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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 다녀요?”
"제 이웃 한분이 묻더군요. 매일 아침 집을 나가서 저녁에 들어오니까 돈벌러 나가는 줄 알았나봐요.”
자신을 직장인으로 오해하는 이웃에게 그저 웃음으로 답했다는 이는 박화숙(44, 대전 동구 용운동)씨다. 두 아이의 엄마이자 한 남편의 아내로서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가정주부지만 드러나지 않는 또 하나의 모습이 있다. 바로 1년 365일 봉사가 그것.
양로원·고아원 시설 방문 봉사, 노인 목욕 봉사, 도시락 배달 봉사 등 일주일 스케줄은 정기적인 활동으로 꽉 짜여져 있다. 그 밖에 나머지 시간은 인연을 맺은 독거노인과 함께 보내고 있다. 이처럼 하루 일과는 여느 직장인 못지않게 빡빡하게 돌아간다.
자신을 가꾸는 시간보다 남을 위해 살고 있는 그녀의 인생은 어릴 적 어머니 영향이 컸다.
"시골 마을 어귀, 울타리 넘어 마당이 있는 자그마한 집에 살았죠. 한 편에는 우물이 있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물 한 대접 마시러 들르곤 했어요. 어머니는 그들이 벌컥벌컥 물 마시는 모습만 보고도 배가 고픈 지 알아차리고 부엌에서 먹을 것을 주섬주섬 챙겨 나누어 주었죠.”
없는 살림에도 베푸는 미덕을 지닌 어머니. 그녀는 그 모습을 보고 성장했고 그 성품 그대로를 이어 받았다.
남편의 발령으로 대전으로 이사 오기 전 그녀는 부산에서 살았다. 미용실을 운영했고 일주일에 한번 쉬는 날은 어김없이 양로원을 방문했다.
"노인들 머리를 다듬어 주는 일을 했어요. 그 때 결심한 것은 ‘봉사는 딱 10년만 하자’하는 생각였는데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쉽게 손을 놓아 버릴 수 없었죠.”
그녀에게 봉사는 중독이었다. 지난 95년 대전이라는 낯선 도시에 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은 봉사할 곳을 찾는 것이었다.
"마음만 있으면 봉사할 곳도 많고 방법도 다양하죠.”사는 지역만 다를 뿐 봉사는 계속 이어졌다.
오랫 동안 미용실을 운영한 탓에 건강에 적신호가 들어왔다. ‘자기 몸도 성치 않은 사람이 어떻게 남을 돌보느냐’ 며 남편의 걱정 가득한 잔소리를 듣기도 했다. 하지만 그냥 집에서 편히 쉬고 있으려니 몸이 더 아팠다는 그녀는 오늘도 즐거운 발걸음으로 이웃들을 향하고 있다.
무엇보다 각별한 애정을 쏟으며 활동하는 것은 ‘독거노인돌보기’다. 지금까지 인연을 맺은 독거노인은 모두 열두 명. 그 중 네 명은 임종했고 현재 여덟 명만 생존해있다.
"동네 가까이 사는 분들이니까, 제 집 드나들 듯이 방문을 해요. 재료를 사서 찬도 만들어 놓고 청소도 하고 특별한 일을 하는 게 아니죠. 말벗이 또 별 건가요. 편하게 툭 터놓고 수다 떠는 거예요."
"저 놀러왔어요"라며 시시때때로 문을 열고 들어서는 그녀를 딸처럼 여기는 노인들. 하지만 처음부터 그녀가 지금처럼 그들과 허물없이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 집을 방문하면 낯을 가리고 눈도 마주치지 않아요. 허름한 골방에 홀로 지내면서 방 한 쪽에는 식사한 밥상이 있고 한 쪽에는 요강과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죠. 아무도 찾는 사람이 없으니까 몸도 지저분하게 방치하고 있답니다.”
자식들에게 버림받고 외로운 여생을 보내고 있는 이들은 상처가 깊은 만큼 마음의 문을 꼭 닫아 놓고 지내고 있다. 하루아침에 이들과 친해지는 것은 불가능한 법.
"최대한 자주 방문해서 성의를 다하면 서서히 말문과 동시에 마음의 문도 열어가기 시작해요. 그리고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하나둘 풀어 놓죠."
몇 밤 며칠을 새도 끝이 없는 할머니의 기막힌 인생사가 그녀의 가슴을 쓸어내린 적도 여러 번이다.
“젊은 나이에 남편은 바람이 나서 도망가고 자식은 병에 걸려 죽었답니다. 그 후 자식이 많은 집에 재혼을 했고 아이들을 힘들게 키웠대요. 하지만 모두 성장한 후에는 결국 병들고 나이 든 자신을 버리더라는 할머니가 있어요. 또 뉴스에서 나오는 부모 때리는 자식이 멀리 있지 않아죠. 어떤 할머니를 씻겨 드리다 보면 멍든 자국, 흉터가 보여서 왜 그러냐고 물으면 처음에는 얼버무리지만 나중에는 눈물을 쏟아내며 말 못할 사연들을 털어 놓는 답니다.”
오늘도 그녀는 친자식보다 애틋하고 진한 정을 베풀며 독거노인들의 딸 노릇을 하고 있다. 어디 불편한 곳은 없는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세심한 주의를 아끼지 않는 그녀. 어느 한 분이라도 찾아보지 못하면 서운할까봐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서 자신이 가진 것 이상을 골고루 나누어주기에 여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