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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쌀쌀한 바람이 부는 밤, 나는 엄마께 문제지를 사봐야겠다고 말씀드렸다. 엄마는 마침 내가 다니는 독서실 비도 내야 하니 겸사겸사해서 같이 나가 사주마 하셨다.

그렇게 외출을 하려는데 엄마는 옷장에서 무언가를 찾으시며 늦장이다. 나는 빨리 나가자며 엄마를 재촉했다. 엄마는 그제야 내가 성의 없게 옷걸이에 팽개쳐놓은, 안 입는 옷을 걸치고 나오셨다.

가장 가까운 서점에 가려 해도 20분 남짓한 거리, 엄마와 나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길을 걸었다. 그런데 도중에 옷가게가 있어서 잠시 들어가 구경을 하게 되었다.

엄마는 이것저것 보시며 들었다 놓았다 반복하실 뿐이었다. 그것을 보니 나는 영 마음이 좋지 않아 엄마께 한마디했다.

“엄마, 그냥 이참에 엄마 마음에 드는 옷 좀 사. 이게 뭐야.”

“누군 살 줄 몰라서 그러는 줄 아냐 이놈아. 내 것 살 거 있으면 너희들 거 하나라도 더 사주려고 그러지.”

“…….”

“그리고 이번 달에 너희들 학비로 얼마가 들었는데, 아무거나 막 살순 없잖니. 조금 더 찾아보고 사자.”

엄마의 핀잔에 내가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던 것은 내 자신이 너무도 철없게 여겨져서 일까. 문득, 얼마 전 용돈 문제로 엄마께 칭얼거렸던 일이 생각났다.

“엄마, 나 용돈 좀 올려줘. 고3 용돈이 이게 모야!”

“저 녀석은 할 일 없으면 용돈 올려 달래. 고3이 무슨 돈이 그래 필요하냐(웃음).”

“공부하는 고3이기 때문에 용돈이 많이 필요한 겁니다. 무슨 소리냐 하면, 학업으로 인한 과도한 스트레스와 지속적인 긴장상태의 유지가 결과적으로 학업능률을 저하시키는 것이지요. 그러한 것들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용돈의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저는 생각하는 바입니다.”

“에라이 이놈아. 네 지금 받는 용돈이나 아껴 써라. 그리고 쓸데없는 생각 말고 공부나 해.”

마음 같아서야 어째 당신자식 용돈이 아까우셨을까. 단지 지금은 되도록 아껴야 하는 상황. 예나 지금이나 나는 엄마의 마음을 알 듯 모른다.

그건 그렇고 조용한 곳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지금의 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 엄마가 희생하셔야 하는 것은 너무도 많은 것 같다.

당신 입을 옷들이며, 엄마가 좋아하는 음악이며 책이며 영화의 취미생활 등등…. 엄마는 이 모든 것들을 빛 바랜 젊은 시절 사진 몇 장에 고이 담아 잊어버린 지 오래라고 가끔 말씀하신다.

그 원인이라고 해야 할 것은 물론 시간적 여유의 문제도 있겠지만 이른바 ‘벌어오자 마자 나가버리는 괴물 같은 생활비’가 더 큰 이유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교육비의 비중이 무시 못 할 정도라고 한다.

진실로 교육비는 우리 가정 경제에 있어서 부담 그 자체다. 대학생 누나의 등록금하며 누나의 생활비, 고3인 내 등록금, 산다하면 몇 만원씩 수시로 드는 책값하며, 독서실비, 급식비 등등….

엄마 입장이 아니더라도 그분의 ‘교육비에 등골 휘겠다는’ 표현이 이해가 갈 만도 하다. 여유가 많으신 분들은 모를 일이지만, 진정 우리나라에서 부모님들이 당신 자녀들을 교육시킨다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일인가를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엄마는 교육비에 부담을 느끼면서도 그것을 아끼려는 생각은 하지 않으신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누나의 대학 졸업이며 나의 대학 입학이다’라고 엄마는 누누이 강조하고는 하셨다.

그럴 때마다 그냥 알았다고 하며 될 것을, 심각한 말들을 장난스레 바꿔 볼 양으로 나는 엄마께 그러는 엄마는 옛날에 공부 잘하셨냐며 물어보았다.

“엄마, 자꾸 나보고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하시는데 엄마는 학교 다닐 때 공부 진짜 잘하셨겠네?”

“그럼 임마. 너보단 잘 했지.”

“그걸 어떻게 증명해? 그럼 엄만 몇 등 했는데?”

“몰라, 하도 옛날이라 3등이었던가? 하여간 너보단 잘 했지.”

“그렇게 잘 했으면서 왜 대학 안 갔어?”

“그땐 다 힘들 때라 가고는 싶었는데 여건이 안 되었지. 엄만 어디어디 국문과 가고 싶었는데…….”

“그럼 별 문제없네. 가면 되잖아. 걱정 마 내가 성공하면 보내줄게.”

“이놈아, 네 앞가림이나 제발 잘 해라. 그리고 나서 대학 보내준다면 나야 고맙지.”

요즘의 나날들은 엄마께 있어 분명 너무도 고단한 하루의 연속 일 것이다. 엄마는 아침에 일 나가셔서 저녁쯤 집에 돌아와서는 집안일을 하시고, 내가 독서실이 끝나 집에 오는 늦은 시간까지 깨어 계신다.

우리들 교육시키겠다고 너무도 많은 것을 희생하시는 우리 엄마(비록 지면상에 등장하시지는 않지만 같은 감사의 말씀을 꼭 드려야 하는 아버지). 비록 농담 섞인 말이 되 버렸지만 많은 날이 지나 내가 어른이 되고 안정된 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 있을 만큼 자리를 잡게 되면 그때, 내가 한 말을 꼭 지키고 싶다.

그때가 되면 내가 엄마께 용돈을 드리며 아껴 쓰라는 장난스런 잔소리를 하고 싶고, 당신이 가고 싶어하셨던 대학도 보내 드리고…. 그때가 되면, 엄마께 꼭 그렇게 해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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