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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아이들 발걸음이 잦았던 우리집으로 오는 아이들 흔적이 아직 남아 있네요.
ⓒ 김규환
언 눈은 "뽀드득 뽀드득" 소리를 내지 않는다. "저벅저벅" 과자 씹는 소리나 생 라면 부러뜨리는 소리를 낸다. 제아무리 발소리를 죽여 고무신발을 조심히 움직여도 쉽지 않다.

동리 집집마다 기르는 누렁이 황구(黃狗)는 사람 걸음걸이 숫자만큼 귀신 따라붙듯 목청껏 "컹컹" 짖어댄다. 돌멩이 하나 주워 휙 던지면 잠시 멎을 뿐 이내 다시 짖어대니 차라리 모른 채 피하는 게 상책이다. 행여 더 큰돌을 눈밭에서 가까스로 떼어 던졌다가는 남의 장독대나 깨트리는 몹쓸 놈이 되고 마니 포기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다.

그 시절 자연석 돌담 고샅길은 마실 도는 사람들이 귀신이나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도채비(도깨비)를 쫓아버리는 마을의 살아있는 수호신이었다. 익숙한 개 짖는 소리는 어둠과 정체 모를 두려움을 쫓는 것은 물론 상념에 빠질 겨를조차 없게 했으니 얼마나 고마운가.

▲ 옛집 담벼락. 이엉을 엮어 우지뱅이 씌운 그 담벼락이 그립다. 고샅길은 얼마나 정겹던지...
ⓒ 김규환
4학년 때 동네 한가운데 대궐 같은 집을 사서 이사를 한 뒤로 우리 집은 꼬맹이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본 채에 방이 3개, 행랑채에 2개가 있었으니 어르신들 계시는 안방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방은 우리들 차지가 되었다.

그마저 손위 세 형제인 큰형, 둘째형, 누나는 일찌감치 서울로 돈벌러 떠났으니 셋째형과 내 몫이었다. 아래 여동생은 부모님과 함께 세상모르고 잠을 잤으니 없는 거나 진배없었다.

개 짖는 소리마저 멈추니 시골마을은 고즈넉하다. 문살 사이로 빠져 나오는 가느다란 호롱불빛만이 마당을 어렴풋이 비쳐주니 소변보러 나가는데 길잡이가 돼줄 뿐이다. 대밭이 멀지 않은 겨울밤엔 대(竹) 바람 소리만 진하다.

"쉬이잉~"
"쒜-"

한번 몰아치고는 사라져 버리는 그 소리는 솜이불을 뒤집어써도 귓가에 맴도는 기괴한 웃음을 닮았다. 마치 겁에 질린 치타가 대항할 때 지르는 방어의 울음소리다. 문풍지 펄럭이며 그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대 바람 소리는 끔찍하다.

▲ 겨울 대밭은 무섭습니다. 밤엔 더 하지요.
ⓒ 김규환
그 때 녹다 만 언 눈을 밟고 우리 집으로 한 놈 한 놈 사립문을 통과하여 몰려들었다.

"으~ 춥다."
"언넝 와라. 밥 묵었냐?"
"폴새(벌써, 이미) 묵었다. 먼 바람이 요로코롬 세차게 분다냐?"
"아랫목에다 손 좀 집어넣어라."

사내 꼬맹이들은 손님이 오면 제일 아랫목을 내주는 아량도 있다. 발과 손을 푹 질러 넣어 몸을 녹이고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꺼낸다. 벌써 다섯 명이 모였으니 각자 한마디씩만 거들어도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야야 거식아. 육남이는 안 온다디?"
"얌마 언제 육남이가 온 것 봤냐?"
"글도 우리집 이사 올 때는 왔쟎녀?"
"그 때 노래한번 끝내주게 부르더라. 누가 한번 다시 불러볼래?"
"알았어. 잘 들어 봐라. '동네 물과 백두산이 마루 밑에 닭~구똥(닭똥)~'……이 담은 생각이 안 나는데…."
"하하하"
"야 어른들 들은께 조그맣게 웃어라 임마들아."

▲ 고구마 저장하던 뒤쥐
ⓒ 김규환
침묵은 잠시 뿐이었다.

"그건 그렇고 우리 오늘은 무슨 놀이 할 거냐?"
"쌈치기(짤짤이)나 할까?"
"원메 나 돈 안 갖고 왔는디야."
"글면 누가 빌려줘라."
"됐다. 담에 하고 민화투나 칠까?"
"그래"
"그래."
"그건 쬐까 어렵겠는디. 울 엄마가 화투치면 가만 안 놔두신다."
"왜야? 그냥 장난으로 치는데도 그러셔?"
"말이라고 하냐? 엄니는 딴 놀이는 다 해도 괜찮대. 근데 화투하고 윷놀이는 하면 절대 용서하지 않으시거든."

민화투는 고도리와는 달리 사람 숫자대로 한바퀴 끝까지 돌아 최종 먹은 알 개수로 점수를 계산한다. 껍질 피는 아무 소용도 없다. 광(光)이 20점, 10근 짜리, 띠 있는 5근 짜리를 합산하고 비약과 청단, 홍단까지만 각 20점이 보태진다. 고도리도 없고 빨간 띠 세 개로 나는 초단도 없다.

하여 난 지금도 화투와 친할래야 친할 수 없는 환경에서 자란 탓인지 화투로 하는 놀음과는 담쌓고 사는 건지도 모른다. 아무리 아이들이 졸라봤자 주인인 내가 안 된다고 하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 정지문을 수도 없이 드나들었답니다.
ⓒ 김규환
"야 규환아 니기집 고구마 많지?"
"귀신은 이노무새끼 안 잡아가고 뭐 하는지 몰러. 너 남의 살림살이 쫘악 파악해서 뭐 할거냐?"
"아니 그게 아니고 부삭에다 몇 개만 넣어 놓고 와라. 이따가 심심하면 꺼내 묵게."
"알았어. 귀하신 손님께 그거 하나 못해줄까."
"아 글고 있잖냐, 칼도 하나 갖고 와라."
"알았어 임마."

어른들께 들키지 않으려고 발소리 죽여 본 채 광으로 갔다. 여느 집 광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큰공간이었다. 마룻바닥을 깐 광 지하는 여러 쓰임새가 있었다. 오랜 동안 곡물을 저장하고 급할 때는 사람이 숨기도 했으며, 밀주(密酒)를 몰래 숨겨두던 곳이기도 했다.

그곳 예닐곱 평 전체가 모두 지하를 갖추고 있었는데, 짚 가마니로 13가마나 되는 엄청난 고구마가 아무렇게나 부어져 있다.

▲ 예전 부억인 정지 내부 모습. 우리집 정지는 훨씬 넓고 설강이 컸습니다. 밥그릇과 국그릇 수저 그리고 웬만한 도구가 다 올려져 있었지요. 나무로 된 구유같은 커다란 설거지통도 있었는데...
ⓒ 김규환
"삐거덕"
"누구냐?"
"예. 규환이여라우."
"왜?"
"엄마 고구마 좀 깎아 먹을라구요."
"일찍일찍 자거라."
"알았어라우."

한 소쿠리 가지고 나와 열 서너 개를 소죽 쑤던 부삭(아궁이, 부엌)을 부지땅(부지깽이)으로 휘저어 파묻고 휘덮어 주었다. 정제(정지의 사투리)로 달려가 문을 열고 칼을 하나 갖고 행랑채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잿빛 내복 바람에 잠바 하나 달랑 걸쳐 입고 거동을 했으니 제일 시려운 곳은 발이요, 어디 한 군데 춥지 않는 데가 없었다.

"어어~ 춥다."
"언넝 와라."
"문고리에 손이 찰삭 달라 붙는다야. 손이 곱았거덩. 누가 대신 깎을래?"
"아따 많이도 갖관네."

▲ 그날 먹었던 고구마는 이보다 훨씬 잘록하고 길었습니다.
ⓒ 김규환
생으로 깎아먹는 고구마는 밤고구마는 쳐주지 않는다. 물고구마라야 물기가 핑핑 돌며 서걱서걱 씹는 맛과 물기가 대단하다. 달짝지근하며 입안에 물이 가득 고이는 생고구마 깎아 먹는 재미는 겨울철 보릿고개가 일찍 찾아오는 산동네엔 별미였다.

고구마를 너덧 개 깎아 먹고 나니 우리 집 가보 1호 황소가 거동을 하는 모양이다. "푸푸~" 연거푸 콧바람을 불더니 구유에 얼어붙은 쇠죽을 마저 싹싹 핥아먹는다. 풍경소리는 맑게 방으로 뚫고 들어왔다.

외양간과 벽 하나 사이로 맞닿은 긴 방에 매캐한 연기가 자욱하다. 소죽 쑨 지 두세 시간 지났어도 방안엔 연기가 빠질 줄 모르고 외려 연기가 차는 건 고래가 타고 있기 때문이리라. 시렁에 놓인 이불보자기는 온통 연기와 먼지에 쌓여 있다.

이윽고 "가위 바위 보"를 하여 한 사람을 골랐다. 밖에 나가 군고구마를 꺼내올 사람은 병섭이었다.

"야, 13개니께 잘 찾아와라. 여기 공책 갖고 가."
"알았어."

나락이 떨어진 꼴 청엔 늘 쥐새끼들이 우글거린다. 한 알이라도 주워 먹겠다고 야단이다. 그렇다고 여기에 쥐약을 놓을 수도 없다. 쏜살같이 도망갔다가 다시 인기척이 없으면 되돌아와 여물을 죄다 뒤집어 놓는다. 낮에는 참새 떼, 밤엔 쥐새끼들이 설치는 작두가 놓인 이곳을 그냥 둘 리 있겠는가?

고구마를 꺼내러 가느라 열린 문으로 차가운 공기가 방안을 덮쳤다.

"아따 시벌놈 뭔 꼬리가 그리 길어."
"무서워서 근다 임마."

▲ 그림보다 더 가까이 가야 말대가리가 잘 만들어지는데. 여물 씹는 모양 한번 만들어 보시죠.
ⓒ 김용철
문이 닫혀 있어도 우풍(외풍 外風)이 심하여 한없이 흔들리던 호롱불이었다. 석유를 아껴가며 겨우 등잔불 밝히던 시절이었으니 어른들은 한사코 숙제만 하고는 얼른 잘 것을 종용하셨다.

이 때 아이들은 까만 그을음이 피어오르는 호롱불 앞에 삼삼오오 모여 신나는 놀이를 한다. 호롱불에 두 손을 바짝 대서 모아 말, 소, 개, 닭 모양을 만들어 벽에 모양이 만들어지도록 한다.

"야야 저리 비켜봐. 닭 벼슬이 안 만들어졌잖아."
"씨불놈. 그래 니가 얼마나 더 잘 한가 보자."
"야 말갈기가 왜 그 모양이냐?"

아이들은 서로 호롱불 옆으로 다가와 말과 소가 여물을 먹는 흉내를 내본다.

"야 군고구마 먹고 해라."

이 맛난 것에도 아랑곳 않고 모양을 만드는 천진난만한 아이들과 그래도 먹을 것을 밝히는 아이로 패가 나뉘었다.

"야 싱건지 없냐?"
"꽁꽁 언 싱건지 국물이 있어야 헌디…."
"아따 싸가지들이 별걸 다 달라는 구만. 째까만 지달려봐."

▲ 설컹설컹 씹히는 무김치도 하나씩 들고 베어 먹으면 기막힙니다.
ⓒ 김규환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주인은 주인답게 객의 처지를 살펴야 한다. 이 놈들을 붙들어 놓으려면 그래도 주인인 내가 양보하는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고구마와 신 김치, 고구마와 싱건지 국물의 조화를 익히 알고 있던 나는 다시 한번 삐거덕거리는 정지 문을 열고 갔다와야 하는 사명을 띠고 있다.

"안 자고 뭐혀?"
"금방 잘라고라우. 물 좀 마실라고 헌디요."
"언넝 자그라."
"예."

설강(구식 찬장의 일종)에 놓인 싱건지와 김치는 사각사각 얼어 있었다. 호호 불어 고구마 물이 질질 흐르는 끈적끈적한 군고구마를 한 입 베어 물고, 싱건지 한 조각 또 매콤한 신김치 한 조각 넣고 오물오물 하니 허기가 싹 가셨다. 무 뿌랭이(뿌리)도 야금야금 베어먹었다.

1시간 여 갖가지 가축 모양을 만들며 놀았던 그 시절 콧물과 호롱불 그을음이 만나 까만 숯껌둥이가 된 줄 모르고 즐겼던 그날이 벌써 26년 전이다. 그날 밤 장독대도 꽁꽁 얼었다. 자정 무렵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 눈 쌓인 장독대
ⓒ 김규환

덧붙이는 글 | 삽화를 그린 김용철씨는 <강아지를 부탁해> <공포탈출일기> <앗싸! 똥파리> <느낌표> <아이러브햄스터> 등의 만화를 그린 현직 작가입니다.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열혈 회원이며 안암동에 있는 정신일어린이도서관 개관기념 프로그램인 "신나는 만화교실"을 운영하기로 했습니다. ecomics.hihome.com에 가시면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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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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