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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1년이 되었네요. 그새 또 한해가 지나갔어요. 작년 이 맘때 할머니 영정을 모시던 3일 동안 그렇게 참았던 눈물을, 할머니 내내 누워 계실 장지에서 혼자 걱걱 거리며 울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할머니 돌아가신 지 그새 1년이 되었어요.

첫 손자라고 태어나자마자 제대로 눕히지도 않으시고 매일을 그렇게 업어가며, 안아가며 이뻐해 주셨는데 돌아가시기 전에 정신을 놓으셔서 당신 딸도, 당신 아들도 기억 못하실 적에도 이 손자 놈이 어쩌다 찾아가 뵈면, 옮긴 회사는 잘 다니는지, 새로 만나는 여자친구는 잘 있는지 세세한 것까지 모두 기억해주시며 아껴주시던 이 손자 놈은 할머니 첫 기일도 부끄럽게 잊었어요.

어머니를 탓하지는 마세요. 어머니도 사시느라 바쁘셨을거예요. 재혼하신 지 이미 10년이나 지났는데, 그 사이 어머니의 새 시어머니도 돌아가시고 새로운 제사들 치르시기도 바쁘실텐데, 할머니 기일까지 챙기시는 건 힘드셨을꺼예요. 그래도 얼마 전에는 할머니 묘에 한번 같이 가자고 하시더라구요. 어머니도 할머니 돌아가셨을 때 돌아서서 눈물도 많이 흘리셨어요. 어머니도 할머니가 아끼신 걸 알고는 계시거든요.

이맘때쯤이라 알고는 있었어요. 그래서 큰아버지 댁이나 고모님 댁이나 전화라도 드려야지 했는데, 생각은 있었지만 게을렀나봐요. 부모님이 헤어지신지 10년, 아버지와 소원하게 지내는 그동안 그래도 친가 어른들과 이어주는 든든한 끈이 할머니셨는데, 할머니조차 안 계시니 전화 문안도 여유가 없었나봐요.

할머니, 저도 좀 섭섭해요. 어른들 중 한 분이라도 전화 한 통이라도 해주셨으면 좋았을 것을, 당신들도 며느리, 사위 보시고 손주들 생기시니 저희는 기억에서 조금씩 멀어지는게 당연하겠지만, 그래도 와야한다며 전해주시는 한 분 안 계셨으니...

할머니 저 못났죠? 제 잘못 남에게 떠넘기기 급급한 손자 놈 너무 못났죠? 그렇게 못난 손자 놈 일깨우시려고 요사이 그렇게 꿈에 나타나셨어요? 둔해서, 꿈도 자주 꾸는 손자 놈이 아닌데, 그렇게 둔한 손자 놈 꿈자락으로 매번 들어오시느라 또 얼마나 고생을 하셨을까요.

돌아가시기 전에도 무릎이 안 좋으셨던 할머니였는데, 못 난 손자 놈이 보고 싶어서 그 편찮으신 무릎 이끌고 꿈속까지 오시느라 먼길 얼마나 힘드셨어요.

그래요, 내리 사랑인가봐요. 아무리 제가 할머니 생각을 한다고 해도, 할머니를 따라갈 수 있을까요. 명절 때 찾아뵈면 손자 놈 기죽을까 문 꼭 닫으시고 못 먹고 사는 놈도 아닌데, 밥은 잘 먹고 사느냐며 감이며 대추며 너만 먹어라 챙겨주시고...

당신 아들 내외는 헤어졌어도, 손자 놈은 기운 내라고 늘 등 토닥이시며 꼬깃꼬깃 만원짜리 몇 장을 누가 볼까 빨리 넣으라 재촉하셨었지요. 철없기 만한 손자 놈은 할머니 앞이라고 그때마다 제 마음 속 상처만 생각하기 급급했어요. 할머니 가슴속에 묻어두셨을 불덩이처럼 큰 한은 한번도 보려고 할 생각도 하지 못했었어요.

그래도 할머니, 할머니 덕택에 저 이만큼 큰 탈없이 잘 컸어요. 할머니 걱정하시던 새로 옮긴 회사에서도 잘 해나가고 있구요, 아껴서 자리 빨리 잡으라는 말씀 덕에 저축도 꼬박 꼬박 잘 하고 있네요. 새로 만난 여자 친구와는 헤어졌지만, 그래도 금방 할머니 손주 며느리 빨리 만들어 보도록 노력할께요.

그리구요 할머니, 내년에는요, 새로 나오는 달력들마다 모두 빨간색으로 동그라미 쳐놓고 할머니 기일은 절대 잊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혹시나 친가 어른들이 또 부르시지 않아 못난 손자 놈 좁은 속에 토라져서 참석하지 못하게 되도, 작은 상 마련해서 혼자서라도 할머니께 인사드릴꺼예요.

아, 그러면 무릎 아픈 할머니 여기 저기 돌아보시느라 힘드시겠네요. 알았어요, 할머니. 내년에는 서운해도 큰집에 찾아가 할머니 제사 때 꼭 인사드릴께요.

할머니, 더 이상 손자 놈 때문에 속 끓이지 마시고, 그동안 아무에게도 보이시지 못하고 가슴에 맺히셨을 근심, 걱정 모두 잊으시고, 할머니, 하늘나라에서 편히 계세요. 그리고 가끔, 아프셨던 무릎까지 다 나으시면, 가끔 손자녀석 꿈에나 들러주세요. 실은 할머니, 저 할머니 몹시 보고 싶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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