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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혁당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을 위한 대책위원회'는 24일 오전 9시 서울지법 기자실을 찾아 '인혁당사건' 재심청구 개시결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어 10시부터 서울지법 형사합의23부(재판장 김병운 부장판사) 주재로 재심 여부 결정 특별심리가 열렸다.
'인혁당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을 위한 대책위원회'는 24일 오전 9시 서울지법 기자실을 찾아 '인혁당사건' 재심청구 개시결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어 10시부터 서울지법 형사합의23부(재판장 김병운 부장판사) 주재로 재심 여부 결정 특별심리가 열렸다. ⓒ 오마이뉴스 유창재
지난 30여년간 역사의 한 페이지 속에 묻혀 있던 '인민혁명당 사건'이 또다시 법정에 설 수 있을까.

24일 오전 10시. 서울지법 형사합의23부(재판장 김병운 부장판사)는 지법 3층 309호 법정에서 아주 특별한 심리를 진행했다. 이날 심리는 유신시절 대표적인 인권침해 사건으로 꼽히는 소위 '인혁당 사건'의 재심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자리였다.

'인혁당 사건'은 사법사상 암흑의 날
민청학련 사건 배후로 8명 사형

'인혁당 사건'은 지난 1974년 4월 3일 박정희 유신 독재 정권에 맞서 전국 대학생들이 총궐기했던 민청학련 사건의 배후로 23명을 지목, 국가 변란과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이들 중 고 서도원 하재완 김용원 송상진 도예종 이수병 우홍선 여정남씨 등 8명에 사형, 15명에게 무기에서 징역 15년의 중형을 선고한 사건이다.

특히 사형이 선고된 8명은 다음해인 75년 4월 9일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있고서 하루도 채 되기 전 20여시간 만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버리게 한 소위 '사법살인' 사건이다. 이를 두고 스위스 국제법학자협회는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혹평하기도 했다. / 유창재 기자
이번 심리는 지난해 9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인혁당 사건 관련자들의 신문조서와 진술조차 위조되는 등 당시 중앙정보부에 의해 조작됐다'고 발표한 후 인혁당 사건 유족들이 같은해 12월 법원에 재심을 청구해 처음으로 열리게 되었다.

재판부가 별도의 기일을 지정해 재심청구 사건에 대해 심리를 진행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재판부는 '인혁당 사건'이 대법원 확정사건이기 때문에 과연 군사법정에서 해야 할지, 일반 법원인 서울지법에서 관할해야 할지 여부와 재심사유 중 증거의 명백성과 신규성으로 무죄를 확증할 수 있는지 여부 등 법리적인 타당성에 대해 심리했다.

검찰-변호인, 재심 개시 여부 놓고 공방

김병운 재판장은 "재판부는 청구인이 제시한 의문사진상위원회의 증거자료의 법리적인 것에 대한 각자 변호인과 검사의 반론을 듣고 싶다"면서 "어디까지나 '법리적인 문제'로 심리할 것"이라고 밝히며 공개심리를 시작했다.

재심 청구인의 변호인은 심리에 앞서 재판부에게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은 8명이 사형 등 23명이 대통령 긴급조치에 의해 처벌받은 것"이라며 "이는 '과거청산' 문제의 핵심 중 하나로 어느 누구도 책임지려는 사람이 없지만 이제는 법원도 검찰도 '외면'하지 말고, 더구나 의문사진상위원회에서도 충분히 재심절차를 거친 것이기에 적절한 결론을 내려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재판부는 일단 변호인과 검찰 양측에 '인혁당 사건' 재심 관할권이 어디인지를 물었으며, 양측은 서울지법에 있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이어 재판부는 의문사진상위원회에서 제기하고 있는 '인혁당 사건'에 대한 공판조서 및 피의자신문조서 변조, 수사관들의 고문 및 가혹행위, 확정판결에 대신하는 증명, 무죄를 인정할 새로운 증거 제시 등을 놓고 재심의 필요성에 대해 심리했다.

변호인단은 '의문사진상위원회'가 헌법상 기관은 아니지만 사실조사 및 조사확정이 가능한 준사법기관으로 봐야하며, 의문사진상위원회의 결정은 확정판결에 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의문사진상위원회 결정은 판단자료이기는 하지만 법원의 재심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결정이라고 볼 수는 없고, 다만 법원의 '사실조사'를 통해 조사내용을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반론했다.

또한 변호인단은 당시 수사관들의 증언에 따르면 중앙정보부 수사팀장이 "자백하지 않으면 강제로 진술받아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등 조작한 사건이라는 진술을 했다고 주장하면서 이 같은 수사관들의 진술은 원판결의 소송절차에서 제출할 수 없었던 '명백한 증거를 인정할 새로운 증거'이므로 재심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검찰은 "우리나라의 경우 재심사유에 대한 엄격한 해석을 통해 법적 안정성을 중시하고 있다"며 "독일 형사소송법도 '불명확할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원칙은 재심사유를 판단하는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김형태 변호사는 재심심리에서 "(인혁당 사건은) 수많은 재심사건과 질적으로 다른 것은 (법원이) 국가기관의 결과에 대해 조사하면서 창조적 입법을 하지 않더라도 제대로 입법해석만 하면 합리적인 의심이 많은 명백화된 증거들이 많이 나올 것"이라며 "(이 사건은) 훨씬 무거운 의미가 있고 충분히 재심을 받아들여야할 사유가 있다"고 말하면서 법원의 재심결정을 당부했다.

재판부는 변호인단을 통해 의문사진상위원회로부터 관련된 진술내용이 담긴 비디오 테이프를 받아 분석한 뒤 재심여부를 판단하기로 하고 심리를 마쳤다.

'인혁당 사건'의 허구·조작 밝혀 현실·사법적 명예와 신원 회복 기대

김학민 민청학련 계승사업회 사무처장.
김학민 민청학련 계승사업회 사무처장. ⓒ 오마이뉴스 유창재
특별심리에 앞서 오전 9시 '인혁당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을 위한 대책위원회'는 인혁당 사건에 연루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유족 등 20여명과 함께 법원 기자실로 찾아와 '인혁당사건' 재심청구 개시결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학민 민청학련 계승사업회 사무처장은 "인혁당 사건은 30여년 전에 발생한 사건으로, 이미 역사속에 묻혔지만 살아남은 우리들은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부채(원죄) 의식을 갖고 살아왔다"며 "이제 인혁당 사건의 허구와 조작을 밝히고 현실적, 사법적 명예회복과 신원이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동안 가해자들이 승승장구해 사법적 어려움이 있었고, 군법재판이라 기록을 구할 수 없었다"면서 "하지만 의문사진상위원회가 만들어지면서 진실에 접근했고 일부 사건자료를 넘겨받아 그 안에 진실을 왜곡한 독재정권의 실상을 드러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우리의 현대 정치사에 있어 가장 참을 수 없고, 씻을 수 없는 것이 인혁당 처형으로 역사의 한 페이지로 흘러가고 있는 '인혁당 사건'에 대해 마치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같은 노력으로 접근해왔다"며 "명실상부한 신원이 회복되길 기대한다"고 말을 맺었다.

기자회견을 통해 재심 청구인들은 ▲공판조서 및 피의자신문조서 변조 ▲수사관들의 고문 및 가혹행위 ▲무죄 인정할 새로운 증거 발견 등 재심사유가 충분하다면서 "법원은 이 사건 재심을 통해 부당한 공권력이 사법절차를 이용해 인간의 생명을 박탈한 비인도적이고 반민주적인 역사를 청산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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