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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서울역 근처 도로에서 기습시위를 벌이던 한 중증장애인이 경찰들에 의해 강제 연행되고 있다.
3일 서울역 근처 도로에서 기습시위를 벌이던 한 중증장애인이 경찰들에 의해 강제 연행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김호중
ⓒ 오마이뉴스 김호중


"오늘(12월 3일)이 UN이 정한 제12회 세계 장애인의 날입니다. 하지만 정부는 UN이 권고한 장애인 관련 사항을 지키지 않고, 전두환 대통령 때부터 관변 성격이 짙은 장애인단체들과 함께 4월 20일을 장애인의 날로 정했습니다. 지금까지 장애인 인권은 별로 나아진 게 없어요. 오늘은 '4월 장애인의 날'이 얼마나 기만적인 날인지 폭로하는 날입니다."

장애인이동권쟁취를위한연대회의(아래 인권연대) 박경석 공동대표의 말이다. 이를 증명해 보이기라도 하듯 3일 오후 1시50분부터 인권연대 소속 총 16명의 휠체어 중증장애인들은 서울역 근처 육교와 그 아래 4차선 도로를 막는 기습시위를 벌이고 "장애인 이동권 보장, 최저생계비 인상" 등을 주장했다.

이들 중 12명은 육교 밑 도로, 4명은 육교 위에서 서로를 쇠사슬로 나란히 연결했다. 동시에 육교 위에는 "더 이상 죽을 수 없다, 최저생계비 보상하라", "열사의 뜻 이어받아 장애인 이동권 쟁취하자" 등의 현수막을 내걸었고 휠체어 두 대가 쇠사슬에 묶인 채 육교 아래 매달렸다.

오후 3시까지 1시간 이상 계속된 이들의 시위로 차량 정체가 심해지자 뒤늦게 출동한 경찰은 이들을 강제 해산시켰다. 서로 얽혀있는 쇠사슬을 푸는 가운데 장애인들은 "아!", "이거 놔!" 라고 몸부림치며 완강히 대항했지만, 여러 명의 경찰에 둘러싸인 채 이내 힘없이 대열에서 이탈했다.

장애인이 쇠사슬로 몸을 감은 채 시위를 하고 있다.
장애인이 쇠사슬로 몸을 감은 채 시위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김호중
육교 밑에서 시위를 벌이던 12명의 장애인들은 곧 3대의 경찰 버스에 나뉘어 연행됐다. 오후 5시30분 현재 5명은 마포 경찰서에서, 5명은 노량진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시위에 참여했던 이승연(30. 안양 거주)씨는 "육교로 인해 횡단보도가 생기지 않기 때문에 육교 위아래에서 시위를 벌인 것"이라며서 "이런 육교 때문에 우리(장애인)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힘들게 다녀야 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또 "지금까지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 설치공사를 하고 있지만 달라진 게 거의 없다"며 "기초생계비를 엊그제 올려준다고 했는데 고작해야 1000~2000원이었다"고 주장했다. 장애인들에게 지원되는 최저생계비는 31만4000원이라고 한다. 이 외에 복지부에서 1·2급 장애인들에게만 5만원의 장애수당을 지급한다고 하소연했다. 박 공동대표는 "실질적으로 우리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법적, 제도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인권연대에서는 지난달 24일부터 10일 동안 서울역 광장에서 천막농성을 벌인 바 있다. 이들은 이번 기습시위를 끝으로 농성을 풀었다.

10일 동안 이들을 따라다니면서 취재했다는 한 기자는 "이렇게 농성을 벌여도 정부는 관심도 없는 것 같다"며 "이런 무관심이 장애인들의 분노를 샀고 오늘 시위까지 온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이날 발표한 성명서 내용 중 일부다.

"장애인 실업률 : 70%. 장애인 학력 수준 : 초졸 이하가 50% 이상. 장애인의 정보화 이용률 : 비장애인의 1/6. 장애인의 외출 빈도 : 40% 이상이 매일 외출할 수 없음. 이 모든 통계 수치는 UN이 11년 전에 장애인의 날을 만들면서 의도했던 장애인의 날의 의미를 무색하게 만드는 국내 장애인들의 현실이다."

"장애인 위해서라면 육교 철거해야"
기습시위를 보는 육교 밑 사람들

이날 장애인들의 기습시위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빛은 측은했다. 특히 경찰에 의해 연행되는 장애인에 대해 "저런, 저런!"이라며 안쓰러워 하는 사람도 있었다.

육교 바로 옆에서 식당을 하는 김아무개(42)씨는 "육교는 일반인들에게도 불편하다, 특히 밤에 여성들이 무서워 난간을 붙잡고 가는 장면을 여러 번 목격했다"며 "장애인들의 이런 시위는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30년 동안 육교 근처에서 구멍가게를 해 온 신수악(71)옹은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육교가 많이 불편하지 않지만 장애인들은 힘들 것"이라며 "차라리 건널목으로 바뀌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육교 철거를 주장했다.

신 옹은 '오늘이 세계장애인의 날'이라는 말에 "우리나라에서 장애인들은 육교나 전철 맘대로 못 이용한다, 그들의 편리를 위해 사랑하는 마음으로 편의시설을 만들었으면 한다"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장애인들의 시위를 보며 그들의 문제를 처음 떠올려봤다"는 이아무개(52)씨는 "15년 동안 육교 옆에서 가게를 했지만 육교의 불편함을 느끼지는 못했다, 하지만 오늘 장애인들을 보고 힘들겠다고 느꼈다"며 "하지만 우리나라 현실을 보면 한계가 있다"는 현실론을 폈다.

반면 기습 시위로 교통체증이 빚어져 차량 운전자들의 짜증은 클 수밖에 없었다. 시위 때문에 "서울역 앞에서만 몇십분을 기다렸는지 모른다"는 한 시민은 "장애인들의 뜻은 이해하지만 조금 자제해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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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동안 한국과 미국서 기자생활을 한 뒤 지금은 제주에서 새 삶을 펼치고 있습니다. 어두움이 아닌 밝음이 세상을 살리는 유일한 길임을 실천하고 나누기 위해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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