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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는 작년 12월 30일 비리 국회의원 7명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부결시켰다. 국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제 식구들 챙기기에 급급한 행동은 이미 정치에 환멸과 분노를 느끼고 있는 국민들의 가슴에 기름을 붓는 결과를 초래했다.

'방탄국회'라는 구태를 성토하는 여론이 연일 빗발치고, 각 단체들은 국회의원의 면책 특권을 폐지·축소하자는 의견을 내놓는 등 그 어느 때보다 비난의 강도가 높다.

이에 국회는 뒤늦게 사태 수습을 해보려는 듯 1월에는 임시국회를 소집하지 않겠다고 국민들의 분노를 진정시키려 했으나 크게 약발이 먹힌 것 같지는 않다.

정치개혁의 욕구가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이 시점에 시대를 역행하는 국회의 구태를 지켜 본 국민들은 "그래, 두고보자 4월에 함 봐라" 라고 분노를 삭이고 있는 것 같다.

각 시민단체들은 보다 강도 높은 낙선운동, 당선운동을 벌이겠다고 벼르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이번 총선이 진정한 정치개혁의 시발점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나 또한 2004년 4월에 세상이 다시 한번 뒤집어 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러나 적어도 내 주위를 둘러보면 세상 뒤집기가 쉽지 만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내 주변, 우리들의 삶 속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이유를 크게 두 가지를 들어보겠다.

첫째, 아직까지 구시대적 사고방식에 젖어 있는 기성세대들이 많다는 것이다.

'구관이 명관이다.'
'우리가 남이가.'
'밥 한 그릇이라도 얻어먹은 사람 찍어야지.'

선거하면 떠오르는 몇 가지 말들이다. 이러한 말들에 나타난 공통성은 바로 '정'이다. 정에 약한 민족이 우리 민족이며 특히, 우리네 부모님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다.

정(情)의 정서가 저변에 깔려 있는 이상 구시대적 선거관행 즉 돈선거나 조직선거, 지역정서에 호소하는 선거를 초래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이러한 선거관행은 기득권을 갖고 있는 세력에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하여 다시 한번 그들이 득세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김대중, 노무현은 빨갱이다.'
'김대중의 노벨평화상은 김정일에게 돈 갖다 주고 산 거나 다름없다.'
'봐라! 젊은것들이 똥인지 된장인지도 모르고 대통령 뽑으니깐 나라가 요모양 요꼴이다.'

극단적인 말들 같지만 우리들의 어머니, 할머니들에게서 쉽게 들을 수 있는 말들이다. 기성세대들이 갖고 있는 현정권에 대한 반감, 극단적인 보수적 성향, 변화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 군사정권에 대한 아련한 향수, 이런 정서들은 국회의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특정당의 기득권을 지켜주는 보호막이 될 것이며, 세상뒤집기의 걸림돌로 작용할 것은 자명하다.

지난 대선 때 40대 이상의 연령층의 투표율이 40대 이전 연령층 보다 높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의 어르신들 상당수는 투표를 안 하면 큰일 나는 줄 알고 있다. 구시대적 사고방식에 젖어 있는 유권자들이 많다는 것, 그러한 유권자들의 투표율마저 높다는 사실은 참으로 전의를 상실케 하는 일이다.

둘째, 젊은세대들의 정치적 무관심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야당대표요? 모르겠는데요'
'이회창 아닌가?'

직업의 특성상 대학생들과 접할 기회가 많은 나는 우리 나라 야당대표가 누구냐의 질문에 똑부러지게 대답하는 대학생들이 드물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내 주위에만 이런 젊은이들이 유독 많다고 보지는 않는다. 이러한 것이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대학생들의 보편적인 모습이라고 슬프지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바로 정치적 무관심이다.

군사정권 종식 이후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를 거치면서 이 사회는 민주화와 자유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독재와 폭력에 항거하고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던 젊은 세대들은 투쟁의 대상을 잃어버렸다. 점차 대학생들의 관심사는 이념, 국가에서 학내문제, 개인신상의 문제로 옮겨지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정치는 점점 젊은 세대들에게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또한 IMF 한파 이후 지금의 경제불황에 이르기까지 청년 실업은 큰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20대 중·후반 젊은이들의 모든 관심이 취업에 맞춰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당장 먹고 사는 일, 민생고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치에 대한 관심을 호소하는 것은 어쩌면 배부른 소리인지도 모른다.

사회가 점차 고도화, 다양화 되고, 보다 윤택한 삶을 추구하는 성향이 강해지면서 개인주의는 젊은층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또 '내 자신의 일이 아니다 싶은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불필요한 소모'라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많은 것도 정치적 무관심을 초래하는 하나의 원인으로 볼 수 있다. 기존의 정치에 대한 환멸과 염증으로 인해 정치에 신경을 꺼버리는 젊은이들도 많을 것이다.

정치에 무관심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 완벽하게 갖추어진 이 현실 앞에서 그들의 냉소와 무관심을 마냥 탓할 수도 없을 것 같다.

그들의 무관심이 심정적으로 이해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는 분명 잘못된 고쳐야 할 일이다. 젊은 세대들의 정치적 무관심이 계속 되어 4월 총선까지 이어진다면 투표자보다 나들이 가는 이들이 더 많을 것이고, 이는 젊은층들의 저조한 투표율로 나타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위에서 언급한 구시대적 어른들은 대항마를 잃어버려 이번 총선은 그야말로 기성세대의 잔치가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또 한번 역사의 수레바퀴가 헛돌도록 내버려둬야 한단 말인가? 그러나 희망은 있다. 적어도 이곳에서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정치에 대한 분노로 답답한 가슴을 쓸어 내리는 사람들, 원칙이 통하지 않고, 땀 한 방울이 열매 하나로 다가오지 않는 이 뒤틀린 세상에 슬퍼하고 화가 나는 사람들, 그래서 이 세상을 뒤집어 제대로 된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사람들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이 '절망' 아닌 '희망'을 갖게 한다.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을 나는 우리 젊은이들이라고 칭하고 싶다. 우리 젊은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분명 있다. 그리 어렵지도 않다. 나 스스로의 작은 노력이 모이면 분명 세상을 뒤집을 수 있음을 우린 모두 알고 있다.

세상을 뒤집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장 먼저 준비해 할 것은 올바른 비판의식을 갖는 것이다. 현재의 정국이 어떤 상황이며, 무엇이 문제이며,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각자의 양심과 원칙에 입각하여 제대로 비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생각하고 비판한 결과를 나름대로 정리하여 다른 이들에게 이야기 해주어야 한다.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라는 미국 영화가 있다. 작품의 완성도를 떠나 이 영화는 아주 간단하면서도 분명한 주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내가 남을 도와주고 도움을 받은 사람이 다른 두 사람 세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또 그 도움을 여러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그러다 보면 아름다운 세상이 되지 않겠는가'라는 좀 유치하지만 결코 틀리지 않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랑의 피라미드, 사랑의 다단계로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 젊은 사람들의 의지와 생각을 다른 이들에게 이해시키고 공감할 수 있는 노력을 이 같이 전개하면 된다. 젊은이들이 친숙한 인터넷 게시판, 메신저,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블로그 등을 통해서 설파하는 것이다.

지난 대선에도 우리는 분명히 보았다. 이 나라의 여론을 좌지우지하던 보수족벌 언론과 수구세력들이 우리 인터넷 매체를 통한 네티즌들에게 무너지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

2003년을 실망과 분노로 보낸 이들, 그래서 떠나 버린 그들을 다시 불러모아야 한다. 선거날을 노는 날로 취급하는, 그래서 투표보다는 애인과 데이트하고 꽃놀이 계획을 세우는 주위의 사람들을 독려하여 내가 사는 고장에 누가 입후보를 했는지, 어떤 사람인지 알고 투표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수구정당과, 수구언론에 대한 지지가 신앙처럼 확고한 우리의 어르신들과 대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 젊은 세대들은 지금을 달려 미래를 만들어 가야 할 막중한 의무를 지니고 있다. 우리의 아들, 딸들에게 보다 나은 삶을 터전을 마련해 주기 위해서, 후세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기성세대가 되기 위해서, 원칙과 정의가 바로 서는 그러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일어서야 한다. 지금 바로 일어나서 세상을 뒤집어야 한다.

혼자서 꿈을 꾸면 꿈일 뿐이지만, 너와 내가 꿈을 꾸고, 우리 모두가 그 꿈이 이뤄지길 바란다면 그것은 현실이 된다는 말로 치기 어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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