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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하멜른에는 길 바닥에 쥐들이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간 길이 그려져 있다.
이처럼 하멜른에는 길 바닥에 쥐들이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간 길이 그려져 있다. ⓒ KOKI
비가 개어 상쾌했던 이른 아침에 브레멘을 출발한 캠핑카가 하멜른에 도착한 것은 오후 5시가 막 넘어서였다. 6번 국도를 따라 달리다 옛 독일의 농기구와 가옥들을 전시해 놓은 시케라는 마을에 들렀다 오느라 시간이 약간 지체됐다.

우리 나라보다 위도가 훨씬 높은 독일이기에 이미 4시 반쯤 해가 지기는 했다. 그러나 괴팅겐까지 계속 달려도 될 시간과 거리였다. 그런데 어제 저녁 맥주값이 물값보다 싸다고 유난히 많이 마셔대던 승희 형이 문제였다. 오늘은 너무 무리하지 말고 하멜른에서 자고 가자는 것이었다.

겨울이라 캠핑카를 세울 공간이 번화가 주변에도 넉넉했다. 그러니 괜히 예정에 없던 캠핑장에 들어갈 필요는 없었다. 일단 시청 근처에 차를 세워 두고 하멜른 시내로 들어갔다.

다른 유럽 도시들 못지 않게 역시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화려하기만 한 하멜른. 쇼 윈도우마다 성탄을 알리는 트리가, 가판대마다 산타 모자가 널려 있다. 그런데 특별한 것이 하나 더 있다.

하멜른 시내 길 바닥에 하얀색 쥐들이 그려져 있다. 그저 무턱대고 그려 놓은 것이 아니다. 일정한 방향성을 띠고 길 위를 달리고 있었다. 골목골목을 누비며. 그러고 보니 주변 상점 중에도 안팎을 쥐로 장식해 놓은 집들도 적잖게 눈에 띠었다.

왜? 하멜른은 동화 ‘피리 부는 사나이’의 주요 배경이 된 마을이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누나 책상에 꽂혀 있던 문고판 동화책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어렴풋한 기억을 떠올려 보면, 하멜른이란 작은 마을에는 쥐가 하도 들끓어 곡식을 갉아 먹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마을 여인들의 수다에도 쥐들이 나서서 끼여들 정도였다. 그러던 중 우연히 '피리 부는 사나이'가 이 마을을 지나게 되었다.

그는 자신만의 특별한 피리 소리로 쥐들을 하멜른 옆을 흐르는 베저강에 빠뜨려 처치했는데, 그 이후가 문제였다. 마을 사람들이 원래 주기로 한 보상금을 주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결국? 피리 부는 사나이는 다시 피리를 불었다. 이번에 반응한 것은 쥐가 아닌 동네 아이들. 결국 피리 부는 사나이는 마을의 아이란 아이는 모두 데리고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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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멜른은 거리나 상점들이 온통 '피리 부는 사나이' 장식이다.
하멜른은 거리나 상점들이 온통 '피리 부는 사나이' 장식이다. ⓒ KOKI

동화와 직접 연관이 있는 마을이라 그런지 브레멘에 이어 역시 장난감 가게가 많이 눈에 띄었다. 쥐의 모양을 본뜬 인형이나 장난감이 많았던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이들의 여행 자원 활용은 비단 장난감에만 그치지 않았다.

"하멜른엔 처음인가요? 부르거가르텐에 가면 쥐 경주를 볼 수 있어요. 아차, '피리 부는 사나이의 집'에 가면 쥐꼬리 요리를 먹을 수 있는데. 가 봤어요? 뭐, 그냥 쥐 모양 빵을 먹을 수도 있고요."

맥주 한 잔 앞에 두고 저녁이나 할까 하고 들어간 펍. 주인이 한다는 말이 가관이었다. 엽기도 이런 엽기가 없다. 하멜른에 왔으면 쥐꼬리 요리를 꼭 먹어봐야 한단다. '피리 부는 사나이의 집'에 가면 특별히 '맛있는' 쥐 요리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지난 한일 월드컵 당시 프랑스 배우 브리짓 바르도가 ‘한국 사람들은 개를 먹는 야만족’이라는 투의 발언을 해 한국인들의 감정을 상하게 한 바 있다. 그런데 쥐를 먹는다고?

알고 보니, 다행스럽게도(?) 실제 쥐는 아니었다. 돼지 등심살을 이용해 쥐꼬리 모양으로 만든 음식이었다. 그래도 그 모양을 보고 있자니 어릴 때 많이 보았던 쥐가 떠오르면서 “웁!”

하긴 ‘맛있는 음식이 없다’는 인식이 강하게 퍼져있는 독일이고 보면, 무언가 특별한 요리를 만들 필요도 있었을 법하다. 게다가 여긴 많은 이들이 찾는 여행지 아닌가. 그런데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쥐꼬리 모양 음식은 아무리 비위가 강한 나로서도 ‘이건 아니올시다’말이 절로 나올만 했다.

브덴베르더에 있는 '허풍선이 남작'의 동상. 그가 태어났다는 집 앞에 있다.
브덴베르더에 있는 '허풍선이 남작'의 동상. 그가 태어났다는 집 앞에 있다. ⓒ KOKI
동화 <피리 부는 사나이>의 낭만에 취하고, 쥐꼬리에 놀란 후 찾아간 곳은 좀 더 남쪽에 있는 보덴베르더. 역시 동화와 관련이 있는 마을이다. 이번에는 <허풍선이 남작>. 우리 나라에는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이나 <바론의 대모험> 등으로 알려져 있는 동화다.

뮌히하우젠 남작은 18세기 러시아 군대의 장교로 근무했다고 전해지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가 사람들에 회자되는 이유는 엄격한 군기가 아니라 끝도 없는 허풍 때문.

거대한 물고기 뱃속이나 달나라 등에 들어가 봤다고 우기고, 화산을 통해 지구 반대편에도 갔던 적이 있다고 주장하는 뮌히하우젠 남작. 심지어 대포알을 타고 적진을 정찰했다고 '뻥'을 치기도 한 인물이 바로 그다. 우리 나라 정치인들도 저리 가라 할 뻥의 진수!

성당을 중심으로 형성된 다른 유럽 도시들과는 달리 시청을 중심으로 시가가 형성된 독일. 보덴베르더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바로 그 시청이 뮌히하우젠 남작이 태어났다고 전해지는 건물이라는 사실이다. 브레멘이 '브레멘 음악대'를 여행 자원화 하고, 하멜른이 '피리 부는 사나이'를 이용해 수익을 올리는 것처럼 보덴베르더는 '허풍선이 남작'으로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있던 것이다.

이렇게 당나귀와 강아지, 고양이, 수탉으로 이루어진 '브레멘 음악대'로 유명한 브레멘에서 시작해 '허풍선이 남작'의 고향 보덴베르더 등을 잇는 길을 일컬어 마르셴 가도, 즉 '동화 가도'라고 한다.

브레멘에서부터 하노버, 괴팅겐, 카셀, 하나우로 이어지는 길인데, 이 길을 따라 <헨젤과 그레텔> 등 수많은 전설과 동화들이 생겨 났기 때문에 동화 가도라 불린다는 것이다. 이 전설과 동화들을 수집해 1812년 처음으로 출판했던 야콥 그림과 빌헬름 그림, 즉 '그림 형제'가 활동했던 곳도 바로 이 길 위에 있는 괴팅겐.

전남 장성군과 강원도 강릉시가 홍길동 원조 논쟁을 벌이느라 정작 홍길동을 나몰라라 했던 기억. 그것에 비하면 이들은 일단 자기 지역의 동화와 관련한 사업들을 알차게 꾸려 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브레멘에서부터 하노버, 괴팅겐, 카셀로 이어지는 동화 가도. 사진은 하노버의 번화가.
브레멘에서부터 하노버, 괴팅겐, 카셀로 이어지는 동화 가도. 사진은 하노버의 번화가. ⓒ KOKI

허풍선이 남작의 보덴베르더를 빠져 나와 괴팅겐으로 향하는 도중 샘 형 전화기로 한국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승희 형을 찾는 전화였다. 한 5분 지났을까? 승희 형은 이번에도 역시 "알았어, 바이오니클 사갈게"로 말을 맺는다.

승희 형은 프랑크푸르트에서 암스테르담, 브레멘을 거쳐 이곳까지 오는 동안 연신 바이오니클을 되뇌었다. 바이오니클? 처음에는 바이오라는 말이 들어가길래 무슨 주방용 밀폐 용기쯤 되는 줄 알았다. 형수가 그것을 사오라고 특별 주문을 했던 걸까? 그러나 그것은 형수가 아닌 두 아들 녀석들에게서 받은 특명.

바이오니클은 다름 아닌 요즘 꼬마들 사이에서 이효리만큼이나 인기가 있다는 장난감이다. 복서와 타후누바, 엑소-토아 등의 캐릭터가 있다는데 장난감도 장난감이지만, 이들 캐릭터가 그려진 카드 역시 아이들 사이에서는 그 인기가 대단하단다. 특히 특이한 캐릭터가 그려진 카드는 누구나 부러워하는 보물이라고.

이번 여행에 '한국에는 없는' 바이오니클 카드를 사오라는 특명을 안고 온 승희 형. 그러나 고민이란다. 지금까지 브레멘과 하멜른, 보덴베르더를 둘러본 게 고작이지만, 지나치며 보았던 정감 어린 장난감이 머리 속에서 지워지질 않는다는 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승희 형은 어린 시절 어린이 문고를 읽으며 딱지 놀이와 말타기 놀이를 하며 자란 세대다. 특히 그의 놀이터는 사람 사는 냄새 나는 비탈길 골목이었고, 짭조름한 바다 내음이 나는 동해 바다였다. 그런 그가 보기에 방 안에서 바이오니클 카드나 컴퓨터 게임을 하며 노는 두 꼬마가 염려스러웠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두 아들이 원하는 바이오니클 카드를 사갈지, 아니면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을 것 같은 나무 장난감을 사갈지 그는 아직도 고민이다. 일단 쾨팅겐과 하나우, 카셀까지는 돌아보고 결정하겠단다. 내가 보기에 이미 바이오니클은 목록에서 사라진 듯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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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기억 저편에 존재하는 근현대 문화유산을 찾아 발걸음을 떼고 있습니다. 저서로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알마, 2008), <다시, 서울을 걷다>(알마, 2012), <권기봉의 도시산책>(알마, 2015)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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