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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릿느릿 박철
찾아온 손님에게 글을 써드려야 한다면서 꼬마들을 달랜 황희가 붓을 들고 글을 쓰자 꼬마들은 병아리 떼처럼 둘러 앉아 조잘댔다. 그런데 가장 어린 꼬마 녀석이 그만 종이 위에다 오줌을 싸고 말았다. 그러자 황희 정승은 "어어, 그놈 급했구나"하면서 옷소매로 쓱 오줌을 훔쳐내고 그냥 글을 죽죽 썼다.

꼬마의 오줌에 젖은 서찰을 받아들고 나온 선비 손님은 하늘을 보면서 황희 정승의 덕은 하늘보다 더 높고 바다보다도 더 깊다고 중얼거리면서 칭송해 마지 않았다.

허주 정승은 깡마른 체구에 허리가 약간 굽어 있었다. 공의 성품은 맑고 한 치의 허물도 없어 틈이 없었다. 언제나 방정한 마음씨로 나라 일을 돌보는 데 전념할 뿐 사사로운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새벽닭이 울면 몸을 깨끗이 하고 의관을 차려 입은 다음 하루의 일을 곰곰이 생각한 후에 등청을 했다.

매사에 빈틈이 없어 나랏일을 벼슬아치들이 적당히 해치울 수가 없었다. 무서운 선생으로 통하기도 하여 경박한 무리들은 허주를 멀리하거나 미워하기도 하였다. 나쁜 사람이어서 미워한 것이 아니라 결함이 너무나 없어서 부러워 미워했다. 그래서 허주는 '깡마른 매'라는 별명을 얻었다. 배가 고파야 사냥을 하지 배가 부르면 달아난다는 매의 성질을 항상 잘못된 일이 없나 하고 찾아 고치려는 허주의 성미에 비유한 셈이다.

허주 정승은 집안에서도 그 법도가 서슬 퍼런 칼날 같았다. 아우나 아들들이 잘못을 범하면 조상에게 고한 다음 매로 다스려 벌을 주었고 집안의 종들이 허물이 있으면 규율에 맞게 벌을 주었다.

등청하기 앞서 반드시 형을 문안하여 조언을 들었고 형을 엄친처럼 모셨다. 형이 아프게 되어 조상의 제를 허주가 올리게 되었다. 형과는 약간 달리 제를 올리게 되자 형은 노발대발하면서 허주를 보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자 밤새도록 문간에 서서 사죄를 해도 형은 용서를 하지 않았다. 그 형에 그 아우였다.

새해에 접어들자 각 정당 대표들이 연두기자회견을 하는데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다. 황희와 같은 덕이 없다. 각 대표들의 몸짓과 말투에서 그리고 그간의 행적에서 이미 탁류(濁流)에 몸을 맡긴 탓으로 신뢰감을 주지 못한다. 자기 생각과 조금 다르다든지 당리당략(黨利黨略)에 따라 막말을 거침없이 내뱉는다. 황희와 같이 큰그릇이 되지 못한다. 남의 실수나 허물도 품을 수 있는 도량을 갖추지 못한 듯하다.

그들은 허주와 같이 잘잘못을 명확히 하고 맺고 끝질 못한다. 뒤가 구리기 때문이다. 무슨 007 영화를 찍는가. 대기업에 압력을 넣어 접선장소에서 만나 '차떼기'로 돈을 갈취하고서도 그것이 오랜 관행임으로 크게 잘못이 없는 것처럼 은근슬쩍 넘어간다. 반성할 태도가 전혀 없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고 말하면서 정작 책임지려는 지도자는 없다. 그들을 선량이요 국민의 공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 느릿느릿 박철
참된 지도자가 없는 시대이다. 어진 지도자가 없는(不仁) 시대에 황희와 허주 같은 사람이 그립다. 황희처럼 인을 베풀며 덕이 있는 사람은 꿋꿋하다. 불의의 시대에 예리한 메스와 같이 의를 행하는 허주 같은 사람도 꿋꿋하다. 사랑이 없는 세상이란 춥고 겨울과 같고 올바름이 짓밟히는 세상 역시 추워 떨어야 하는 겨울과 같다.

한 겨울 청청한 잎을 떨어뜨리지 않고 서 있는 청송을 보라. 얼마나 그 모습이 장한가? 나무 한 그루만도 못한 이가 자기 목소리를 높인다. 무슨 말이 필요한가. 입에서 온갖 구린내를 풍기며 떠드는데 그 말을 들을 자가 있겠는가. 손으로 그 입을 막으라. 더 이상 말의 인플레이션을 부추기지 마라. 요란을 떨지 말고 조용히 하라.

    학교 뒷산 산책하다, 반성하는 자세로,
    눈발 뒤집어 쓴 소나무, 그 아래서
    오늘 나는 한 사람을 용서하고 내려왔다.
    내가 내 품격을 위해서 너를 포기한 것이 아닌
    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것이
    나를 이렇게 휘어지게 할지라도.
    제 자세를 흐트리지 않고
    이 지표 地表 위에서 가장 기품 있는 건목

    (황지우 詩. 소나무에 대한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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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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