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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 모양의 천 조각들을 만드는 아내. 이때까지 무엇을 만드는지 안가르쳐 주었다.
하트 모양의 천 조각들을 만드는 아내. 이때까지 무엇을 만드는지 안가르쳐 주었다. ⓒ 유성호
하루는 아내가 지역사회복지관 프로그램을 가지고 와 어느 강의를 수강하는 게 좋겠냐고 물었다. 뜨개질을 좋아하니 '홈패션'과 예의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 '생활요리'를 추천했다. 그 길로 아내는 사회복지관으로 달려가 두 과목을 신청했다.

어느날 저녁상을 물린 아내가 연습장에 뭔가를 그리면서 계산기까지지 두드리고 있었다. 뭔가 싶어 들여다 보니 디자인인 듯한데 내가 봐서는 무엇인지 통 알 수가 없다. 물어 보니 홈패션 시간에 '퀼트'를 하기 위한 준비 작업이라고 한다.

꼼꼼한 바느질이 필요한 퀼트. 한 땀씩 더할 때마다 무늬가 살아난다.
꼼꼼한 바느질이 필요한 퀼트. 한 땀씩 더할 때마다 무늬가 살아난다. ⓒ 유성호
그날 이후 아내는 저녁상을 물리고 설거지가 끝나기 무섭게 형형색색의 천 조각들과 씨름했다. 천 조각은 동대문시장에서 사다 나른 것들이었다. 하트 모양의 조각을 뜨기 위해 두꺼운 종이로 틀을 만들기까지 했다. 옆에서 얼핏 보기에도 잔손이 무척 많이 가는 일이었다.

아내가 만든 앞치마, 전자렌지용 장갑.
아내가 만든 앞치마, 전자렌지용 장갑. ⓒ 유성호
아내는 천 조각을 재단한 다음 바느질을 시작했다. 갖가지 천을 덧대고 시침핀보다 작은 퀼트 바늘로 조각 천들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천과 천 사이에 두툼한 솜천을 댔기 때문에 바늘 한 땀 한 땀이 더해질 때마다 하트 모양이 도톰하게 살아났다.

신기해서 나도 한번 해 보자고 졸랐더니 아내는 미심쩍은 눈빛으로 마지못해 바늘을 넘겼다. 그리고는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던지 아이들 우유를 사러간다면 밖으로 나갔다.
"이래 봬도 나도 손재주가 꽤 있다구."
집을 나서는 아내에게 큰소리를 쳤지만 바느질도 오랫만인 데다가 바늘도 너무 작아 마음 같이 땀을 뜰 수가 없었다.

하트 모양을 돋우는 작업은 이미 끝났고 내게 주어진 것은 직선으로 누비는 일이었다. 그까짓 것을 못하겠냐며 바늘을 열심히 놀려댔지만 바늘 땀은 갈 지(之) 자 모양으로 구불거렸다. 잠시 후 돌아 온 아내에게 "퀼트는 역시 손이 작은 여자 몫이야"라며 "봐! 그래도 남자치곤 괜찮은 솜씨지"하고 딴청을 피웠다.

보름만에 완성한 퀼트 가방. 아내는 가방이 아니라 행복을 재단했다.
보름만에 완성한 퀼트 가방. 아내는 가방이 아니라 행복을 재단했다. ⓒ 유성호
아내는 아무 대꾸 없이 내가 박아 놓은 실밥을 풀기 시작했다. 말이 필요 없는 목불인견이다. 이렇게 고생하면서 아내가 만들던 것은 가방이었다. 그 후에도 며칠을 공을 들인 다음 아내는 손으로 일일이 한 땀씩 누볐던 두 개의 앞뒤 판을 붙였다. 그 다음 어깨걸이를 덧댔더니 제법 폼이 나는 '퀼트 가방'이 탄생했다. 보름간에 걸친 아내의 몰두가 작품으로 승화(?)된 것이다. 그동안 퀼트를 하는 아내를 바라보면서 내가 느꼈던 행복감도 함께 승화된 듯했다.

매사에 자신없어 하던 아내가 무엇인가를 성취해 나가면서 자신감을 얻는 모습이 참 보기에 좋았다. 퀼트는 물론이고 요리에도 자신감을 가진 아내는 이제 집에 손님 청하는 것이 두렵지 않다고 한다. 요리를 잘 하시는 어머니도 오랜만에 막내 며느리의 솜씨를 칭찬하실 정도다.

퀼트 가방을 완성한 아내는 우리 부부와 아이들의 베개는 물론 작은 소품용 가방, 렌지용 장갑, 앞치마 등 생활에 필요한 소품들을 만들었다. 아내가 만든 것은 다만 퀼트용품만은 아니었다. 하트 모양, 꽃 모양의 퀼트 무늬처럼 아름답고 따뜻한 우리 가정의 행복도 함께 재단한 것이다.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는 아내의 모습에서 느낀 행복감은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작품 중의 작품이었다.

저렴하게 퀼트 배우기
인근 사회복지관 활용

거주지 인근 사회복지관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하면 저렴하게 퀼트를 배울 수 있다.
서울 중계4동 사회복지관의 경우 주 2회 강의에 월 4만원, 재료비는 별도다. 홈패션의 경우 바느질, 재봉질은 물론 퀼트까지 가르친다.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정규 실습시간이며 오후 시간까지 남아서 재봉틀 등을 이용할 수 있다. / 유성호
자, 이제 멋진 퀼트 가방을 메고 아내가 동대문으로 재료를 사러 나간다. 잘 다녀오시라. 가서 또 행복을 듬뿍 사오시구려. 아내의 다음 '행복 작품'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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