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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대전 유성 유진호텔에서 열린 '농어촌. 작은학교 교육살리기 토론회'
3일 대전 유성 유진호텔에서 열린 '농어촌. 작은학교 교육살리기 토론회' ⓒ 심규상
이농으로 인한 교육기반의 파괴, 교육불평등, 시청각실 도서관도 마련되지 않은 열악한 교육공간, 매년 폐교의 위협으로 안절부절못하는 학부모들. 끝내 시-읍·면 소재지로 유학길을 떠나는 어린아이들. '농어촌 학교'하면 떠오르는 단상들이다.

하지만 이와는 정반대의 농어촌 작은 학교들이 있다.

조금이라도 더 오래 학교에 있기를 원하는 아이들. 방학이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아이들. 낙엽이 지는 학교 뒷산을 보며 시를 쓸줄 아는 아이들. 산과 나무가 놀이터가 되는 학교. 교사와 학생 모두 전교생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는 학교. 학급 아이들 하나 하나의 특성과 장점을 모두 파악하는 교사.

새해 벽두부터 농어촌 작은 학교 교육을 살리려는 교사 학부모들이 전국각지에서 모였다. 지난 3일 대전 유성 유진호텔에서 열린 '농어촌. 작은학교 교육살리기 토론회'에는 예상 인원보다 훌쩍 배 이상의 사람들이 자리를 메웠다.

작고 아름다운 학교 만들기에 나선 전북 삼우초등학교, 학교의 위기를 교육의 희망으로 탈바꿈시킨 남한산초등학교, 인근 도심(아산,천안) 학생을 끌어들여 전원형 학교를 만든 충남 거산분교, 학부모와 함께 하는 경북 송계분교, 푸른 꿈을 가꾸는 경북 상천분교...

이들 학교의 이전의 모습은 여느 농어촌 학교와 다르지 않았다. 학교 문을 닫을 위기에 봉착했다. 노후한 건축물, 문화적 소외 등 낙후된 학교 환경에 노출돼 있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무너져 내리는 위기의 학교를 희망의 교육 공간으로 탈바꿈 시켰을까. 각기 다른 여건이지만 이들의 사례발표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 심규상
우선 교육인적자원부가 농어촌 소규모학교를 예산절감을 위한 통폐합 대상으로 볼 때 이들은 하나같이 지역사회적 기능을 중시했다. 오히려 천혜의 자연환경과 농어촌만이 갖는 교육환경에 주목해 한 것. 교육의 꿈을 가진 교사들이 팀을 이뤄 학부모를 설득하고 거꾸로 인근 도회지 아이들을 전입시켜 학교를 살렸다.

학교시설을 교육적이고 생태적인 아름답게 정비하고 지역사회의 특성을 살린 다양한 교육과정을 운영했다. 산책로, 숲 속 놀이터가 있는 학교, 책가방 없는 학교, 시멘트 스텐드 대신 잔디언덕이 있는 학교로 변모시켰다.

정규과목 외에 봄나물 뜯어먹기. 쓱 뜯어 쑥떡 해먹기, 산 오르기, 고구마 심고 캐기. 마늘심기, 들꽃기행, 텃밭 가꾸기, 별자리 찾기 등 지역 특성에 맞는 각종 체험학습으로 아이들의 감성과 감각을 키우고 노동의 기쁨을 일깨웠다. 교사뿐 아니라 학부모들도 교육주체로 참여해 민주적 운영을 일궈냈다.

상주 송계분교 3학년 이성환 군이 생각하는 학교는 그래서 '행복한 학교'다. 공부시간에는 선생님이 가족처럼 대해준다/ 친구, 형, 누나, 동생들은 가족 같아서 꼭 집 같다/ 우리들의 수가 적어도 적은 게 아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느껴진다. 어른들과 함께/ 수영하고 공부하고 축구하고 부러울 것이 없어서 일까? <이성환 군의 '행복한 학교' 중에서>


같은 학교 4학년 최병국 군에게 학교는 "동화 속의 학교"고 "사랑을 듬뿍 담아서 나누어주는 곳"이다.

충남 아산 송남초등학교 거산분교장은 "도시형 거대학교(학급당 40명 내외)는 집중화되고 과밀화된데다 교육환경마저 비교육적이고 반정서적인데 비해 전원형 작은 학교는 자연 친화적이고 정서적인 교육환경에서 인간적 규모의 공동체(학급당 20명 내외)를 이루며 공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학교에 자녀를 둔 한 학부모는 "거산분교에 다니는 학생들과 교사,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전체항목에서 매우 높은 만족도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남한산초등학교 서길원씨는 "학교구성원들이 모든 문제를 참여해서 결정하는 등 누구도 이 학교에서는 소외되지 않는다"며 "이 모든 것이 작은 학교가 주는 장점"이라고 말했다.

작은 학교의 장점이 학교의 작음이나 숫자상 작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실증하고 있는 셈이다. 서 씨는 "학교가 작다는 것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관계가 긴밀해지고 서로가 존중받으며 교육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 심규상
하지만 이들 농어촌 작은 학교들의 교육 희망 만들기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거산분교의 경우 인근 도심지역 학생들이 다니고 있지만 관할 충남도교육청의 판단은 여전히 '위장전입생'이다. 이 때문에 본교 승격과 인근 송남 중학교로의 진학의 길이 막혀 있다. 거산분교장은 "인접 도시에 거주하는 학생들이 자유롭게 농촌학교에 입학할 수 있도록 현행 학구 제한규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한산초등학교 서길원 교사는 "농어촌에 맞는 교육과정을 만들고 학생들만이 아닌 좋은 교사가 오고 싶어하는 학교를 만드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며 "이런 점에서 '학교는 여전히 공사중'"이라고 말했다.

4일 오전까지 이어진 토론회를 참석한 사람들의 한결같은 바람과 결론은 이렇다.

"더 이상 농어촌 학교를 통폐합 대상으로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상급기관이 적법 절차와 원칙만을 앞세우기 보다 공교육 활성화를 위해 학교개혁에 힘을 실어 줬으면 좋겠다" ,"학교문화를 바꾸기 위해 교사 스스로가 살갗을 벗기는 아픔을 감내하자"

2004년 농어촌 작은 학교 교육을 살리기는 그동안의 실험과 열정을 나누는 것으로 희망 만들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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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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