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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동전 모아요? 에계 온통 10원짜리네…."

방학 동안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오랜만에 놀러 온 후배가 제 책상 밑을 본 모양입니다.

"그래, 이놈아! 땡전 모은다. 가져 갈 생각 마라!"

"에이 형, 누가 10원짜리를 가져가요?! 100원짜리는 되야지…."

하긴 그렇습니다. 저 같아도 100원짜리는 돼야 가져갈 맘이 생길 것 같고, 10원짜리를 가져간다고 해도, 한 움큼 아니 최소한 백 개는 가져가야 할 듯 합니다. 네모난 화장품 박스에 500개를 넘는 10원짜리가 좁은 평수를 이기지 못하고 서로 뒤엉켜 엎어져 있습니다.

전 몇 달 전에 별 부담 없이 쓰던 전화비에 충격을 받을 일이 있었습니다. 평소 아무리 써도 5만원을 넘지 않던 핸드폰 요금이 저도 방심하고 쓰는 동안 8만원이 넘게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 달에 생긴 약정할인제를 신청하고, 요금제도 최소 기본 요금제로 바꾸는 저만의 핸드폰 요금분야 경제개혁(?)을 단행하게 됐지요.

헌데, 막상 요금제를 바꿔보니, 최소 요금제로 기본료가 쌌지만, 음성 통화료가 문제였습니다. 기본료가 싼 대신 통화료는 무척 비쌌던 것이었습니다.

사람을 만나는 직업이고, 모임 임원을 맡고 있는 터라, 전화를 꼭 해야 할 때가 많은 저는 모든 음성통화를 공중전화로 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집에 있던 잔돈 보관용 돼지 저금통을 뜯었습니다. 저금통엔 총 359개의 동전이 있었습니다. 국적과 발행 연도를 알 수 없는 동전을 제외하고 나면, 352개.

그 중, 50원짜리는 48개, 10원짜리는 304였습니다. 액수로 계산해보니, 50원짜리가 2400원, 10원짜리가 3040원입니다. 총 액수가 5000원 정도지만, 그 개수와 무게, 그리고 움직일 때 짤랑거리는 소리는 만만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방법밖엔 다른 수가 없었습니다. 핸드폰을 쓰다간 혹 하나 떼려다 혹 하나 붙이게 될 것이 뻔하니까요.

초반 5일간은 참 좋았습니다. 매번 출근, 외출 할 때마다 주머니에 50원짜리와 10원짜리를 한 움큼씩 넣어, 음성통화를 할 때마다 핸드폰을 쓰지 않고, 공중전화를 활용했습니다. 하지만, 작심 6일이었습니다.

6일째 되는 아침. 잠결에 못 받은 직장 선배의 전화였습니다. 꼭 답을 했어야 했는데, 그만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공중전화가 있는 바깥까지 가야 하는 귀찮은 수고를 이기지 못하고, '그래! 딱 한번만' 하는 생각에 저는 무너졌습니다.

그 후로, 저의 결심은 점점 약해져 외출 시 동전을 가져가는 것도 잃어버리고, '한 통화만'하는 생각으로 결국 전 혹을 붙이고 말았습니다.

다시 다음달 요금을 평소 요금제로 바꾸고 말았습니다. 지금은 적당한 통화에 적당한 요금으로 조절하며 쓰고 있습니다.

헌데, 자동적으로 공중전화용으로 썼던 동전들이 이상한 위치에 놓이게 됐습니다. 그냥 쓰면 된다고 생각하기엔 그 수가 만만치 않았던 것입니다. 그것도 50원짜리 동전은 다 쓰고 없고, 10원짜리는 더 늘어나 300개가 넘어가 있었습니다.

전 300개의 10원짜리를 놓고, 쓸 수 있는 곳을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냉장고 냄새를 없앤다는 것을 얼핏 어디서 들은 것 같아서, 5개 정도를 냉장고에 넣고, 냄새가 날 만한 신발장에도 5개를 넣어 봅니다. 하지만, 그 뿐입니다.

어떻게 쓸까 고민고민하다가, 문득 M.T 가서 선배님들이랑 한 잔돈 따먹기 게임이 생각났습니다. 거실 벽 쪽 끝에 서서 마주 본 벽 끝을 맞추어 가장 벽쪽에 붙게 해 봅니다. 한 20여개를 던지고 나니, 이것들은 진정 10원의 돈을 쓸 가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아 그만둡니다.

다시 10원짜리를 놓고, 10원으로 살 수 있는 목록을 짜 봅니다. 10원짜리 사탕, 10원짜리 편지봉투, 10원짜리 불량식품.

그러고 보니, 실생활에서 사서 쓰는 공산품에서 10원짜리를 최종단위로 쓰고, 독립적으로 쓸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습니다.

과연 그렇다면, 10원짜리를 모아서 써 보자는 생각으로 10원짜릴 한 움큼 들고, 가게에 가서, 500원짜리 캔 사이다를 사 먹어 봅니다. 상점 주인 아저씨는 짜증 섞인 눈으로 그 10원 짜리를 세느라 고생입니다. 계산을 끝마치기를 기다리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제게 놓인 상황이, 10원짜리를 이렇게 없애려고 하지만, 10원짜리는 거스름돈 정도 말고는 쓰임새를 잃어버린 듯 합니다.

화폐가치가 워낙 낮은 터라 잘 갖고 다니지도 않고, 10원 단위를 최종 단위로 쓰는 공산품이 대부분 사라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좀전에 캔 사이다를 사 먹은 것 같이 굳이 쓰려면 쓸 수 있지만, 편하고 높은 가치를 가진 100원, 500원, 1000원짜리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러고 보면, 10원짜리는 쓰라고는 있지만, 결국 쓸 수 없게 되는 돈이 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필요하면 그저 만들고, 쓸데가 없어지면 갈 곳 없이 버려지는 현실. 10만원권 고액 화폐가 만들어진다 해도, 언젠가 이렇게 볼품없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결코 보장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오늘 따라 10원짜리 동전이 저희 사회의 어두운 일면을 보여주는 듯해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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