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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일 느티나무 카페에서 '수화는 언어다' 선언문발표 및 차별진정 기자회견이 열렸다.
ⓒ 김진석
"저희 청각·언어 장애인에게 있어 손의 용도는 일상에서 사용되는 손의 기능뿐 아니라, 말하는 입을 대신해 줍니다. 그래서 주로 우측 손을 위주로 수화를 하고, 손가락 하나 하나를 이용해 지문자나 지숫자를 표현해 가며 상대방과 대화를 해야 합니다. … 하지만 심사 관계자는 '수화하는 데 꼭 두 손이 필요한가?' 라는 말만 물어 볼 뿐이었습니다."

청각·언어장애인 2급으로 광주에서 살고 있던 김미선씨가 ㈜엔터산업에서 근무를 하다 지난 2002년 프레스 기계에 우측 손 전체가 눌리면서 중지와 약지가 절단됐다.

불편한 우측 손으로 수화를 하며 소리 없는 눈물을 흘리던 김씨는 지난 2003년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비장애인이 손을 다친 것과 똑같은 보편적 산재보상 판정을 받았다.

이 때문에 김미선씨는 근로복지공단 장애심사에 이의를 제기, 기자회견을 통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할 진정내용을 발표했다. 15일 오후 3시 30분 느티나무 카페에서 한국농아인협회가 주최한 '수화는 언어다' 선언문 발표 및 차별진정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회견엔 비장애인에게 수화를 통역해 주고 비장애인의 말을 수화로 통역해 주는 두 명의 통역사가 참여했으며, 인권센터 소장 김기범씨, 한국여성장애인연합의 김광이씨, 한국장애인연맹의 김대성씨 등이 함께 했다.

이들 단체는 그간 청각장애인의 수화가 언어로써 인정받지 못한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수화를 하나의 언어로 인정하고 정책에 반영시키라는 '대정부 요청서' 를 제출했다.

한국농아인협회는 대정부 요청서를 통해 △정부의 모든 정책은 수화언어를 포함해 수립하고 이를 국민에게 알릴 것 △개정된 편의증진법 시행을 위해 공공시설이나 공중이용시설에 농인이 수화언어로 서비스 받을 수 있는 하위법령을 마련 할 것 △수화전문인 육성을 위해 수화관련 전문기관이나 관련 대학을 설치 및 운영할 것 △일반 초등, 중등, 고등교육과정에서 외국어 교육과 마찬가지로 선택과목으로 채택, 교육될 수 있도록 할 것 △정보사회에서 의사소통의 장벽으로 농인이 소외되지 않도록 할 것 등을 요구했다.

앞서 이들은 '수화는 언어다' 라는 선언문을 통해 "수화는 농아인의 의사소통 양식을 넘어 삶의 전부이다" 라며 "농인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선 수화가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독자적 언어로 자리매김 해야 한다" 고 주장했다.

ⓒ 김진석
이어 그들은 "수화가 농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일반인에 의해 자의적으로 표현되고 활용하는 것을 배격한다" 며 "농인에 의해 창조되고 사용되며 이를 재생산하는 것을 기초로 한다" 고 말했다.

또 이들 단체는 "농인이 수화언어의 사용이나 선택에 있어 수화 제공자의 일방성을 띠어서는 안 된다" 며 "수화제공자의 시혜적인 태도나 선택적 제공에 대해 저항하고 농인 자신의 양식에 맞게 선택 및 사용할 권리가 있다" 고 선언했다.

한국여성장애인연합 정책위원 김광이씨는 "언어를 표현 할 손가락을 상실하게 된 것은 비농인들이 평생 구강을 통한 말의 상실과 같다" 며 "농인들에 있어 손가락은 생존을 위한 도구이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농인들의 손에 대한 가치를 비장애인들의 입, 귀 등의 신체 작용의 그것과 동등하게 인정받아야 한다" 며 "정부부터 수화언어를 일반언어와 같은 독립된 언어로 인정해야 한다" 고 당부했다.

"장애인도 한국 영화 볼 권리 있어!"

한편, 한국농아인협회는 지난 1월 8일 국가인권위원회를 통해 허리우드극장 사장과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에게 진정서를 제출했다.

현재 진행중인 '열정, 대한민국영화 1954 - 2004(1월 1일 - 1월 15일)' 행사에 참가했던 청각장애인 관객들이 자막이 없는 등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없어 영화 관람에 차별을 호소한 것이다.

이들은 "외국인 관객들을 고려한 영어자막은 내보내면서 정작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한국 영화를 관람할 권리가 있는 내국 청각장애인들을 소외시켰다" 며 "주최측이 청각장애인을 외국인보다 더한 이방인의 존재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고 진정했다.

위 진정은 한국 영화를 보고자 하는 청각장애인들뿐 아닌 다른 여러 장애인들의 '문화 ·정보 접근권' 과 연결돼 향후 그 귀추가 주목된다. 한국농아인협회는 수화언어의 독립성을 알리기 위해 오는 한글날인 10월 9일에 '한국수화사전' 을 발간할 예정이다.

김미선씨가 발표한 진정서
산재보상과정에서의 차별사례

▲ 국가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한 김미선씨가 수화통역사의 손을 보고 있다
ⓒ2004 김진석
저는 현재 청각 · 언어장애인 2급으로 광주광역시에서 살고 있습니다. 저는 광주 광산구 소재 (주)엔터산업에서 근무를 하다 2002년 9월 프레스 기계에 우측 손 전체가 눌리면서 손가락 3, 4지가 절단되었습니다.

2003년 9월 근로복지공단에 가서 장애심사를 받는 과정에 비장애인과 달리 청각 · 언어장애인은 손을 사용하여 대화를 해야 하므로 비장애인이 손을 다친 것과는 그 의미가 다르다라고 동행했던 수화통역사를 통해 충분히 설명 드렸습니다. 하지만 심사관계자는 "수화하는데 꼭 두 손이 필요한가" 라는 말만 물어볼 뿐 그 외 다른 질문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희 청각 · 언어장애인에게 있어 손의 용도는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손의 기능 뿐 아니라 언어장애 때문에 말하는 입을 대신해 주로 우측 손을 위주로 수화를 하고 손가락 하나하나를 이용하여 지문자나 지숫자를 표현해 가며 상대방과 대화를 해야 합니다.

수화는 엄연히 우리 청각 · 언어장애인들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이며, 손은 우리의 언어를 표현하는 입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노동적인 기능만을 따지고 외적인 장애 판단만으로 보상을 할 수 있습니까? 청각 · 언어장애인으로서 손은 우리 입의 역할을 하는데, 그에 대한 배려나 보상은 완전 배제돼 있기에 이번 보상에 대해 저는 도저히 승복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지금 사고 후 심리적으로 삶에 대한 의욕 상실과 사람들과 만나 손으로 수화로 대화해야 하는 입장이라 상대방의 시선을 많이 의식합니다. 그래서 장애를 입은 손으로 대화하는 것에 상당한 부담이 돼 자연히 사람 만나는 일을 피하게 되고 대인 관계가 예전에 비해 원만치 못해졌습니다. 성격 자체도 소극적으로 변해 남 앞에 나서는 것이 두렵습니다.

따라서 저는 오늘 한국농아인협회를 통해 이 문제의 부당성을 알리기 위해 국가인권위원에 진정을 제출하고자 합니다. 또한 저와 같이 수화를 언어로 사용하는 청각장애인들이 산재보상과정에서 부당한 처리가 되지 않도록 언론에서 많은 관심 가져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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