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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진뫼마을 앞으로 흐르는 섬진강은 깊게 흐르지 않고 졸졸 소리를 내며 흐를 정도로 강물의 유량이 매우 적습니다. 내 친구들이 처음 우리 마을에 놀러 와서 강을 바라보면 '이게 섬진강이야’ 하며 대부분 큰 실망을 합니다.

우리 마을이 섬진강 상류에 해당하기도 하지만 섬진강 다목적 댐이 마을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는 상류에 위치해 있어서 갈수기 철이면 강바닥만 겨우 적시며 흐르니 큰 강으로 생각하고 왔다가 막상 강을 보고는‘개울물이 졸졸 흐르는 것 같다’고 표현을 합니다.

저 역시도 어릴 적에는 큰 강으로 생각을 하며 자라났는데, 점점 나이가 들다 보니 강폭도 좁게 보여 아주 작은 강으로 보입니다.

▲ 설날 아침. 눈 내린 진뫼마을 풍경
ⓒ 김도수
고향마을 앞에는 강폭과 물의 깊이가 제법 큰 소(沼)를 이룬 곳이 한곳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뱃마당’이라 부릅니다. 대부분 강물이 깊은 곳은 방죽이나 소(沼)라는 지명이름이 붙습니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이 뱃마당이라 부르는 것은 섬진강 다목적 댐이 들어서기 전에 마을 앞으로 제법 큰 강물이 흘렀는데 물이 불어 강을 건너지 못할 때 뱃마당에서 배를 매어 놓고 건너 다녔다 해서 또 강폭이 마당같이 넓다 해서 마을 사람들은 뱃마당이라 불렀습니다.

섣달 그믐날 오후부터 줄기차게 날리는 눈발은 그칠 기미가 없고, 해 그늘 진 강변마을에 매서운 강추위가 몰아치기 시작합니다. 섣달 그믐날 저녁 내내 집집마다 유난히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합니다.

▲ 돌 위에도 꽁꽁 얼음 잡힌 섬진강
ⓒ 김도수
고향마을 집집마다 마루에 새시를 하거나 바람을 막아주는 포장을 쳐서 안방으로 들어오는 외부공기를 1차로 막고 있는데, 우리 집 안방은 문종이 하나에 외부 공기를 단절시키고 사는 집이라 외풍이 심합니다. 보일러를 연속으로 가동을 해서 방안의 공기를 따뜻하게 하려 해도 외풍이 너무 심하니 방바닥만 뜨거울 뿐 얼굴은 차갑기 그지없습니다.

설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마을 앞으로 흐르는 강줄기가 모두다 꽁꽁 얼어붙어 있습니다. 어찌나 추운지 밖에 나갔다 들어와 방문고리를 잡아당기면 손이 찰싹 달라 붙어버릴 정도로 춥습니다.

▲ 고향마을로 설 쇠러 온 아이들이 자매끼리 비료포대로 눈썰매를 타고 있다
ⓒ 김도수
점심을 먹고 오후에 강변으로 산책을 갑니다. 마을에서 유일하게 초등학교에 다니는 희성이가 귀가 떨어져 나갈 듯한 혹한의 칼바람은 가르며 아버지 뒤를 졸졸 따라‘뱃마당’ 쪽으로 달려갑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만든 대형 썰매를 어깨 너머로 걸쳐 메고, 아들은 썰매를 가끔씩 매만지며 얼음 위에서 아빠가 끌어주는 썰매를 이미 타고 있기나 한 듯 환하게 웃고 달립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집에서부터 뛰었는지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내달리는데도 서로 말을 주고 받으며 뱃마당을 향해 힘껏 달려갑니다. 아버지 뒤를 졸졸 따르는 희성이는 오른 손을 위로 번쩍 쳐들더니 점프를 해대며 발걸음도 가볍게 달리고 있습니다.

▲ 콩깍지를 짊어지고 염소 밥을 주러 가는 아랫 집 아저씨
ⓒ 김도수
희성이 아버지는 뱃마당에 도착하여 얼음 위에 올라서기 전, 발뒤꿈치로 쾅쾅 내리 찍으며 얼음을 한번 깨뜨려 봅니다. 얼음은 끄떡도 하지 않고 발뒤꿈치만 아픈지 아버지는 큰돌을 주워 두 손으로 돌을 머리 위까지 올려서 힘껏 내리칩니다. 돌은 얼음장을 뚫지 못하고 내리친 흔적만 남기며 한쪽으로 떼구루루 구릅니다.

“하따 겁나게 뚜겁게 얼어부렀고만. 요로케 큰 독을 내리친디도 끄떡도 안히부네. 야, 희성아! 얼음이 어치게 뚜껍게 얼어부렀더니 자동차가 지나가도 안 꺼지겄다. 빨리 디롸라.”

▲ 눈 내린 진뫼마을 징검다리
ⓒ 김도수
아빠는 아들에게 썰매를 태워주기 위해 앉은뱅이 썰매를 오전 내내 만들어서 뱃마당으로 나온 모양입니다. 희성이가 만면에 웃음을 띄우며 앉은뱅이 썰매에 앉자마자 아빠는 미끄러운 빙판 위를 씩씩거리며 잘도 달립니다. 희성이는 오랜만에 얼음판 위를 달리니 기분이 좋은지 기쁨에 환호성을 지릅니다. 희성이가 기뻐서 지르는 탄성 소리에 얼음판이 놀라 화답을 하는지 여기저기서‘쩍쩍’거리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야, 신난다. 스케트 잘 나가네. 아빠, 더 빨리 달려.”

아버지가 썰매를 한참 끌더니 아버지도 타고 싶은지 아들에게 썰매를 끌어보라고 합니다. 희성이는 아버지가 탄 대형 썰매를 끙끙대며 끌고 나갑니다. 아버지도 좋은지 “야, 빨리빨리 끌어봐.” 계속 독려를 해 댑니다.

▲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빈 집에 눈만 쌓이고
ⓒ 김도수
희성이는 처음 출발 할 때 힘이 드는지 끙끙대며 끌더니 썰매가 일단 출발하자 미끄러지듯 잘도 나가는지 마구 달립니다. 아들이 끄는 썰매에 아빠도 즐겁기는 마찬가지인지 뱃마당이 떠나갈 듯 큰소리를 외쳐대며 즐거워합니다.

“어메! 스케트 잘 나가분것.”

마을에 아이들이 없어서 희성이 친구는 오십 대 초반인 아빠가 유일한 친구입니다. 아빠와 아들 관계가 아닌 둘은 썰매 친구가 되어 뱃마당을 휘저으며 놀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 희성이 친구가 되어 함께 놀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자랐던 어린 시절엔 뱃마당에 얼음이 꽁꽁 잡히면 마을 아이들은 아침밥을 먹자마자 강으로 나왔습니다. 손에는 앉은뱅이 썰매와 팽이, 그리고 비료포대를 들고서 얼음지치기를 하며 놀았습니다.

▲ 문희성 군.
ⓒ 김도수
얼음지치기 중에서 제일 즐거운 것은 앉은뱅이 썰매를 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앉은뱅이 썰매를 만들려면 빙판 위에서 잘 나가도록 두꺼운 철사를 썰매 발통 중앙에 붙여야 했습니다. 그런데 시골에서는 철사 구하기가 힘들어 아이들이 모두 썰매를 만들 수는 없었습니다. 어떤 아이는 썰매가 너무 타고 싶어 집에서 쓰던 수대 손잡이의 철사를 떼어내 만들다 어머니께 들켜 혼이 나기도 했습니다.

썰매를 만들지 못한 아이들은 대신 비료포대 속에 짚을 넣고 포대 끝에 새끼줄을 잡아매어 형과 누나들이 끌어 주는 썰매를 타기도 했습니다. 그것도 안 가지고 나온 아이들은 한 명은 앞에 서서 뒤로 손을 내밀어 뒤에 앉은 아이의 손을 잡고 빙판 위를 달리는 기차놀이를 하기도 했습니다. 고무신을 신고 앞에서 끄는 아이는 고무신 밑창이 닳고닳아서 미끄러져 넘어지곤 했습니다.

▲ 마을을 방문한 아이가 썰매를 타고 있다
ⓒ 김도수
또 어떤 형은 자전거를 타고 나와 얼음판 위에서 묘기를 부렸는데, 신기한 자세로 묘기를 부릴 때마다 큰 박수를 치며 아이들 모두는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습니다. 묘기를 부리던 형이 어쩌다 얼음판 위에 벌렁 나자빠지면 모두다 껄껄 웃으며 우리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뱃마당에서 얼음지치기를 하며 놀았습니다.

썰매를 타다가 공을 가지고 있던 아이가 고무공을 가지고 나오면 윗것테 아랫것테 편을 갈라 공을 찼습니다. 골대는 돌멩이 두 개를 양쪽에 놓고 찼는데, 공이 굴러오면 달려가다 밑창 닳아진 고무신이 너무 미끄러워 아이들은 여기저기서 뻥뻥 나가떨어지기도 했습니다.

공을 차면 뱃마당은 연·고 전이 열리는 스케이트 경기장처럼 열기가 후끈 달아올라 뱃마당에서 소리치며 떠드는 아이들 소리가 어찌나 시끄럽던지 마을 어른들이 구경을 나올 정도로 요란스럽고 재미가 있었습니다.

얼음지치기 놀이나 축구시합이 끝나면 양말이 젖어 발이 시려왔습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강변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젖은 양말과 옷을 말렸습니다. 어떤 아이는 불꽃에 양말이나 옷을 태워 어머니께 혼날 것이 두려워 걱정을 하기도 했습니다.

잉걸불 앞에 빙 둘러 젖은 양발을 내밀면 아이들 대부분은 양말 앞 뒤꿈치에 펑크가 나 있었는데 어떤 아이는 구멍 난 양말이 어찌나 여기저기 꿰매어져 있던지 양말 원래의 색이 바뀌어 다른 색으로 변하고 있었습니다.

▲ 눈 내린 정자나무
ⓒ 김도수
잉걸불이 달아오르면 고구마가 많은 아이들은 집으로 달려가 고구마를 가지고 나와서 함께 구워 먹기도 했습니다. 검게 그을려 익은 뜨끈뜨끈한 고구마를 호호 불어대며 조금씩 나눠먹던 동네 아이들 전용 스케이트장이었던 뱃마당에 아직도 잉걸불이 활활 타오르며 젖은 양말과 옷이 마르면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듯 합니다.

설날이 돌아왔건만 마을은 너무 고요하기만 합니다. 사십여 가구에 달했던 마을은 이제 폭삭 오그라들어 설날 불 켜진 집을 세어보니 열 여섯 가구에 불과합니다. 객지로 떠나간 내 깨복쟁이 친구들이 한 명도 내려오지 않아서 그런지 명절 기분이 전혀 나지 않습니다. 눈은 하염없이 펑펑 쏟아져 내리고 술 한잔 나누고 싶어 집집마다 친구를 찾아 나서는데 이 집 저 집 기웃거리다 결국에는 큰집으로 발길을 돌리고 맙니다.

객지로 떠나간 마을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야 명절기분이 물씬 나는데 80년대 말까지 벅적거리던 마을 풍경에 젖어 나는 마당으로 나와 펑펑 내리는 함박눈을 받아 먹습니다. 하늘에서 무수히 쏟아지는 함박눈을 바라보고 있으니, TV 뉴스에서 고향으로 달려가기 위해 고속도로로 쏟아져 나오던 긴 차량의 행렬처럼 함박눈이 마을로 무수히 쏟아져 내리며 진뫼마을을 금방 덮어 버립니다.

▲ 아빠를 태우고 썰매를 끄는 희성이
ⓒ 김도수
이번 설날 귀성 때 폭설이 내려 객지에 사는 자식들에게 빙판길이 되어 미끄러우니 내려오지 말라고 부모님께서 간곡히 말리시는 바람에 사람들이 덜 내려왔지만 그래도 설날치고는 마을이 너무 조용하기만 합니다.

요즘은 명절이 돌아오면 고향에 내려오는 귀성길이 너무 힘드니 시골에 사시는 부모님께서 역으로 서울로 역 귀성하여 설을 쇠러 가는 바람에 그렇잖아도 작은 강변마을에 사람들이 없어서 강바람만 차갑게 쌩쌩 몰아칩니다.

객지에서 설 쇠러 온 사람들도 날씨가 너무 추우니 안방에 틀어박혀 꼼짝을 하지 않고 있으니 마을에 사람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순백의 스케이트장이 된 뱃마당에 희성이 부자 (父子)가 앉은뱅이 썰매를 타며 떠드는 소리만이 강 마을에 몰아친 매서운 강바람 소리를 잠재우며 그런대로 설 분위기를 돋우고 있습니다.

뱃마당에 나와 썰매를 타는 희성이 부자 (父子)가 뱃마당 얼음판을 간질어주니 꽝꽝 얼어붙었던 얼음판도 너무 좋아 그랬던지 여기저기서 ‘쩍쩍’ 갈라지며 박수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쩍쩍거리는 소리가 살갑게 들려와 나도 뱃마당으로 달려가 셋이서 스케이트장에 발자국을 남깁니다.

“진뫼마을을 떠나간 내 깨복쟁이 친구들아! 시방 뱃마당에 얼음이 다 잽히불어서 나만 신나게 강타며 놀고 있응게 얼릉들 달려와 나랑 함께 강타고 놀자. 해 떠불고 날씨 풀려불먼 다 녹아붕게로 모다덜 얼릉 고향으로 달려와 강타고 놀자."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전라도닷컴(http://www.jeonlado.com)에 함께 송고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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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정겹고 즐거워 가입 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염증나는 정치 소식부터 시골에 염소새끼 몇 마리 낳았다는 소소한 이야기까지 모두 다뤄줘 어떤 매체보다 매력이 철철 넘칩니다. 살아가는 제 주변 사람들 이야기 쓰려고 가입하게 되었고 앞으로 가슴 적시는 따스한 기사 띄우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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