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탓 로 마을. 폭포로 가는 나무다리를 벌거벗은 채 뛰어가는 어린 아이.
탓 로 마을. 폭포로 가는 나무다리를 벌거벗은 채 뛰어가는 어린 아이. ⓒ 김남희

지난 밤 내내 또 비가 내렸다.
아침에 눈을 뜨니 비는 그쳤지만 여전히 앞산 이마는 안개에 젖어 있다. 아, 지겨운 비. 아무리 본격적인 우기라지만 어쩌면 이렇게도 비가 많이 내릴까? 여행자를 고단하게 만드는 건 무거운 짐도, 낯선 잠자리도, 불편한 교통수단도 아닌, 바로 비다.

위치우위가 쓴 글이 문득 떠오른다.
"밤에 내리는 비는 여행자의 가장 큰 적이다. 이는 단순히 비오는 밤길이 힘들거나, 혹 장화나 우산이 없기 때문만이 아니다. 밤에 내리는 비는 여행자에게 집 생각이 나게 한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 생각은 깊어만 간다.

밤에 내리는 비는 여행자가 편안함을 그리워하게 만든다.
갑자기 자신이 너무 외지고 궁벽한 곳에 처해, 고달픈 처지가 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가련한 자신을 돌아보면 문득 만리 사방으로 치달리던 호탕한 기백도 꼼짝없이 얽매이게 된다.

급류나 험난한 여울, 높은 산 험준한 고개가 아니라 그저 밤비로 인해 여행객은 떠나온 길을 후회하며 때로 중도에 포기하고 발길을 되돌린다. 법현, 현장, 정화, 감진, 서하객. 그들은 밤비를 맞으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어쩌면 그들이 지닌 의지 가운데 가장 강한 것은 밤비의 포위를 뚫고 자신이 가고자 했던 길을 나아간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탓 로 마을의 폭포.
탓 로 마을의 폭포. ⓒ 김남희

어쩌면 이렇게도 내 마음 같을까?
비 내리던 밤, 이 글을 읽으며 마음이 젖어 한참을 어쩌지 못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촘촘한 밤비의 포위망을 뚫고 다시 하루가 시작된다.

늘 가는 숙소 1층 식당에서 국수로 아침을 먹는다.
오늘은 국물에 섬처럼 둥둥 떠오른 기름기 때문에 느끼함의 최절정이다. 국수라면 입에도 안 대던 내가 하루 세 끼 중 한두 끼는 꼭 국수로 해결하고는 하니 정말 사람의 운명이란 알 수 없다.

오늘은 볼라반 고원분지에 위치한 탓로 마을에 가는 날이라 터미널에서 9시 버스를 타야 한다. 세상이 무너져도 절대로 서두르는 법이 없는 에이미가 오늘도 늑장을 부리는 바람에 터미널에 도착하니 9시가 넘었다. 출발하는 버스를 향해 소리를 지르며, 팔을 휘두르며, 목숨 걸고 돌진한 덕에 간신히 올라탄다.

오늘도 버스는 예외 없이 통로까지 가득 들어찼다.
차장이 통로를 비집고 오더니 이미 가득 찬 자리에 우리를 한 명씩 껴 앉히는 '외국인 특별대우'를 해준다.

대나무를 이어붙여 만든 어여쁜 다리.
대나무를 이어붙여 만든 어여쁜 다리. ⓒ 김남희

탓로 마을에 도착하니 11시 20분.
뒤로는 산이 둘러싸고 앞으로는 강이 흐르는 이 작은 마을은 한 눈에 나를 사로잡는다. 간판도 없는 작은 게스트하우스가 눈에 띄어 찾아가 본다.

서로 말이 안 통해 한참을 헤매다가 주인 아줌마가 초빙해온 통역 덕분에 간신히 해결한다. 오랜만에 비가 그치고 해가 떴길래 짐도 안 풀고 카메라를 들고 나선다. 탓로 마을의 가장 큰 볼거리는 같은 이름을 가진 폭포다. 나무 다리를 건너 폭포를 찾아가니 높이는 10여m밖에 되지 않지만 폭은 상당히 넓어서 장쾌한 느낌을 준다.

폭포 주변 바위에 걸터앉아 한참동안 물소리를 듣고 있다가 폭포를 거슬러 위로 올라간다. 길 옆으로는 간간이 인가가 보이지만 다들 일을 나갔는지 인기척이 없다. 뜨겁게 달구어진 햇살만 붉은 황토길 위로 타닥타닥 타오르고 있을 뿐.

한참을 올라가니 또 하나의 폭포가 나온다.
역시 높이는 그다지 높지 않지만 작은 폭포들이 여러 개 모여 옆으로 늘어선 폭포의 일렬횡대는 제법 멋있다.

우리가 머무른 방갈로.
우리가 머무른 방갈로. ⓒ 김남희

게다가 주변에 사람이라고는 나 혼자 뿐이어서 고즈넉하게 주변 풍경을 즐길 수 있다. 다시 강을 따라 거슬러 내려오니 강물 위에 대나무 다리가 예쁘게 놓여 있다. 대나무 다리를 따라 건너편으로 가려 하니 중간에 다리가 끊어진데다 물살이 거세 건너갈 수가 없다. 마을 남자들이 끊어진 대나무 다리를 잇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내려와 근처 식당에서 카레로 점심을 먹는다.

햇살은 여전히 따갑다.
문득 스치는 생각.
"맞아, 내가 이렇게 놀고 있을 때가 아니지. 빨래를 해야지, 빨래."
허둥지둥 숙소로 돌아온다.

그동안 계속 비가 와 빨래를 못 했거나, 했다 해도 뽀송뽀송하게 말리지를 못해 꾸덕꾸덕하게 반쯤 마른 '반건조 오징어' 상태이다. 큰 배낭을 열고 묵혀 둔 빨래봉지를 꺼낸다. 옷들은 비닐 봉지 안에서 온갖 냄새를 풍기며 잘 썩어가고 있는 중이다. 화장실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바지와 셔츠, 양말들을 손으로 비벼 빨고, 다시 발로 밟아 빤다. 다 빤 후에 방갈로 발코니에 주르르 널고 나니 기분이 말할 수 없이 상쾌하다.

산에서 따온 버섯을 물에 씻고 있는 아이들. 머루처럼 까만 눈동자가 크고 깊다.
산에서 따온 버섯을 물에 씻고 있는 아이들. 머루처럼 까만 눈동자가 크고 깊다. ⓒ 김남희

여행을 다니면서 제일 귀찮은 일은 매일 저녁마다 해야 하는 빨래다.
무더위와 비로 인해 속옷은 물론이고, 티셔츠나 바지 역시 하루 이상을 입을 수가 없다. 아침에 갈아입은 옷도 오후가 되면 땀으로 범벅이 돼 온 몸에서 쉰 밥 냄새가 폴폴나기 때문이다.

매일 빨지 않으면 다음 날 입을 옷이 없는 단벌숙녀이기에 아무리 피곤해도 빨래를 하지 않고 잠자리에 들 수가 없다. 처음에는 이 일이 그토록 서글프더니 이제는 이력이 붙어 거의 즐기는 수준이 됐다.
빨래를 마치고 저녁을 먹으러 나가는 길, 발걸음이 날아갈 듯 가볍다.

다음 날은 다시 팍세로 돌아와 에이미와 내가 고대하며 기다려온 '사천 개의 섬'으로 떠난다. 6시 반에 일어나 짐 싸서 터미널에 도착하니 7시 반. 이번엔 너무 일찍 왔다. 버스는 9시 반 출발이란다. 터미널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시간을 보낸다.

버스를 기다리며 본 풍경 하나.
시장 좌판에서 플라스틱 바가지며 프라이팬 같은 신혼살림을 고르며 웃는 젊은 커플.
"어, 이건 금 갔잖아. 내가 바꿔올게."
싸구려 대야 하나도 보고 또 보고 조심스레 고른다. 정성껏 고른 살림살이를 오토바이 뒤에 가득 싣고 떠나는 그들의 부신 모습. 사랑이여, 부디 그들을 기만하지 않기를….

라오 사람들에게 있어 강변은 대중목욕탕이다. 남자와 여자들이 시간을 달리해 저녁마다 강변에서 몸을 씻는다.
라오 사람들에게 있어 강변은 대중목욕탕이다. 남자와 여자들이 시간을 달리해 저녁마다 강변에서 몸을 씻는다. ⓒ 김남희

젊은 신혼부부가 떠나고 난 자리에 이번에는 모녀가 찾아온다.
아직 병상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듯 얼굴 한 켠에 붕대를 감은 어린 딸의 손을 잡고 온 어머니. 어머니의 얼굴에는 고단한 살림살이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딸의 얼굴을 살피며 조심스레 머리띠며 끈을 골라주는 어머니.
말없이 고개만 내젓던 딸이 마음에 드는 걸 발견했는지 어머니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인다. 굳어 있던 어린 소녀의 얼굴로 번지는 희미한 미소. 플라스틱 머리핀 하나에 위안 받는 삶.

특별할 것 없는 이 광경에 나는 왜 눈물이 나는 걸까?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살고 있는 걸까? 더 많이 갖기 위해, 더 좋은 것을 갖기 위해, 일생을 소모하고 마는 게 우리들의 삶이 아닐까? 분명 내게도 작은 것에 만족하고, 사소한 것들에 행복해하던 시절이 있었을 텐데….

어린 시절 소풍이나 명절을 앞두고 엄마가 시장에서 사오신 몇 천 원 짜리 점퍼 하나에 며칠을 행복해 했는데, 어른이 되어서는 그 몇 십 배의 돈을 주고 비싼 옷을 사 입어도 행복하지 못했던 나. 욕망은 채울수록 자꾸 더 드러나는 구멍 뚫린 바가지 같은 것이랬지.

덜 갖되 더 충실한 삶을 사는 일.
언제쯤이나 내 몸과 마음에 익을 수 있을까?
괜히 마음이 젖은 나는 그들이 떠난 후에도 한참을 좌판을 들여다보며 앉아 있는다.

마을에 하나뿐인 TV가 있는 가게에 아이들이 몰려들어 TV를 보고 있다.
마을에 하나뿐인 TV가 있는 가게에 아이들이 몰려들어 TV를 보고 있다. ⓒ 김남희

출발 시간이 다 돼 버스에 올라서니 버스는 또 통로까지 가득 들어찼다. 차장은 라오 사람들끼리 앉은 자리에는 어김없이 세 사람을 앉히면서, 외국인이라고 우리 자리는 그대로 놔둔다. 그 마음이 고맙고 미안해 통로바닥에 쪼그려 앉은 너댓 살 짜리 꼬마아이를 옆에 앉혔다가 내 인내의 끝을 보고 만다.

그 작은 아이의 머리가 내 어깨를 누르고, 그 몸이 흔들리며 내게 기대어오는 것을 어쩌면 그렇게 참지 못하는지…. 의자 밖으로 비어져 나간 엉덩이의 고통도 견디지 못하고…. 세 시간 남짓의 시간동안 그렇게 못 견뎌할 줄이야. 고작 어린아이와 자리를 나누는 일조차 힘들어하는 이런 나를 발견할 때면 스스로에게 정이 뚝 떨어진다.

버스가 멈추자 간식거리를 들고 창가로 달려든 사람들 중에 곤충 몇 마리를 꼬치에 꿰어 파는 사람들이 있다. 메뚜기나 여치, 귀뚜라미는 분명히 아니고 그보다 훨씬 크고 징그럽게 생긴 곤충이 긴 꼬챙이에 곶감 꿰듯 꿰어져 있다. 날벌레를 잡아서 구워먹는다는 사실보다 더 나를 경악시킨 건, 그 꼬치를 사서 찰밥과 함께 먹는 사람이 바로 에이미라는 사실이다!

1960년대 라오 왕국의 수상이자 참파삭 왕자였던 차오 보노메의 관저. 현재는 참파삭 궁전 호텔로 사용되고 있다.
1960년대 라오 왕국의 수상이자 참파삭 왕자였던 차오 보노메의 관저. 현재는 참파삭 궁전 호텔로 사용되고 있다. ⓒ 김남희

처음 한 마리는 남김없이 다 먹더니, 두 마리째부터는 날개를 떼고 씹어먹는다. 그녀의 입 속에서 으깨지고 부서져 아삭아삭거리는 곤충의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온다. 그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비위가 약한 나는 토할 것만 같다. 그래도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어보는 나.

"에이미, 그거 무슨 맛이야?"
"그냥 좀 밍밍한 고기 맛이야. 엄청 바삭거리는. 사실 맛은 별로 없어. 너도 먹어볼래?"
꼬치에서 한 마리를 빼내 내게 내미은 에이미.
"어, 아, 아니야. 난 아침에 먹은 국수 때문에 속이 좀 안 좋아서…."
손을 내저으며 어색하게 거절하는 나.

우리 뒷자석에 앉은 영국여자는 '영국인 여성'이 그런 음식을 먹는다는 사실에 경악을 넘어 분개한 모습이다.
"말도 안 돼. 어떻게 그걸 먹을 수가 있어? 난 굶어 죽는다 해도 그건 못 먹을 거야"라며 인간이 지을 수 있는 가장 혐오스런 표정을 얼굴 전체로 보여준다. 주위의 싸늘한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에이미는 "남희야, 캄보디아에서는 거미와 전갈도 구워서 판대. 난 그것도 먹어볼 거야"라며 한술 더 뜬다.

복권을 판매하는 아줌마가 활짝 웃고 있다.  / 해지는 강변에서 목욕 중인 할머니.
복권을 판매하는 아줌마가 활짝 웃고 있다. / 해지는 강변에서 목욕 중인 할머니. ⓒ 김남희

"근데, 에이미, 너 채식주의자잖아."
"아, 맞아! 나 채식주의자였지? 근데 난 생선이나 해물은 먹잖아. 이게 고기에 해당되는 건가?"라고 뒤늦게 생각난 듯 난처한 표정을 짓는 그녀.
'비틀 넛'이라 불리는 라오스 사람들이 심심풀이로 씹는 나무껍질-오래 씹으면 이빨이 새까맣게 물든다-도 사다주니 신나게 씹어먹는 에이미. 음식에 관해서는 완고한 보수주의자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나 같은 사람은 음식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이 없는 그녀가 정말 부럽다.

"밥 먹고 합시다!"
"밥 먹고 합시다!" ⓒ 김남희

이동식 휴게소. 가끔 정체를 알 수 없는 요기거리들이 팔리곤 한다.
이동식 휴게소. 가끔 정체를 알 수 없는 요기거리들이 팔리곤 한다. ⓒ 김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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