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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희식
다시는 고리가 뻐드러지거나 빠지지 않을 것이다. 약간 헐렁하게 죄었다가 아무래도 안심이 되지 않아 목걸이 구멍을 하나 더 앞쪽으로 당겨서 죄었다. 새들이도 그게 좋겠다고 했다. 개 목걸이를 금이 목에 단단하게 걸면서 나는 별로 당당하지 못했다. 개 창살에 갇혀 그 순박한 눈망울을 껌뻑껌뻑할 때부터 나는 당당함을 잃었다.

아니 더 일찍부터 그랬다. 내가 풀린 개를 다시 묶어야 한다고 글을 쓰고 나서 몇 사람의 핀잔어린 글들을 보면서 당당함을 잃었다. 생태농사 짓는 사람이 동물을 묶고, 가두고, 술 먹이고 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개 한 마리를 키우더라도 더불어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지 관행처럼 남들 하듯이 그래서야 쓰겠냐는 비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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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 풀린 진돗개 목덜미를 누가 잡으랴

ⓒ 전희식
나는 그래도 '금이'를 잡아 목걸이를 걸 때는 배운 대로 금이 목덜미를 내 억센 손아귀로 꽉 거머쥐고 완전히 제압한 다음에 일을 시작했다. 어제 아는 후배가 가르쳐 준 대로 한 것이다. 어느 시민단체 같은 회원인 그 후배는 내게 그랬다.

"개는 절대 주인을 안 문다. 손을 입에 갖다 넣어도 안 문다. 개는 길을 잘 들여야 한다. 어떤 때는 때려서 가르쳐야 한다. 똥 싸는 거. 아무나에게 짖는 거. 무는 거. 하나하나 때리면서 길 들이면 좋은 개가 된다."

나는 그가 가르쳐 준 것 중에서 두 가지만 기억하기로 했다. 개를 잡을 때 목덜미를 쥐는 것과 앞으로는 자주 쓰다듬어 주고 금이를 더 예뻐해 주리라고.

ⓒ 전희식
자주 쓰다듬어 주고 산책도 시키고 같이 놀고 그래야 개 목걸이가 풀어져도 오라고 하면 바로 주인에게 온다는 것이었다. 내가 마음을 많이 고쳐먹는 것은 물론 개를 다시 붙들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 금이와 더 잘 지내기 위해서다. 개를 여러 번 키웠지만 나는 별로 익숙하지가 못하다. 우리 집에서 자라던 개들은 세 마리나 횡사를 해야했다. 자동차사고, 쥐약사고, 옆집 개한테 물리는 사고.

앞으로 금이와 잘 지내면서 내가 금이에게 불가피하게 저지른 폭력의 기억을 씻어주고 싶은 마음도 크다.

금이를 잘 붙들어서 살던 개집으로 데려다 놓고 먹이를 주는데 내가 가면 저만치 도망부터 갔다. 새들이가 가면 새들이 손길 아래 온 몸을 내맡긴다. 내가 금이에게 술 먹이고 목덜미 거머쥐고 개집에 가두고 한 악역들을 금이는 다 기억하는 모양이었다. 새들이는 마치 자기가 더 좋은 사람임이 입증이라도 된 듯이 금이를 안은 채 나를 쳐다보고 우쭐거렸다.

ⓒ 전희식
이번에 금이를 다시 붙잡을 때는 정말 여러모로 '인간적인' 배려를 한다고 했다.

또 다시 지난번처럼 술을 먹여 붙잡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 것은 덩치가 커져서 말술을 먹여도 안 될 거라는 현실적인 판단도 있었지만 그보다 지난번 술 먹여 잡을 때 비척거리는 금이의 모습을 다시는 맨 정신으로는 보지 못할 것 같아서였다.

초점을 잃고 일어서지도 못하고 곁에 가면 술 냄새가 진동을 하는 금이를 두 번 다시 그렇게 하지 않으리라 당시에 했던 다짐도 있다.

ⓒ 전희식
내가 연구해 낸 것은 결과적으로야 별 것 아니지만 며칠간 많은 고심을 한 것은 사실이다. 애를 태우던 며칠간이었다. 나는 제일 먼저 술보다 훨씬 부드러운(?) 수면제를 생각했다. 그러나 이내 포기해야 했다.

아는 후배가 약국을 하고 있어 갔더니 요즘은 '수면유도제'가 나온다고 했다. 아무리 먹어도 골아 떨어질 정도는 안 된다고 했다. 진짜 수면제는 의사 처방이 없으면 안 판다고 했다.

동네방네 싸돌아다니느라 신바람이 난 금이가 먹이 줄 때만 내 곁에 오고 손을 뻗으면 이내 목을 움츠리고 몸을 사리는지라 다시 묶을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물을 생각했다. 긴 대나무 끝 올가미 생각을 이내 포기하고 해 낸 생각이 이 그물이다.

ⓒ 전희식
마당에 닭을 놓아 먹일 때 쳤던 넓고 긴 그물이 있다. 그 그물 속으로 금이를 유도해서 덮칠 궁리를 한 것이다. 그물에 얽히기만 하면 손을 밀어 넣어 목걸이를 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실수를 하면 금이를 잡기가 더 어려워 질 거라는 생각에 망설여졌다. 힘도 세졌고 요령도 많아진 금이가 과연 그 나일론 그물에 잡힐까 의심이 들었다. 괜히 그물만 찢어 놓을 것 같았다.

결국 생각해 낸 것이 개 집에 먼저 가두고 그 다음에 묶는 것이었다.
개를 많이 키우는 동네 제일 아랫집 최씨네 가서 쇠창살 개집을 빌려와서 잡기로 한 것이다. 금이가 풀린 지가 벌써 여러 날 째라 마음이 조급해져 있었다. 동네 할아버지가 뭐라 야단은 못 치고 또 개를 풀어 놨냐고 할 때는 변명도 할 수 없었고, 엊그제 일요일에는 외지에 나가 사는 아들들이 데리고 온 꼬마 아이들이 동네골목을 누비고 다닐 때는 나는 금이 꽁무니만 따라 다녀야 하는 꼴이었다.

ⓒ 전희식
마당에서 안 보이기만 해도 어디가서 무슨 일 저지르지나 않나. 덥석 지나는 아이를 물지는 않나 안절부절이었다. 창살 안에 먹이를 넣고 아무리 지켜봐도 금이는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군침을 흘리면서도 끝내 그 쇠창살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눈치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지친 내가 포기하고 다른 일을 하다 와서 보니 음식을 핥은 듯이 싹 먹어 치웠다. 빈 스테인리스 밥그릇 광택만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새들이가 학교에서 돌아 왔길래 새들이 힘을 빌리기로 했다. 새들이를 문틈에 숨게 하고 길게 끈을 이어서 금이가 들어가면 문짝이 닫히게 했다. 아니나 다를까 바로 금이가 개 집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먼발치에서 새들이에게 절호의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고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치며 손짓을 크게 해 보였고 새들이는 있는 힘을 다해 줄을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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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컥!'하고 닫혀야 할 철장 문이 웬걸. 걸었던 고리만 쏙 뽑혀 달랑거리는 게 아닌가. 문짝은 그대로 걸려 있고 기척을 느낀 금이는 벌써 먹이를 다 먹고 줄행랑을 쳤다. 새들이는 달랑대는 문짝 고리를 치켜들고 몇 번이고 폭소를 터뜨렸다.

한번 놓친 개는 잡기가 더 힘들었다. 아예 근처에 오지 않는 것이었다. 이제 배도 부르겠다, 나름대로 인간들의 의도도 간파했겠다, 내가 거기 왜 들어가냐 하는 식이었다.

금이의 머릿속에서 직전 기억이 사라지는 데 몇 시간이 걸렸다. 나는 더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야 했고 새들이는 문짝 고리 실험을 여러 번 하면서 다시는 실수가 없도록 장치를 점검했다.

이렇게 해서 드디어 금이가 잡혔다. 그때의 금이 표정을 본 사람은 나밖에 없다. 찰나였지만 누구라도 나랑 같이 있었다면 금이 얼굴에 서린 그 배신감. 그 공포. 그 체념에 가슴이 내려앉았을 것이다. 마치 '못 믿을 인간 놈들아'하는 것 같았다.

ⓒ 전희식
나는 금이가 살던 집에 안팎으로 푹신하게 짚을 깔아 주었다. 잠자리는 좀 더 다듬었다. 춥지 않도록 금이 집 바람 틈새를 새들이랑 수리하기로 했다. 여기 금이 사진도 정성을 들여 외곽선도 그렸고 모서리도 둥그스레하게 다듬었다.

금이에게 보내는 내 속죄의 표시이고 화해의 손짓이다. 관리가 소홀해서 빚어진 이번의 소동은 온전히 내 잘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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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農)을 중심으로 연결과 회복의 삶을 꾸립니다. 생태영성의 길로 나아갑니다. '마음치유농장'을 일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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