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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 김성애씨(37·서울 동작구 상도동)는 지난 달 초 아주 황당한 일을 경험했다. 초등학생인 두 자녀들에게 평소 '절약'을 강조하며, 3년여 간 모은 동전이 액수로 어림잡아 20만원 가까이 되자 지폐로 환전하기 위해 인근 은행을 찾아서였다.

은행 직원은 대뜸 "은행에 개설통장이 있느냐"고 묻더니 "은행에 계좌가 없으면 교환이 불가능하다"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당황한 김씨가 "통장이 있다"고 답하자 그 직원은 오히려 한술 더 떠 "통장이 있어도 지금은 점심시간이라 교환해줄 수 없다"고 거부했다.

동행한 아들이 거듭 환전을 요청했으나 은행은 끝끝내 환전을 해주지 않았고, 김씨는 결국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방송 등 매스컴에서 '주거래 은행을 공략해서 집중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좋다'는 말에 일부러 이 은행을 찾았다는 김씨는 그날 3개 은행을 헤매다 겨우 우체국에 가서야 동전을 교환할 수 있었다.

"일부에서 제조 원가가 많이 드는 동전이 저금통 등에서 잠자고 있어 동전부족 현상이 심각하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는 김씨는 "정작 금융기관에서는 동전이 푸대접받는 것 같아 기분이 씁쓸하다"고 밝혔다.

김씨는 이후 "앞으로 동전 모으기를 하지 않겠다"는 두 아들들을 어렵게 설득했다.

회사원 차모씨(33. 경기도 안산시 본오동)도 며칠 전 10원과 50원짜리 동전을 지폐로 환전하기 위해 은행을 찾았다 무안만 당했다. 주택밀집지역인 관계로 업무가 바쁘다는 핑계를 대던 은행직원은 차씨의 계속된 요구에 "누가 요새 10원짜리 동전을 사용하느냐"며 "동전을 바꾸려면 인근 할인점에나 가보라"고 핀잔을 주었다.

일부러 시간을 내 은행을 찾았다는 그는 "업무가 바쁘다면 이해가 가지만 당시 창구에는 고객도 없었고 직원들은 서로 수다떨기에 여념이 없었다"면서 "이건 분명히 담당직원의 업무태만"이라고 흥분했다.

최근 은행들이 업무의 원활한 이행과 시간단축을 위해 동전교환이나 공과금 납부 등을 거부하고 있어 시민들의 불편을 가중시키고 있다.

은행들은 은행에 통장이 개설되어 있거나 시간제로 동전을 교환해 주고 있다. 특히 모 은행은 지난해 기존거래관계가 없는 고객이 5000원 이상의 동전을 지폐로 교환할 경우 교환금액의 2%를 수수료로 받아오다 반대여론에 밀려 이를 철회한 바 있다.

S은행 서울 강남지점의 한 관계자는 "일부 상인들이 수십만∼수백만원짜리 동전을 지폐로 교환해가고 있어 이에 따른 관리비용이 만만치 않다"며 "동전교환에 소요되는 인력과 시간을 다른 업무에 투입함으로써 더 많은 고객들에게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은행들의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다수 시민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입으로만 '고객만족'을 외친다는 것이다.

노점상 이모씨(44. 서울 동작구 사당동)는 "은행들이 당연히 해야 할 일도 하지 않으면서 '고객 서비스'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서민들에게 갈수록 은행문턱이 높아지는 것 같다"고 불평했다.

이에 반해 신한은행과 조흥은행 등 일부 은행들은 지난 몇 년 사이 서울 강남에 '프라이빗 뱅크(PB)'를 개점하는 등 자산 10억 이상의 부유층 고객들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 경쟁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대다수 서민들이 기본적인 환전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 은행은 언제나 고객 여러분을 먼저 생각합니다."

하지만 구호로만 고객 만족을 외친다면 오히려 고객들의 발길이 끊어지는 결과를 낳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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