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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근거로 교실 붕괴를 논하는가

10월 11일 토요일 저녁 MBC TV에서 <느낌표>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자체 내에 또 다른 여러 가지 코너를 가지고 있다. 그 중 5탄을 맞이한 <하자하자>라는 코너는 사회적인 문제로까지 거론되고 있는 이른바 '교실 붕괴'를 주제로 다루어, 그 문제 상황을 해결해 보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하자하자>는 시작 장면에서, 다소 자극적인 교실에서의 폭력 장면과 더불어 성우가 매우 급박한 목소리로 "교실 붕괴가 진행되고 있고 이것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라고 소개하였다. 이 방송만 본다면 지금 전국의 교실은 <하자하자>측의 주장(?)대로 '붕괴'의 매우 심각한 상황에 봉착한 듯 보인다. <하자하자>측은 '교실 붕괴'를 '학교 내에서의 폭력 사태, 몇몇의 왕따 당하는 장면'을 통해 설명하였으며 그러한 것을 일반적인 일인양 전제하고 있다.

하지만 이어지는 장면은 코너측이 주장하는 '교실 붕괴'와는 상관 없어 보인다. 눈에 익은 개그맨화된 가수 출신 연예인과 갓 제대한 코미디언이 조우하는 장면이 계속해서 지루하게 이어져 중반까지 계속됐다. 겨우 코너의 말미에 가서야 여러 고등학생들의 인터뷰와 흔히 권위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모 명문 대학 교수의 개인 의견을 근거 삼아, 다시 오늘의 교실이 심각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는 주장을 이어갔다. 마지막으로 교실 붕괴를 막을 방법 중 하나로 <수업 시간에 존댓말 쓰기>를 과제로 제시하며 코너를 마쳤다.

<하자하자>의 다섯번째 과제인 '존댓말 쓰기'를 둘러싸고 지금 <느낌표> 홈페이지에서는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내가 말하고 싶은 부분은 약간 다른 부분이다. 내가 그날 방송된 <하자하자>를 보고 나서 느낀 가장 큰 의문 중 하나는 과연 무슨 근거로 '학교 붕괴'를 논하는가 하는 점이었다. 그러한 의문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코너가 제시한 이른바 '근거'라고 하는 것들을 다시 한번 곱씹어 볼 필요가 있겠다.

<하자하자>에서는 자극적인 몇몇의 교실에서의 폭력 사태와 일부의 체벌 장면을 근거로 '교실 붕괴'가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러한 일들이 과연 '모든' 교실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현재 진행형'인가하는 사실에는 강한 의구심이 든다. 실질적 당사자인 학생들이 코너에서 조명하고 있는 '교실 붕괴'와 '교실의 여러 가지 산재한 심각한 문제'를 실감하고 있으며 크게 동요하고 있을까? 교실 붕괴를 말하면서 일부 자극적인 교실 내에서의 사건 몇가지에 비추어 이른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인터뷰한 사람들은 하나 같이 교실 붕괴의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현재의 교실이 붕괴에 이르렀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개중에는 본인처럼 '교실은 아직 붕괴되지 않았다'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을 것이며, 현재의 학교 생활에 만족을 느끼는 학생들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의견은 전혀 조명되지 않은 채 교실 붕괴의 심각함만이 담긴 인터뷰가 방송되었다. 그러면서 교실 붕괴는 점점 더 부풀려지고 과장되는 것은 아닐까.

또한 <하자하자>가 제시하고 있는 '교실 붕괴'라는 말 자체의 개념도 매우 모호하다. '붕괴'라는 말은 '무너지고 깨어짐'의 뜻으로 기존의 형태를 온건히 유지해 나갈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그렇다면 <하자하자>가 주장한 대로 현재의 교실 상황은 '붕괴'의 상태인가? <하자하자>에서는 이른바 '교실 붕괴'의 증거로 '일부 국한된 학교 내에서의 폭력이나 선생님에 대한 존중의 상실이 교실 붕괴를 일으키고 있다'는 식으로 근거를 제기했다.

과연 학교 내에서의 폭력이 너무 심해지고 있으며 선생님에 대한 학생들의 존중이 땅에 떨어진 것인가? 물론 학교 내에서 학생과 선생님 사이에 갈등이 있고 일부 학생들 간에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것이 언론에 보도되어 가시화될 정도라는 데에는 분명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학교에 등교하고 있는 현 증인으로서 다른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을 적어도 30명 이상을 가진 대한민국 고등학교 학생으로서, 아직도 학생들은 교실에서 선생님 말씀을 경청하기 위해서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간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사실 교실에서 학생이 선생님을 대하는 데 있어 (개인차는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 예의를 어긴 채 대들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 반드시 동료 집단에 의해서 일정한 제재를 받고 적어도 왜 그랬냐는 질책을 받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적어도 일반화된 우리 나라 학교의 현실이 아닌가 싶다.

또 한 가지, 아직까지도 학교에서는 친구들 사이에서의 우정이란 것이 존재하고 있다. 물론 폭력 현상 자체에 대해서 반박하는 것은 아니지만 학교 폭력이 일반화할 수 있는 문제인가 하는 점에서 나는 의문이 든다. 사실 학교 내에서 발생하는 일련의 체벌이나 폭력의 문제는 학교마다 그 분위기나 전통, 현재의 그 학교의 상황에 따라서 매우 다른 양상을 띤 문제이기 때문에 일반화시킬 수 없는 부류의 문제다. 단지 일부 학교에서 그런 문제 상황이 발생했다는 정도로 국한시켜서 보도할 수는 있겠다. 이러한 근거로 볼 때, <하자하자>가 주장하고 있는 교실 '붕괴' 상황은 약간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본다.

좀더 자극적인 소재를 원하는가

통념적으로 객관적인 근거 하에 사회적인 사안을 다루어야 하는 방송에서 그렇다면 왜 이런 신빙성 없는 위기 상황을 전제하고 교실의 상황을 왜곡하고 있을까.

연출자가 아닌 이상 본인으로서는 다만 그 상황을 추론할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은 방송에서 보다 '자극적인 소재'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당신 자녀들이 매일같이 다니고 있는 학교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는데 귀 한번 기울이지 않을 무심한 시청자가 어디 있겠는가.

문제는 그것이 진정으로 심각한 상황이기보다 방송에서 심각한 상황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는 데에 있다. 앞에서도 밝혔듯이 위기감이 충분히 반영된 성우의 급박한 목소리와 그에 걸맞은 몇가지 자극적인 화면은 과연 무엇을 노린 효과란 말인가.

<하자하자>는 청소년을 불쾌하게 만든다

<하자하자>를 보고 느낀 점 중 또 다른 하나는 불쾌감이다. <하자하자>는 이른바 심각한 문제인 '교실 붕괴'를 다루고 있으면서 사실 다른 소리만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그 다른 소리라는 것은 두 MC의 말장난놀이를 지칭한다.

만일 <하자하자>가 주장하는 만큼 상황이 심각하다면 보다 진지한 태도로 문제를 다루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물론 오락과 공익의 두 마리 토끼를 추구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반론을 제기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하자하자>의 취지는 스스로 밝혔듯이 교실에 산재한 문제로의 접근과 사회적 환기이지, 코미디언의 재롱이 아니다. 코미디언의 재롱은 어디까지나 시청자의 재미를 채우기 위한 양념으로서 존재해야지 그것이 메인요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한 면에서 볼 때 <하자하자>의 관심은 그 대상인 '우리 학생'들이 아니라 단순한 불특정 다수의 시청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학생들을 위하기는커녕 코미디언의 말장난을 주로 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 학생들은 우롱당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심하게 말하면 학교 붕괴라는 아픈 현실을 단순한 눈요깃감(?)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게 된다. 정말 <하자하자>에서 청소년들을 생각한다면 문제에 좀 더 진진하게 접근해 다양한 교육 현실을 비추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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