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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뉴스의 두 얼굴>
<경제뉴스의 두 얼굴> ⓒ 개마고원
정말이다. 〈경제 뉴스의 두 얼굴〉(제정임 지음/개마고원)은 아주 의미있고 좋은 내용을 담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경향신문>만 빼고 그 어떤 매체에 그 흔한 한 줄 소개도 나오지 않았다. 그나마 경향도 저자가 그곳에서 오랜 기자 생활을 했고, 당시까지 고정 칼럼을 하나 쓰고 있었기 때문에 예의로 실어준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사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왜 경향만 이 책을 문제없이 소개해줬나 하는 속사정까지 대략 짐작할 수 있다. 문제가 될 소지를 있었다면 예의고 아는 사람이고 뭐고 안 실어줬을 게다.

'묻혀버린 좋은 책 찾기'의 두번째 책으로 이 책을 소개하는 것은 경제를 소중히 생각하는 현실만큼, 경제를 알게 해주는 경제 뉴스가 올바르고 정확하지 않은 현실을 고발하기 위해서다.

〈경제 뉴스의 두 얼굴〉은 한국의 신문들, 경제 기사, 경제부 기자들의 총체적인 문제점을 낯뜨거울 만큼 신랄하게 비판한다. 저자는 경제 뉴스가 독자를 속이는 다양한 사례들을 구체적인 자료를 통해 제시하고 그러한 거짓과 왜곡이 일어나는 구조적인 문제와 그 대안을 모색한다.

이 책은 일반 서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일상적인 뉴스의 왜곡 보도에서 외환 위기 등의 국가적인 뉴스의 왜곡 보도에 이르기까지 미시적·거시적인 시각을 일관된 맥락 하에 유지하여, 경제 뉴스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그렇다면 경제 뉴스는 독자를 어떻게 속일까? 몇 가지 사례를 보자. 2002년에 증시의 상승 조짐에 따라 신문들이 앞다퉈 장밋빛 주가 전망과 투자 성공사례를 대서특필했다. 게다가 증권회사 애널리스트들을 인터뷰하여 '지금이야말로 투자 적기'라는 그들의 말을 그대로 실어줬다.

거의 모든 신문이 그렇게 보도 경쟁을 하니 그 뉴스를 본 사람들은 어떠했겠는가. 수많은 개인 투자자들은 '속된 말로 허파에 바람'이 들어갔다. 하지만 이때 증시에 들어갔던 사람들 상당수가 주가지수가 600선대로 내려앉자 엄청난 손실을 떠안았다. 이에 따른 자살, 살인, 가족해체 등 이들의 기막힌 사연들은 오늘날의 뉴스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주가와 환율은 전문가도 예측하기 어렵고, 거래대금에 따른 수수료를 받는 증권회사들이야 가급적 많은 투자자들이 증시에 들어오도록 낙관적인 전망을 내리는거야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증시 관계자보다 더 흥분해서 아무 의심 없이 언론이 선정적으로 기사를 쓰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또한 자기들이 그렇게 써서 증시에 들어갔다 엄청난 손실을 본 사람들을 두고 '무분별 투자', '묻지마 투자'라고 매도하고 '우린 책임없다'는 식으로 자기 반성 없는 기사를 쓰는 기자들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리고 이러한 일이 정기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점을 어떻게 해야 할까?

잘못된 경제뉴스는 일반 서민에게만 피해를 입힐 뿐만 아니라, 나라 경제 전체를 뒤흔드는 심각한 문제를 낳기도 한다. 외환위기는 한국 경제의 고질병이 곪아터졌기 때문에 일어났다. 그렇다면 외환위기 이전과 이후 언론은 이런 고질병을 고칠 수 있도록 어떤 노력을 했을까?

노력은 커녕, 신문사들은 기형적인 한국 기업들의 구조적 병폐를 자사 이익을 위해 활용했다. 활용했다기보다는 공생관계라고 보는 것이 적절할 듯 싶다.

예를 들어보자. 기업이 어려워지면 어떤 현상이 발생할까? 우선 필수 경비를 제외한 지출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려운 기업일수록 더 적극적으로 언론에 많은 광고를 하고 언론의 각종 사업을 지원하면서 물주 노릇을 자임하고 나선다. 이 무슨 조화인가? 이것이 한국에서 부실 재벌들의 '생존 방식'이었던 것이다.

부실 재벌이 살아남기 위해 비용을 줄이고 이익을 내기는 커녕, 언론의 입을 틀어막아 나쁜 소문이 번지지 않도록 하면서, 정·관계와 금융계를 구슬러 더 많은 대출을 받아내는 것이 생존의 지름길이었던 것이다. 여기에 언론은 기업들이 원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왔다. 외환위기 이후에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결론적으로 신문은 한국의 고질병에 대한 감시와 고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왔고, 거기에 추가로 신문사주와 회사의 이익을 위해 여론을 오도해왔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앞으로도 여론이 이러한 비판에서 과연 벗어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저자는 이러한 '독자를 울리는 경제뉴스'와 '나라를 뒤흔드는 경제뉴스'는 별개가 아니다고 말한다. 즉 "가랑비에 옷 젖듯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제뉴스의 왜곡이 쌓이고 쌓이면서 효율적인 경제성장을 저해하고,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심지어 나라경제를 위기로 몰고 가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신문은 제대로 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로는 경제섹션 증면에 비해 기자 수가 절대 부족하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 유력 언론의 기자 수와 비교할 때 한국 신문의 기자 수는 3분의 1에서 4분의 1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반면 책임지는 지면의 양은 비슷하거나 우리 쪽이 더 많다.

기자 수의 부족은 시간과 공을 들여 사안을 파헤치고 분석하는 탐사보도를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들고, 할당된 원고를 채우기 위해 기자들을 책상에 앉아있게 하는 시간을 늘린다. 이로 인해 기자들은 가진 자가 제공하는 보도자료에 의존하는 경향이 커진다. 당연히 그 보도 자료는 가진 자의 시각과 전략으로만 구성되었을 것이다.

가진 자의 시각만 대변해주는 문제에서 파생되는 또 하나의 문제는 보도자료만 의지해서 기사를 쓰는 경우 사람들이 알아듣기 어려운 기사, 즉 취재 기자 자신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쓰는 기사를 양산한다는 점이다.

신문이 제역할을 하지 못하는 또다른 이유로는 신문이 광고주에 예속되어있는 구조 때문이다. 이것은 앞서 말한 사례, 즉 기업이 재정 형편이 어려우면서도 광고 및 언론사 각종 사업 지원에 돈을 아끼지 않는 기형적인 상황으로 충분히 설명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신문이 이러한 구조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아마도 절대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그들의 재정상태도 부실 기업과 마찬가지로 엉망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에 대한 증거로 한국 신문의 현실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좀처럼 흑자를 내지 못하는 영업 실적으로 항상 기업으로서 존립을 위협받고 있는 우리 나라의 대다수 언론들! 금융계 사람들은 이것을 '한국경제의 미스터리 가운데 하나'라고 말한다.

환위기 전인 1996년의 각 신문사 회계결산 보고서를 보면, 지나친 차입경영으로 인해서 경향신문, 문화일보, 세계일보 등은 자본잠식 상태였고, 서울경제는 무려 9700%, 한국일보는 1563%, 매일경제 1400%의 부채비율을 기록하고 있었다. 외환위기 이후에도 이런 경영 상황은 일부 언론사를 제외하고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신문 기업들이 허약한 재무구조 하에서 생존하기 위해, 광고주에게 매달리다보니 언론의 공정성을 포기하는 사례도 나타난다는 것이다."


신문의 문제점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대략만 살펴봐도 우리나라 신문은 사적인 이해관계가 논조를 좌우하고, 적당히 확인하고 마음대로 쓰고, 발표자의 입에만 의존하고, 부풀리고 비틀고, 감정에 호소해 눈길을 끌고, 시류에 따라 말을 바꾸고 시치미를 떼며, 깊이 있는 분석과 해설이 부족하고 피상적이다.

물론 저자도 경제뉴스가 모두 이렇게 문제 투성이란 얘기는 아니다고 말한다. 실제로 보면 아주 공정한 시각에서 심층적으로 보도한, 읽기 쉽고 흥미로운 기사도 많다. 그러나 '없어져야 할 문제들'을 우리 언론이 아직 많이 안고 있으며, 증면경쟁의 와중에서 이런 고질적인 병폐들이 더 심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신문들이 제대로 된 경제 뉴스를 전달하는 기능은 불가능한 일일까? 저자는 암울하고 비관적이지만 이에 대한 대안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첫째는 무식하고 부패한 기자들을 솎아내는 일이다. 기자에게 필요한 재질 가운데 하나는 '지적 수준'이다. 즉 각 기자가 맡은 분야의 전문성에 대해 각별한 관심이 필요하다. 경제부 기자들에게 요구되는 전문성은 학자처럼 전문적인 이론을 다루라는 얘기가 아니라, 자기 담당 분야의 현안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쉬운 언어로 독자에게 전달할 수 있을 정도로 필요한 지식을 갖추라는 것이다.

또한 기자들이 직업윤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해도 기자 공동체가 적극적으로 제재하는 분위기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우리나라 언론의 심각한 문제 중 하나다.

둘째는 증면, 경품 대신 사람에 투자하라는 것이다. 일할 사람은 없는데 무리하게 증면하고, 광고를 의식한 특집기사 요구를 늘리면서 취재를 통해 기사를 쓸 여유가 없는 기자들은 경쟁지 기사까지 그대로 베껴 싣는 부끄러운 행위를 하기도 한다.

세번째는 편집권 독립이다. 우리나라 기자들은 사주나 경영진이 지면에 미치는 영향력을 피부로 실감하고 있다. 특정 인사와 그 가족에 의해 소유되는 이른바 족벌언론일수록 사주가 편집권을 좌우하는 정도가 강하다. 이들은 인사권을 통해 편집권을 통제한다. 또한 광고주의 압력도 편집권을 위협한다.

네번째는 부실 언론사의 퇴출과 합병이다. 부실 기업들이 퇴출 혹은 합병되듯, 광고를 매개로 한 신문 뉴스의 왜곡이 없어지기 위해서는 정상적인 경쟁으로는 생존이 불가능한 신문사들을 퇴출하거나, 소유구조 개편, 인수합병 등으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해야 한다.

다섯번째는 '자전거 신문'을 추방시키고 경쟁을 품질로 대체해야 한다. 신문에는 온갖 고상한 이야기, 도덕적인 이야기를 다 하면서 자전거나 정수기 등의 경품으로 구독자를 모으는 작태는 도대체 무엇인가?

여섯번째는 속보경쟁을 차별화 경쟁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지나친 속보경쟁은 많은 폐단을 낳고 있다. 사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다른 신문이 아직 보도하지 않은 뉴스를 한 발 앞서 보도하는 일은 독자들의 관점에서는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다. 독자들이 더 바라는 것은 한 발 앞선 보도보다는 정확한 보도인 것이다. 물론 속보에 대한 경쟁은 언론사간에 필요하다. 하지만 뉴스의 정확성이나 공정성을 희생하는 정도까지 되어서는 안 된다.

마지막은 정부와 기업의 투명한 정보 공개이다. 사실 부정확한 보도의 책임 중 상당부분은 취재원의 비밀주의에도 있다. 당연히 공개해야 할 정보마저 감추려 드는 정부관계자, 기업인, 전문가들의 비밀주의 장벽 앞에서 기자들이 사실의 조각들을 조합해서 하나의 그림을 그려내려다보니 부정확한 보도가 나오기도 하는 것이다.

정부는 정보공개법에 따라 '국민의 알 권리'에 부응하는 것이 의무 가운데 하나라는 점을 인식하고, 기업들도 국민들에게 최대한 경영내용을 알린다는 투명한 자세가 결국 신뢰할 수 있는 기업, 자신 있는 기업이라는 평가로 이어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경제 신문을 한 부 더 드립니다." 이 광고 문구를 쓴 언론사가 어디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이 광고 문구를 시작으로 우리나라 신문들은 무리한 지면 경쟁을 벌였고, 그 폐해가 아직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신문의 경제 뉴스에 대해 의심을 해야 한다. 도대체 경제 뉴스가 어떤 사람들에 의해, 어떤 경로를 통해 우리 눈과 귀로 들어오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해해야 한다.

이제 왜 이 책이 결과적으로 신문의 집단 따돌림을 당했는지 대략 파악했을 것이다. 정보가 곧 '돈'이고 경제가 1순위가 된 오늘날, 경제정보의 채널인 경제뉴스의 심각한 문제점. 정말 암울하게 만드는 책이지만, 경제 주체로서 우리 모두가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저자는 이 책의 말미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한번 곱씹어볼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

"오늘날 한 사회를 위협할 수 있는 '적군'은 다양할 것이다. 경제위기가 될 수도 있고, 부정부패가 될 수도 있고, 계층 간의 극단적인 불화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적군으로부터 한 사회가 안전하게 유지되려면 파수꾼이 성실하고 강직해야 한다.

파수꾼이 경계를 소홀히 하거나, 적에게 매수되어 나팔을 불지 않는다면 그 사회는 어느 날 벼락같이 다가온 적군에게 초토화될 수 있다. 5년 전 겪은 외환위기는, 우리 사회의 전투력도 문제였지만, 위기의 징후를 알아차리고 경고하는 역할을 못 해낸 언론의 책임도 컸다. 치열한 반성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언론을 제대로 일하게 하는 감독과 보상의 수단은 무엇일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시민들이 언론보도에 비판적인 관심을 기울이면서, 공정하게 보도하는 언론을 선택하고 그렇지 못한 언론은 외면하는 것이다. 예컨대 자전거나 TV를 준다고 해서 아무 신문이나 볼 것이 아니라 바르게 보도하는 신문을 선택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힘있는 신문'이 반드시 독자에게 도움이 되는 '바른 신문'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바른 언론'이 '힘있는 언론'에 밀려 숨쉬기가 어려운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또한 우리는 언론의 보도, 그 중에서도 경제뉴스가 굴절되고 오염될 경우 사람들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일상에는 물론 나라경제에도 심각한 폐해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우리 모두가 바라는 지속적 경제성장도, 땀의 대가가 정직하게 지불되는 정의로운 사회도 기대하기 어렵다.

경제뉴스를, 언론을 정상화하는 것은 가진 것이 많지 않은 우리들 대다수가 먹고사는 문제를 '덜 억울하게' 해결하기 위한 필수조건임을 반드시 알아두자."

덧붙이는 글 | (제정임 지음/개마고원/2002년 12월/304쪽/10,000원)


경제뉴스의 두 얼굴

제정임 지음, 개마고원(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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