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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 창작과비평사
"이 책은 노동자들이 극도로 착취적이고 억압적인 생산체제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한 자주적 노조의 결성을 위해 어떻게 투쟁하였는가를 보여준다. 또한 그들이 어떻게 노동자로서 새로운 집단적 정체성과 공유된 이해에 기초한 연대감을 발전시켰는가를 기술한다. 이 책의 중요한 목적은 한국의 노동자들이 어떻게 독특한 계급의식을 발전시켰고, 그 계급의식이 어떻게 다양한 형태의 조직적·문화적·제도적 활동으로 표현되었는지를 검토하는 것이다. 단적으로, 이 책은 한국 노동자들의 계급형성에 관한 연구이다"(23쪽)

구해일은 한국 노동 계급의 형성이 공장 내의 억압과 착취에 대한 대응이었다고 얘기한다. 배고프고 힘든 삶만이 아니라 그 삶을 비웃고 짓밟는 일상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은 한국 노동자들이 계급을 '형성'하게 했다. 그 형성의 과정을 추적하면서 구해일은 노동계급 형성과 관련해 한국의 산업화가 가진 몇가지 특징을 지적한다.

첫째 산업화 속도가 지나치게 빨랐고, 둘째 농업을 희생시키고 도시를 중심으로 산업화가 이루어졌으며, 셋째 도시 지역 내에서도 대단히 집중된 형태로 진행되었고, 마지막으로 이런 대규모의 프롤레타리아트화로 한국의 노동계급이 인구학적 속성이나 사회적 배경, 기술수준에서 높은 동질성을 나타냈다. 따라서 "이들 노동자의 대다수는 가난한 농촌가정 출신의 젊은 여성들이었다. 또한 남성노동자들도 거의 대부분 농촌 출신의 젊은이들이었다"(77쪽). 한국 산업노동자의 기름때 낀 얼굴 뒤엔 갈라진 농민의 얼굴이 숨어 있다.

글쓴이소개

글쓴이/구해근 -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노스 웨스턴대학에서 사회학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하와이 대학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옮긴이/신광영 - 서울대 문리대와 미네소타대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위스콘신대학 대학원을 수료했다. 한림대 교수, 사회조사연구소 소장, 한국사회학회 운영위원 등을 지냈으며, 2002년 현재는 중앙대학교 교수로 있다. 지은책에 <동아시아 산업화와 민주화>, <계급과 노동문제의 사회학> 등이 있다.
그리고 구해일은 한국의 세 가지 제도가 억압적인 산업노동력 형성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고 주장한다. 첫 번째 제도는 '교육'이다. 한국에서 이상하리만큼 높은 교육열 속에는 육체노동/사무직노동을 구분하는 차별에 대한 설움이 깔려 있다.

"1980년대 중반까지 한국의 공장노동자들은 극히 냉소적인 '공순이' 혹은 '공돌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36쪽) 이런 차별에 대한 반발, 탈출 심리가 높은 교육열로 나타났다. 또 교육 제도는 "공식적인 권위에 대한 복종, 시간관념, 조직화된 작업일정과 지속적인 평가 등 관료적 환경 속에서 일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행위습관"(80쪽)을 가르쳤다.

두 번째 제도는 '군대'이다. 군대는 한국의 남성들이 엄격히 통제된 조직 생활에 복종할 것을 강제했다. "시간에 맞추어 하는 작업, 공식적인 권위에 대한 복종, 상사의 명령에 따르지 않았을 때에 뒤따르는 처벌과 심각하게 제한된 개인적 자유가 군대 생활의 공통적인 요소들"(80쪽)이다. 특히 울산의 현대그룹은 군대처럼 생산직 노동자들의 머리 길이까지 규제했다.

"현대의 군대식 규율관행은 특히 유명했다. 공장경비들이 출입구에서 노동자들의 머리길이를 재서 회사규정보다 길면 그 자리에서 가위로 머리를 잘랐다. 생산직 노동자들은 또한 퇴근할 때 몸수색을 당하곤 했다."(240쪽)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제도는 '가족'이다. 한국의 자본가들은 가족구조와 근대적인 작업 조직을 교묘히 결합했다. 가정 내의 가부장적인 구조가 공장 내에서 그대로 재현되었다. 특히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는 여성들을 저임금의 노동집약적 수출산업에서 가장 요구되는 노동력 유형인 순종적이고 복종적이며, 부지런하고 끈기있고 또한 노동자들의 시민권에 무감한 노동력으로 사회화하는 데 특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81쪽) 노동자들은 회사의 생존을 자신의 생존과 일치시킬 것을 강요받았고 그 강요는 억압이 아니라 가족의 이름으로 정당화되었다.

이런 억압적인 환경 속에서 노동자들은 먹고 자는 일 외에 아무런 다른 활동을 하지 못했다. 구해일은 그런 비참한 삶을 증명하기 위해 다양한 자료를 인용한다. 아직 30년도 채 안된 1976년 쟁의를 일으켰던 해태제과 노동자들은 이런 탄원서를 노동청에 제출했다.

하루 12시간만 일하도록 해주십시요. 우리는 매일 12시간 이상씩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루 노동시간이 8시간인 것을 알고 있지만, 회사가 일이 바쁘다고 하니 12시간까지는 우리가 참고 일하겠습니다. 그러나 12시간 이상은 너무 힘들어서 할 수가 없습니다.

일주일에 하루씩만 쉴 수 있도록 해주십시요. 우리는 일주일에 하루씩 쉴 수 있다는 노동법상의 혜택을 못 받고 일을 하고 있습니다. 너무 힘들고 피곤해서 몸을 지탱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혹사를 시키면서도 종종 '곱배기' 노동을 시키고 있어 할 수 없이 18시간을 계속 일을 해야 하는 참기 어려운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노동 계급은 이런 억압과 착취를 버티며 성장했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게 된 시기는 정치적 자유화가 반항의 기회를 제공한 1987년이었다. 1987년의 7, 8, 9월 노동자대투쟁은 노동자들이 대규모로 인간답게 살겠다고 외친, 그 목소리를 작업장이 아닌 거리에서 외치고 호소를 얻었던 최초의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 경험은 노동자들에게 '계급의식'을 심어줬다.

"노동자대투쟁은 사회와 노동자 자신들에게 그들이 단결해서 대규모로 결집할 때 얼마만큼 무시무시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기회였다. 왜냐하면 계급정체성은 단지 같은 위치를 차지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소속된 집단에 대한 어느 정도의 긍정적 인식을 바탕으로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의 이 새로운 권력감은 계급정체성을 촉진시켰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노동자대투쟁의 경험은 오랫동안 노동자들을 지배해온 패배주의와 현실 도피를 극복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251쪽)

그런 의식을 바탕으로 1997년 1월 전세계를 놀라게 한 노동법개악을 반대하는 총파업을 이루어냈음에도 한국의 노동계급은 서서히 쇠퇴의 길을 걸어갔다. 구해일은 그 원인을 한국의 노동투쟁이 사회운동노조주의(social movement unionism)로 발전하지 못하고 신노조주의에 머문 것에서 찾는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전후 한국의 민주노조운동은 노동계급 일반의 광범위한 이해를 드러내고 대변하고자 하지 않았고 도시의 빈민지역운동을 지원하려 하지도 않았다. 작업장과 지역조직 간에 연계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극히 빈약했다."(287쪽)

물론 이런 한계가 전적으로 노동 계급의 책임은 아니다. 노조의 정치활동을 금지한 법적·정치적 제약과 낮은 실업수준은 노조의 활동을 공장 내부로 제한했다. 구해일은 노동운동이 사회운동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경제투쟁으로 제한되었고 결국 시민운동과의 틈을 벌이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노동운동이 지역사회 문제를 다루지 못했다는 사실은 민주화이행 이후 시민운동이 번창할 수 있는 문을 열어주었다. 활발한 시민운동들이 진보적인 지식인에 의해서 주도되었고, 이 지식인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1987년 이전 노동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이들이었다. 이런 현상이 노동계급운동과 중간계급 주도의 사회운동 간의 분리를 낳았고 노동운동의 범위를 더 좁게 만들었다."(288쪽)

구해일은 현재 한국의 노동계급이 기로에 서 있다고 본다. 한국의 노동계급은 "지속적인 자본주의체제의 진화에서 그들의 정체성과 정치적 성격을 계속 만들어야 할 이제 막 형성된 계급"(304쪽)이다. 그 길이 어느 방향으로 뻗어갈지 미리 짐작하는 것은 어렵다. 걸어갈 길을 닦는 것은 실천의 몫이다.

구해일은 톰슨(E.P. Thompson)의 방식을 따라 노동자들이 노동계급을 형성하는 과정을 문화적으로 접근한다. 구해일은 "한국에서 문화와 정치가 밀접하게 상호작용해서 급속한 노동계급 형성을 촉진"(29쪽)했음을, "한국에서 노동투쟁과 계급의식의 급속한 성장을 촉진한 것은 바로 노동현장과 시민사회에서의 문화와 정치의 모순적 효과"(46쪽)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의 작업은 작업장에서의 문화, 경험만을 드러낸다. 작업장과 일상을 가르는 분명한 구분선을 그을 수 없지만 구해일의 분석에서는 일상을 묶는 대중문화, 즉 가족계획이나 TV의 보급, 프로야구의 등장 같은 '정치성을 띤 문화'가 빠져 있다.

그럼에도 구해일의 작업은 한국노동계급이 만들어진 과정과 기록을 정리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를 가진다. 또 구해일은 80년대 후반 이후 남성노동자들이 이끌어온 노동운동의 토대가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전반까지 현장노동운동을 이끈 여성노동자들임을 강조한다. 이것은 남성중심, 대기업중심의 노동운동이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제공한다.

한국의 노동계급은 이 기록을 보며 자신들의 자화상을 다시 그려볼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자신이 누구이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안다면 그 싸움은 힘들고 외로울지라도 결코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

구해근 지음, 신광영 옮김, 창비(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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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고 싶어서 가입을 했습니다. 인터넷 한겨레 하니리포터에도 글을 쓰고 있습니다. 기자라는 거창한(?) 호칭은 싫어합니다. 책읽기를 좋아하는지라 주로 책동네에 글을 쓰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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