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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김밥을 두어줄 말고나니 2004년이 되어버렸습니다. 틀어 논 텔레비전에서는 계속해서 종소리가 들리고, 시민들의 인터뷰도 이어집니다. 흘깃 흘깃 텔레비전으로 눈을 돌려보지만 할 일이 많아 귀에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이 날은(31일) 함께 일을 하는 주방 이모가 쉬는 탓에 사장 이모가 대신 주방을 맡았습니다. 역시 주인이기 때문에 일하는 사람에 대해 이것 저것 지적하는 사항들이 많습니다. 한 달 동안 한번도 하지 않았던 일이 원래 나의 임무였다는 것도 알게된 날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화장실 청소였습니다. 주방 이모가 별다른 말없이 지금껏 청소를 해서 저의 일이 아니라 생각했었는데, 사장 이모 말에 의하면 '원래 막내가 하는 것'이랍니다. 조그마한 화장실에 락스를 풀고 치우면서 새삼 주방 이모의 배려가 진하게 느껴졌습니다.

원래 일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하루동안 함께 일을 하게되면 일이 더 많아집니다. 손발이 안 맞기 때문입니다. 가게의 주인이어서 그런지 손님들에 대한 태도도 저희랑 조금 다릅니다. 여유를 가지고 해도 될 것 같은데, 사장 이모는 마음이 바쁩니다. 제가 일하는 것이 영 성에 차지 않는 지 당근을 썰다가도 와서 걸레질 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손님이 많은 날도 잠시 짬을 내어 앉을 시간이 있었는데, 이날은 손님이 많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리에 앉을 시간이 없었습니다.

퇴근할 시간이 다가오자 괜시리 웃음이 나왔습니다. 1일은 월급을 타는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방송에서는 오전 7시 30~40분 쯤에 해를 볼수 있다고 하여 바닷가를 갈까 생각도 하고, 신년 첫날 가족들에게 뭐라도 사주어야겠다는 마음에 조금 들떠 있었습니다.

게다가 퇴근시간인 7시가 아직 안되었는데, 사장 이모가 퇴근하라고 합니다. 기분은 더더욱 좋아졌습니다. 그러나 앞치마를 벗고 옷을 꺼내 입고 있는데도 사장 이모는 주방에서 나올 생각을 안 합니다. 유자차를 끓여 마시고 있는 사장 이모는 수고했다는 말만 합니다. 순간 저의 표정이 굳어졌습니다.

일그어지는 표정을 다듬고 사장 이모에게 물었습니다.
"오늘 월급날인데 월급 안줘요?"
사장이모는 "준비를 못했다"며 오늘 저녁에 출근하면 주겠다고 합니다. 신년초 내가 제일 먼저 겪게되는 일이 제때 받아야 할 돈을 못 받게 된 일이라는 생각이 드니 갑자기 화가났습니다.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않은 사장 이모에게 섭섭함도 밀려왔습니다.

"첫 월급이여서 기대했는가 보네?"라고 말하는 사장이모에게 "오늘 써야 될 것도 있고 계획을 잡아놓은 것도 있는데 이렇게 되니 좀 그렇지요"라고 말을 하고 퇴근을 하였습니다.

같은 1일이지만 아침에 퇴근을 하면서 돈을 받으면 이날 필요한 것을 사기도 할 것인데, 1일 밤에 출근을 해서 받으면 결국 2일에 받는 것과 같아집니다. 하루 차이가 별 대수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람기분이 그렇지 않습니다.

월급은 제때 주는 것인데...

상한 기분을 빨리 풀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집으로 오니, 어머니께서는 나갈 채비를 서두르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절에 갈 채비를 서두르셨습니다. 저도 함께 가겟노라고 말을 하고 후다닥 씻고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집에서 한 2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그 절에 오르면 바다가 한눈에 다 들어옵니다. 절 입구에 들어서면서 합장을 하고 허리를 숙이는데, 통증이 옵니다. 하루 10시간 일하고 나면 허리가 꽤 아픕니다.

대웅전으로 들어서기 전에 광안대교를 보니 사람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해는 오른 것 같았는데, 흐린 날씨 탓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밤을 새며 기다린 사람들이 많이 아쉬웠을 것 같았습니다.

법당에 들어서서 기다란 기도 방석을 꺼내 절을 했습니다. 문득 108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가지를 마음에 담고 절을 했습니다. 성철 스님은 당신을 만나러 온 사람에게 먼저 3000배를 시켰다고 합니다. 그렇게 절을 하고나면 문제가 있었던 사람들이 자신이 무슨 문제를 가지고 스님을 만나러 왔는 지 나중에는 다 잊게 된답니다. 그러나 아직 미망을 버리지 못한 탓인지 '반드시'라는 말까지 들어가는 결심을 하며 절을 해봅니다.

염주를 쥐고 하지 않아 정확하게 108배였는지 모르겠습니다. 평소 집에서도 108배를 자주하셨던 어머니는 이제 무릎이 아파오셔서 3배를 하는 것도 조금 힘들어 하십니다. 절을 하고 나니 체육대회를 하고 난 다음날 처럼 다리가 뭉친 것 같았습니다.

점점 사람들이 법당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원래 어머니와 앉아서 읽으려던 '금강경'을 제자리에 두고 나왔습니다.

대웅전 밖으로 나와 저의 신발을 찾으니 흩어져 있었습니다. 아마도 빌고 싶은 것이 많은 사람들이 급한 마음에 신발을 어지럽힌 것 같습니다. 어머니와 저는 그 널려져 있는 신발들을 가지런히 놓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 있으니 법당에 들어가는 사람도 자신의 신발을 가지런히 놓고 들어갑니다. 법당을 나오는 사람들도 조심스럽게 신발을 신습니다. 올 한해 이런 마음으로 살아야겠다고 다짐을 해봅니다.

고개를 숙이고 신발을 정리하느라 흐린 하늘 사이로 벌겋게 떠오른 해를 잊었습니다. 고개를 드니 참으로 동그랗고 커다란 해가 저를 보고 있었습니다. 환한 해를 보고 있으니 어머니와 저의 얼굴도 환해집니다. 같은 해일텐데 정초에 보면 확실히 더 크고 환한것 같습니다.

큰 석불이 있는 곳으로 오르니 아마도 전날부터 와 있었을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사진도 찍고, 담소도 나누고 있습니다. 장작불도 활활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석불에 3배를 하고 장작불 가까이 가니, 어머니께서 종이를 내밉니다. 소원을 적어 불에 태우라는 하시는데, 별다른 소원이 없었습니다. 매년 새해가 되면 10계명 처럼 1.영어, 일어공부 2. 다이어트 3.저축 4..... 이렇게 되는 결심들이 있었는데 올해는 별다른 것이 없습니다. 그래도 두 가지를 적어 태워보냈습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퇴근길에 가졌던 좋지 못했던 마음을 날려버리고 난 가벼운 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냥 월급을 받지 못한 것은 2003년의 일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소원을 빌었습니까? 혹시 그 소원이 '모두가'라는 말로 시작되는 것이 있나요? 모두가 기쁘고 아름다운 한 해가 되길 빕니다.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덧붙이는 글 | 월급을 받으면 가족들에게 고기한번 먹일거라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1월 1일인데 하는 생각이 들어 가까운 마트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원래 월급봉투에 든 돈을 꺼내 사려고 했었는 데, 결국 신용카드를 사용하고 말았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어제(1일) 저녁 월급봉투 받았습니다. ㅊㅊㅊㅊㅊㅊㅊ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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