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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이 장기화되고 침체일로를 걸으면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심화된다고 한다. 지금 국민들은 제2의 IMF가 올지도 모른다고 야단들이다, 혹자는 외환위기를 맞았던 97년 그 때보다 지금이 더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전자가 되었건 후자가 되었건 실물경제가 바닥으로 내려앉은 지 오래다. 정부일각에서는 경기회복세의 징후가 보인다는 장밋빛 발표를 하지만 실제 경제활동에 종사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신뢰감이 가지 않는다.

경제활동의 축은 금융이다, 불황이 오래가면 나라에서는 돈을 풀어야 할 텐데 어찌된 일인지 거두어들이기 바쁘다. 금융권은 어느 날 갑자기 대출비율을 축소하느라 기업인들이 죽어나는 것은 염두에도 없는 것 같다. 덩달아 카드사들도 현금서비스 한도를 축소해서 채권확보를 하느라 바쁘다. 이미 이러한 정부정책이 가져다주는 후유증은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예가 돌려 막기의 한계에 이른 생계형 범죄의 기승과 독촉하는 카드 빚을 막기 위해 급전을 빌렸다가 그나마 가진 것마저 버려야 하는, 패가망신하는 소시민들의 증가다. 패가망신은 그나마 낫다. 당사자의 자살로도 막지 못해 동반자살하는 사람들보다는 나으니까 말이다.

제도의 규제를 받으면서도 사람들을 자살로 몰고 가는 카드 빚보다 더 무서운 것은 무엇일까 찾아보면 제도의 맹점을 이용하는 사채가 아닐까 싶다.

자랑스러운 일도 아니고, 기사로 인하여 직업이 밝혀지는 것이 신경 쓰여 그냥 침묵하려다가 사채는 아무나 쓰면 안 된다는, 꼭 써야할 상황이더라도 한 번 더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인식을 독자들에게 전달해주기 위해 지난 달의 경험을 털어놓는다.

참고로 나는 조그만 사업체를 꾸려 가는 기업인이기도 하다. 내년 봄쯤 건설경기가 살아나면 그곳에 건축을 하기 위해 3개월 전에 지방의 조그만 토지를 회사명의로 매입하고 계약금을 치른 상태였다.

당시만 해도 금융권이 지금처럼 얼어붙지는 않았지만 만에 하나 실수하지 않기 위해 중도금과 잔금 날짜를 충분한 여유를 두고 공증까지 마쳤다.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경직돼 가는 금융권의 대출비율 축소와 불황으로 인한 도미노식 자금줄의 연기로 대책이 없었다. 고맙게도 이런 사정을 이해해 준 상대방이 두 번에 걸쳐 연기를 해 주었지만, 사정은 그 날짜가 다가와도 지불할 수 없었다.

최후통첩을 받은 상태에서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아는 사람을 통하여 사채업자와 연결이 됐었다. 계약금을 날리는 것도 문제였지만 내년 사업계획이 송두리째 무산되는 것은 사업의 도산과 직결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첫 번째 만난 사채업자에게 말했다. "3억이 필요합니다. 기간은 열흘이면 되고요." 그가 말했다. "열흘은 없습니다. 하루를 쓰건 이십일을 쓰건 한달 단위로 이자 계산을 합니다. 한 달을 쓰세요. 이자는 3부입니다." "그렇다면 이자가 900만원이라는 말씀이군요?" 그가 덧붙였다. "수수료 10%가 별도로 붙습니다."

머릿 속으로 계산을 한 후 말했다.

"900에 10%, 990만원. 그럼, 3억을 열흘 빌리는데, 아니 한 달을 빌리는데 거의 천만원이나 들어가는군요."

그가 껄껄거리고 웃었다.

"허허 아직 사채를 모르시는 모양이군요. 수수료는 빌리는 금액의 10%입니다, 3억이라고 하셨으니 3천만원이죠. 합쳐서 4천만원 정도 생각하면 됩니다. 물론 담보는 빌리는 금액의 최소한 2배 이상은 제공하셔야 하고요."

난 그 돈을 빌리는 것을 포기했다. 그는 친절하게도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여서 기가 막힌 것에 추가하는 기막힘을 얹어주기도 했다.

"가능하면 쓰지 마세요. 내 아는 분과 아시는 사이라고 해서 알려드리는 겁니다만 한 달에서 하루만 넘겨도 두 달 이자를 내셔야 합니다. 즉 3억을 31일 쓰시면 이자와 수수료가 8천만원이 된다는 말이지요."

이런 식으로 이틀에 걸쳐 네 사람의 사채업자와 연결됐었지만 조건은 대동소이했다. 가장 싼 이자가 월 2부에 수수료 8부였으니까 말이다. 그 네 명 중에 한 업자는 토지의 잔금까지 다 대납해주겠다는, 염불보다 잿밥에 신경을 쓰는 저의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조건을 제시하기도 했었다. 사채를 쓰면 망한다는 말을 실감했다.

물론 난 사채를 쓰지 않았다. 마음을 비우는 심정으로 당사자를 찾아가 사정을 말한 후 그들에게 지불할 이자의 반을 드리겠다는 조건으로 기일을 연장을 했고 그 연장기일에 약속을 지켰으니 어찌 보면 전화위복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난 그 일로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세상에 대해 모르고 지냈던 공포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사회활동을 하는 남자들도 이렇게 쓰지도 않고 기가 질려있는데, 갓 스무 살을 넘은 아이들이나 젊은 주부들이, 물론 금액의 차이는 있을망정 멋모르고 썼다가 패가망신하는 사례가 얼마나 많을까?

물론 난 사채업자들을 원망하거나 나무랄 자격은 없다. 그들이 돈을 빌려쓰라고 강요하지도 않았고, 은행에서 외면하는 상태에서 손을 벌릴 수 있는 곳은 그곳뿐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약속기일에 갚을 수만 있다면 이자보다 더 큰 계약금을 포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메리트도 있었다.

그 날 당사자를 만나 지불기일의 연기동의를 얻고 돌아올 때, 택시 기사가 해주던 말이 아직도 귀에 선하다.

"저는 300을 빌려 썼는데요. 한 달 14일을 썼는데 원리금으로 540만원을 갚았습니다. 다행이 빌려 갚을 곳이 있어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3개월 이내에 천만원은 기본이라고 주변에서 말하더군요, 하하 신체포기각서, 이 거 신문에서만 보았지, 누구라도 그럴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대요."

부동산 투기를 잡기 위해 대출비율축소도 좋고, 사채 이자상한선을 정한 것도 좋고, 카드의 남용을 막기 위해 서비스 한도 축소도 좋다. 하지만 돌려막기 하는 사람들은 오죽하면 비싼 이자 내가며 돌려막기를 할 것이며, 사업하는 사람들도 오죽하면 문턱이 높은 은행에 가서 대출을 받을 것인가.

정부는 세계화도 좋고 글로벌시대도 좋지만 제발 좀 눈 높이를 아래로 향했으면 싶다는 생각을 이번 경험을 통하여 한 번 더 생각해 보았다. 아무튼 정부와 금융권이 나 몰라라 할 때 외면하기 힘든 사채시장, 과연 독인가, 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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