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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계동에 있는 광주전남 외국인노동자센터는 토요일이면 자원 봉사자와 외국인 노동자들로 북적거린다.

내가 찾은 토요일에는 한글 교실이 있었다. 10명 남짓한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과 한글 교실 선생님을 비롯한 20여명의 자원 봉사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곳이 시장통인지 한글을 가르치는 교실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이러한 염려가 무색하게도 어수선함 속에서도 정상적으로 수업은 시작되었다.

많은 사람들 중에 유독 나의 눈길을 끄는 사람이 있었다. 벙거지 모자를 눌러 쓰고 깔끔한 청색 남방을 입은, 검은 피부의 이주노동자. 그가 바로 오늘 소개할 친구 샤몰이다.

▲ 한글 교실에서 수업하고 있는 샤몰
ⓒ 장성필

샤몰은 올해 32살로 방글라데시에서 온 산업연수생이다. 한국에 2001년에 왔으니 올해로 만 2년째 한국에 거주하는 셈이다. 샤몰의 한국어는 유창하다. 성격이 외향적이고 호기심이 많아 사람들을 쉽게 사귈 수 있어서 한국어를 빨리 배울 수 있었다고 한다. 더 이상 한국말을 안 배워도 되겠다고 했더니 한국에서 살려면 지금보다 더 잘해야 한단다. 또 주변에 한국말을 못하는 친구들을 도와 줘야 한다며 강한 의지를 보였다.

샤몰을 가르치고 있는 (가르친다기보다는 같이 놀아주는 것에 가깝지만) 선생님은 전남대학교 사회학과에 다니는 02학번의 김유진씨다. 자꾸 샤몰에게 질문을 하자 공부를 해야 한다며 핀잔을 준다. 하지만 카메라를 들이대며 포즈를 좀 취해 달라고 하니 금세 얼굴을 붉히고 만다. 영락없는 20살 앳된 대학생이다.

샤몰은 지금 자동차 관련 부품을 만드는 공장에서 산업연수생으로 일하고 있다. 한 달 월급은 62만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친구들에 비하면 대우가 좋은 편이기 하지만 그건 상대적일 뿐이다. 지난 달에 임금이 인상는데 샤몰의 인상분은 단돈 1000원이었다. 샤몰은 밝은 성격의 소유자다. 자기보다 힘들고 어려운 일 하면서 돈도 제대로 못받는 사람들이 많다며 자신은 행복한 거라고 현재에 만족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고용허가제와 산업연수생제도에 대해 물어보자 금세 표정이 변한다. 그리고는 연신 "둘 다 않 좋아요, 둘 다 않 좋아요"라고 말한다. 자기네들이 원하는 것은 노동3권도, 불법 체류자의 기한 연장도 아니란다. 사람답게 대해 주고 월급만 제대로 주면, 합법적으로 일하고 기간 만료된 다음 알아서 나간다는데 한국 정부에서는 자꾸 이상한 정책만 쓴다는 것이다.

방글라데시에서 한국에 오려면 600만원에서 1000만원 정도의 비용을 송출 회사에 내야 한다. 그 돈을 벌려면 현재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들이 받는 현재의 월급과 체류 기간으로는 어림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들 불법 체류자가 되는 거라면서 한국의 기형적인 외국인력정책을 꼬집었다.

방글라데시의 고향에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전화를 한단다. 엄마가 아프다는 소리를 들을 때 샤몰은 가장 슬프다. 그런 날은 밤에 기숙사에서 몰래 운 적도 많았단다. 샤몰이 집에서 온 편지를 보여 줬다. 방글라데시어를 모르는 나로서는 무슨 내용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편지 가득 들어 있는 부모님의 사랑은 느낄 수 있었다.

이제는 한국이 좋아 한국에서 살고 싶다는 방글라데시 친구 샤몰. 그와의 만남은 이 말 한 마디로 끝을 맺었다.

"친구, 또 연락할 거지?"

샤몰이 원하는 것은 동정심도, 물적 지원도 아니다. 바로 우리의 작은 관심과 말을 나눌 수 있는 벗이 필요했을 뿐. 샤몰의 배웅을 뒤로하고 광주외국인노동자센터를 나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 광주외국인노동자센터 건물. 간판하나 없는 이곳이 7000여명의 광주전남외국인 노동자들의 쉼터이다.
ⓒ 장성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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