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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별 일 아닌데 서러움으로 변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같은 일을 당해도 당시의 감정 상태에 따라 반응도 다르고 가슴에 남는 크기도 다릅니다. 날이 점점 추워지고 불어오는 바람을 피해가면서 나르는 라면과 김밥도, 하루에 몇번 오르락 내리락 하는 계단도 일상으로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날씨가 많이 추워졌습니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많이 없습니다. 당연히 손님도 없었습니다. 이런 날은 손님 한 사람이라도 들어오면 다른 때보다 더 반갑습니다. 말아놓았던 김밥들이 점점 말라갑니다. 많이 팔렸으면 좋겠는데, 오늘은 날이 아닌가 봅니다.

가게의 텔레비전은 채널이 몇 개 되지 않습니다. 24시간을 하니 케이블을 달기는 달았지만, 채널이 많고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많이 틀어놓으면 손님들이 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며 사장님이 몇 개로 고정해 놓았습니다. 사장님이 없을 때 조정하려고 시도를 해보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되지 않습니다.

밤 시간에 하는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재방송입니다. 덕분에 드라마들과 오락프로그램들은 두 세번씩 보게 됩니다. 평소 잘 보지 않던 프로그램들인데 이제는 줄줄 다 외울 수준이 되기도 하고, 텔레비전을 잘 볼 수 없는 주방 사람들에게 줄거리를 이야기해 주기도 합니다. 손님이 없어 보는 텔레비전은 그렇게 재미있지 않습니다.

종종 걸음으로 들어와서 김밥을 사가는 손님들이 하나둘씩 들어옵니다. 말아 놓았던 김밥이 다 팔려갑니다. 열심히 시청했던 텔레비전을 뒤로 하고 김밥 마는 곳으로 가서 김밥을 말기 시작했습니다. 밥을 해 놓은 지 시간이 꽤 흐른 탓에 손에 밥을 쥐기가 조금 힘이 듭니다. 게다가 약간 질게 된 밥이어서 그런지 차가워지자 잘 펴지지도 않습니다. 손에 힘이 들어가고 밥을 긁는 손톱들이 조금 아파옵니다.

몇 개를 말고 있는데,누군가 가게 문을 엽니다. 어서 오라는 인사를 했는데 그 사람은 얼굴만 조금 내밀 뿐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다시 얼굴을 쳐다보니 저에게 '300원'만 빌려달랍니다. 간혹 가게 문을 열고는 "메롱"하고 장난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또 장난을 치는 사람이라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직원이어서 돈이 없다라고 말을 하고 김밥을 계속 말고 있으니 다시 '300원'만 빌려달랍니다. 배가 고파서 그러니 '300원'만 빌려달랍니다. 간절한 표정과 비참한 음색이었습니다. 메롱하고 장난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300원'만 더 있으면 1000원이 되어 김밥을 한 줄 사 먹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손에 쥐고 있던 잔돈을 보여 주며 말을 합니다.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나서 김밥을 한 줄 꺼내 썰었습니다. 밥이 더 따뜻했으면 좋았으련만, 차갑게 식어버린 김밥은 저의 마음 같지 않았습니다. 젓가락도 넣고 단무지도 넣고 호일에 싼 김밥과 함께 건냈습니다.

고맙다라는 말을 계속해서 하고 문을 닫는 그 사람을 보고 나니 갑자기 눈물이 납니다. 주머니에서 천 원짜리를 한장 꺼내 돈통에 넣고 앉아서 다시 김밥을 말았습니다. 단무지가 두개로 보입니다.

길가를 지나다닐 때 흔히 보게 되는 구걸하는 사람들이 늘 가슴아팠던 것은 아닌데 오늘 보았던 TV프로그램 <느낌표> 재방송이 감정 상태를 조금 바꾸어 놓았나 봅니다. 뒤에서 보고 있던 주방 이모는 노가다를 해도 될 것인데 구걸을 한다며 뭐라 합니다. 나는 오죽하면 이런 곳에 와서 천 원짜리 김밥 한 줄 구걸하겠냐고 답을 합니다. 정말 오죽하면 그러겠습니까?

한번 주면 계속 오게 된다는 말을 합니다. 가게에 껌 팔려 오는 할아버지도 그런 경우이니까요. 그렇다고 '300원'이 모자라 '300원'을 빌려달라는 그 사람에게 '700원'어치를 팔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또 그 '700원' 구하기 위해 누구에게 손을 벌렸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더 안 좋아집니다.

이런 날은 갑자기 서러움이 밀려옵니다. 달랑 김밥 한 줄밖에 싸주지 못한 것이 서러워집니다. 그냥 들어와서 먹으라고 할 걸 하는 후회가 듭니다.

김밥 몇 개를 더 싸고 다시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니, 뉴스를 합니다. 트럭에 가득 실린 100억짜리 소식들입니다. 적어도 1억으로 시작되는 뉴스들은 147억 추징금의 이야기들을 전합니다. 이런 날은 정말 텔레비전 부셔버리고 싶습니다. 그 놈의 300원이 없어 구걸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많은 돈들 다 어디로 간 것입니까? 그리고 그 돈들은 다 어디서 나온 것입니까?

뻔뻔스러운 얼굴들과 남루한 그 사람의 얼굴이 계속 교차되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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