효가 있고, 어느 때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지를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서책이 <야생초 편지>인 것이다.

나아가 지은이는 야생초를 식용이나 차로 만들어 마시는 방식까지 설명한다. 한 가지만 예를 들어보자.

"저녁에 끓는 물을 얻어다 살짝 데쳐서 된장에 무쳐놓았다. 이름하여 '들풀모듬'. 먹으면서 세어보니 무려 열네 가지 풀들이 섞여 있더구나. 명아주, 쇠비름, 쇠별꽃, 뽀리뱅이, 부추, 제비꽃, 조뱅이, 꿀풀, 씀바귀, 민들레, 꽃마리, 달맞이꽃, 질경이, 방가지똥." (46-47쪽)

이런 그의 생활방식은 야생초와 더불어 짓는 농사의 가능성과 장점까지로 이어진다. 자연이 필요해서 세상에 내보내 키우는 것이 야생초라 주장하면서 그가 내세우는 이점은 이러하다. '종 다양성 유지, 토양침식과 오염방지, 이산화탄소 증가억제, 환경과 경관미화, 다양한 먹을거리와 풍부한 영양원 확보, 생필품 재료획득, 상실된 개인의 삶에 대한 총체성 회복'.

지은이는 야생초를 들여다보면서 자신의 내부에 자리하고 있는 교만이나 그릇된 자의식을 성찰하고,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노력하는 수행자의 자세도 보여준다. 재배화초에서 드러나는 화려함이나 잘난 척하는 모습이 야생초에는 없다는 것이 지은이의 생각이다. 교만에 사로잡혀 자연의 향기를 잃어가고 있는 현대인에게 감옥의 수인이 낮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경종을 울리고 있는 셈이다.

감옥생활에서 '공동체'와 '생태주의'를 얻었노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따라서 그는 박정희 시절에 이른바 '녹색혁명'을 대대적으로 선전하면서 농민들로 하여금 강제로 통일벼를 심게 한 행위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리고 우리의 토종씨앗 보존이 절실하게 요구된다고 쓰고 있다.

"우리는 이미 박통 시절에 이런 생태적 재앙을 겪었다. 바로 통일벼에 의한 싹쓸이 경작이 그것이지. 통일벼 심기는 새마을 운동과 결합되어 생태적 재앙뿐 아니라, 우리 농촌에 문화적 재앙까지 몰고 왔다. 우루과이 라운드가 타결되어 농산물 시장이 완전히 개방되기 전에 우리는 하루빨리 우리의 토종종자를 보존, 발굴, 연구, 보급하는 체계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106-107쪽)

<야생초 편지>는 지은이의 민중적인 관점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그의 풍부한 서정성과 이웃에 대한 따뜻한 시선, 대한민국 사회의 이런저런 병폐들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도 보여준다. 1.5평의 삭막한 독방에서 기나긴 인고의 삶을 살아야했던 그가 자가치료의 일환으로 시작한 야생초 섭생이 그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우리는 빼놓지 않고 목도할 수 있다.

지은이는 우리에게 필요한 몇 권의 서책을 소개한다. <우리가 알아야 할 우리나무 백 가지>, <약용식물사전>, <나무백과>, <몸에 좋은 산야초>, <산과 들의 계절식물> 등등. 이런 서책들을 읽고 기억하면서 우리의 아름다운 산야로 나간다면 우리는 얼마나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겠는가! 여러분의 일독을 권한다.

덧붙이는 글 | 야생초 편지, 황대권 글과 그림, 도솔, 2003년.


야생초 편지 - 출간10주년 개정판

황대권 글.그림, 도솔(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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