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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해 진흙탕같은 세상을 살아내면서 오마이뉴스 '올해의 인물'로 문규현신부가 선정되었다는 기사를 접하고 기뻤습니다. 그러면서 지난 '삼보일배' 기간 수행소식을 전해들을 때의 감동과 환희, 안타까움과 죄스러웠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매일 전해지는 '삼보일배'의 소식은 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생명과 희망을 일뜨게 하기에 그득하였으며 사람으로 태어난 덕택과 행복을 느끼게 해준 더할 수 없는 은총이었으며 끝내는 천둥같은 죽비가 되어 내 게으르고 무기력한 삶을 질타하였습니다. 혼자 속으로 '해방 이 후 최고의 이벤트 두 개 중의 하나'로 저울질하며 신이 나기도 하였습니다.

'삼보일배'라는 고행의 근본적인 출발은 스스로의 참회입니다. 새만금이라는 환경이나 생태문제에서 나아가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로서의 사회에 대하여, 이웃에 대하여 그리고 그 출발이라고 할 수 있는 자신에 대하여 나약하고 게으르고 흐리멍텅한 것들을 그냥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라는 절대적 가치를 걸고 스스로에게 묻고 있다는 겁니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흔들리고 두려워하면서 마침내 결단하기까지의 과정, 문규현 신부는 임수경씨 방북 때의 고뇌를 떠올렸다 합니다. 당시 어느 이름있는 소설가는 '철없는 아이의 불장난'이라며 빈정대었습니다만 철든 어른으로서 철없는 아이의 손목을 잡고 그 아이가 혼자 감당해야 했을 외로움과 두려움을 함께 나누고자 같이 판문점을 내려온 신부님의 모습은 용기와 신앙, 의식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근본적 예의와 저 밑바닥에서부터 함께 아프고자 하는 정성스런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겠지요.

'삼보일배'도 이러한 모습에 다름아니며 그 마음의 잇대기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고행이라고 말하지만 그 고통이 얼마만한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

다만 하루 4-6km씩, 2천배 이상 온 몸을 땅에 누이며 60여일 동안 3백km 이상을 걸어가는 일이 자신의 목숨을 내건 일임을 어렴풋이 짐작해 볼 뿐입니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극한의 몸부림은 이들이 기꺼이 나서서 만든 상황이 결코 아니라는 겁니다. 어쩌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스스로를 내던지지 않으면 안된다고 판단한 때문이지요.

누가 이들을 내몰았을까요. 언제나 그렇듯이 우리들입니다. 이 땅의 생명있는 것들에 대하여 아스팔트 걸음걸음 온 몸으로 사죄하고 참회하고 고통을 감내해야 할만큼 우리의 게으르고 나약하고 무관심한 반생명의 죄가 그 만큼 크고 깊다는 뜻이지요. 지난 대선 때 자주 인용되었던 '농부가 밭을 탓하랴' 하는 말이 얼마나 오만하고 자기중심적인 말이었는지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귀하고 값진 경험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형편없고 막되먹은 존재인지를 목숨으로 깨우치고 있는 현장을 목격한 것입니다.

삶은 때로 놀이판이 되기도 한고 난장판이 되기도 하며 그것대로 충분한 의미가 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삶의 놀음'이라는 것이 그 진정성을 담아내지 못할 때 비뚤어지고 부석대고 깡통소리 요란한 거짓놀음이 될 것입니다. 삶의 진정성의 출발은 생명에 대한 인식입니다. 곧 모든 목숨부치들에 대한 경의와 겸허함 그리고 순정함으로 이들을 어루만지는 일이며 우리 자신 온 우주의 깨알같은 생명 중의 하나이며 또한 유일하고 귀한 존재임을 깨닫는 일입니다.

신부님은 수행길에 앞서 대구 지하철 참사와 미국의 이라크 침공 그리고 새만금 갯벌문제가 똑같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참혹한 반생명의 현실 속에 목숨걸고 고통하는 일 이외의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었겠지요

이제 '삼보일배'의 수행길은 지금 우리에게 다시 출발하라 이릅니다. 삶에 대하여 목숨에 대하여 정성을 다하여 다시 돌아보라 이릅니다. 여전히 이 땅에는 높은 목소리, 잘난 목소리가 판을 치고 자조와 냉소의 덜떨어진 무관심과 무책임이 가득합니다.

'삼보일배' 이 후 많은 일들이 있었고 앞으로도 있겠지만 지금 우리 발등에 떨어진 큰 불이 있습니다. 바로 이라크 파병문제입니다. 이 세상에 정의로운 전쟁은 없다고 하였습니다. 전쟁의 본질은 살육과 약탈입니다. 그것도 미국의 일방적인 이해와 도발로 이루어진 이번 전쟁은 철저하게 그들만의 전쟁이며 이라크 파병은 대리전에 다름 아닙니다.

명분도 대의도 저버린 남의 나라 싸움터에 우리 젊은이들을 내보내는 일은 지난 베트남전쟁만으로도 뼈저린 아픔입니다. 이제 다시 공범이 될 수는 없습니다. 결단코 안됩니다. 만에 하나 이라크 파병이 이루어진다면 더 이상 평화니 민주니 목숨이니 생명운동이니 생태공동체니 입도 벙긋 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나설 때입니다 나를 살리고 우리를 살리고 이 세상을 살리는 '살이'를 시작할 때입니다. 아스팔트 바닥에 온 몸을 누이고 거기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그것이 어지럽고 막막한 얼어붙은 이 땅에 '삼보일배'의 수행이, 문규현 신부가 온 몸으로 전하는 한 줄기 단비같은, 한 줌의 풀씨같은, 한 모금 샘물같은 축복의 메시지입니다.아무도 비켜갈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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