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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곽재구의 예술 기행>
책 <곽재구의 예술 기행> ⓒ 열림원
"인간이 역마를 꿈꾸는 것은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근원적인 향수를 인간 모두가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한 인간의 삶과 그 주변에 펼쳐진 풍경들을 통해 오늘 우리의 삶과 그 의미의 건강한 불빛들을 다시 한 번 되살려볼 수 있다면 그것은 이 책의 작은 바람이 될 것이다."

이 책 <곽재구의 예술 기행>은 시인 곽재구가 다른 문인들, 옛 현인, 미술가, 음악가 등 예술인들의 자취가 어린 장소들을 찾아다니며 느낀 감회를 시적인 글로 표현한 것이다. 저자가 바라는 것처럼 이 책의 내용은 시끌벅적한 답사나 견학보다 마음의 여행, 정신의 여행을 유도하는 서정적 내용들이 많다.

여정에서 거쳐가는 특정 공간으로부터 의미를 찾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자연적인 아름다움, 도시적 매력, 그 공간에 얽힌 사람에 대한 추억 등은 여행자에게 하나의 공간을 특별하고 의미 있는 곳으로 만든다. 이러한 기억들이 얽혀서 여행의 참 맛은 더해지는 것이다.

저자는 예술가들의 영혼이 서린 공간으로의 여행을 통해 꿈, 사랑, 예술이 얽혀서 생성하는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데에 집중한다. 여행지의 다양한 공간에서 얻은 남다른 경험들은 그에게 좀더 커다란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제공하며 자신의 삶의 의미를 확대하는 기회를 만들어 준다.

"창선 마을에서 나는 아이들과 섞여 물수제비를 떴다. 납작한 조약돌이 해변을 따라 죽 깔려 있었다. 조약돌들이 밟힐 때마다 저음의 어떤 신비한 소리를 냈다. 그 신비한 소리들이 알레익산드레의 시들을 닮았다고 순간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우리의 시들은 시대적 상황이라는 그물 안에 너무 촘촘히 갇혀 있는지도 모른다. (중략) 어떤 것이 좋은 시인가? 어떤 소설이, 어떤 예술 작품이 보다 우월한 가치를 지니는가? 나는 아름다움을 생각했다."

사람은 왜 사는가, 그 궁극적인 목표가 아름다움인가, 그렇다면 그 아름다움의 끝은 어디일까. 이제 다 자란 어른이 된 저자는 젊은 시절 자신이 던졌던 이와 같은 의문에 대한 해답을 다시 방문한 섬진강 여행을 통해 찾으려고 한다. 그리고는 그 해답이 바로 과거의 아름다운 추억 속에 있음을 발견한다.

"어떻게 사는 게 아름다움을 건사하는 일인가. 램프 불 따위는 애초에 필요하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이불자락인 섬진강의 모래를 등에 지고 하늘을 바라보면 하늘은 그대로 램프의 꽃밭이었다. 어떻게 사는 게 아름다움을 건사하는 일인가."

저자가 찾기를 원하는 아름다움은 결국 저자가 경험한 많은 것이 혼합된 세상의 모습이다. 그 아름다움의 한 편에는 섬진강의 모래와 하늘, 꿈을 꾸는 별빛들이 있으며, 또 한 편에는 애처롭고 슬픈 사랑의 아픔과 슬픔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이루어 가는 주체는 머언 과거의 자신이었으며 좀더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현재의 나이다.

저자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이란 늘 이와 같이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는 신동엽과 김수영, 그리고 그들의 고장을 여행한 체험을 통해 아름다움의 실체가 결코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적인 것만은 아님을 깨닫는다. 현실의 부정함과 불의를 드러내고 밝힐 줄 아는 치열한 삶의 태도, 그것 또한 아름다움의 실체인 것이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형성하는 요소들이 언제나 현재의 삶의 모습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정약용이나 윤두서와 같은 과거 선인들의 자취를 통해서도 아름다움의 본질을 발견하고 전달한다. '화가는 천한 직업'이라는 사회적 편견의 틀을 깨고, 지식인이지만 화가로서의 길을 걸은 윤두서의 삶은 '변화'가 지닌 사회적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변혁기의 특징은 카오스에 있다. 보수와 진보가 뒤얽혀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는 것이다. 변화를 갈망하는 힘의 외형이 지각을 뚫고 솟구쳐 나오는 것이 혁명이다. 혁명의 성격 규정, 혹은 완성도는 주체 세력의 각성과 형성 과정에서 이미 결정된다. (중략) 변혁기는 지식인에겐 두려운 시기이다."

그 두려움의 원인은 머릿속에서는 변화를 갈망하되 변혁을 이루어낼 실제적 힘을 모으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변혁을 위해 버려야할 기득권과 감수해야 할 희생의 정도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예술가나 지식인에게 있어 이 시기만큼 많은 것을 이루어낼 시기는 없다고 단언한다.

윤두서의 삶은 이와 같은 격변기에 놓여 있었기에 기존의 형식적 틀을 깨는 좋은 예술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 정약용의 글들 또한 변화에 대한 예민한 감각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다양한 해석을 창출하면서 가치 있게 평가된다. 과거든 현재든 긍정적인 변화의 흐름을 주도하는 것이야말로 지식인이 해야할 역할이 아닌가 싶다.

저자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돌아보는 예술 여행을 통해 진솔한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독자들에게 시적이면서 쉬운 언어로 전달해 준다. 그가 전하는 삶의 모습, 예술의 가치, 꿈과 사랑의 의미란 그리 복잡한 것만은 아니다. 우리 삶 속에 녹아 흐르는 다양하고 긍정적인 가치관들, 이것이 바로 그가 말하는 아름다움의 진가일 것이다.

아름다움의 가치란 우리 삶과 동떨어져 존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우리 삶 곳곳에는 발견하지 못한 아름다움이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삶 그 자체가 바로 아름다움, 그 순수한 단어이기도 하다. 진도 아리랑의 서글픈 가락 속에, 이중섭의 게 그림 속에, 가난 속에, 도시 빌딩 숲 속에 행복은 존재하며 아름다움 또한 숨어 있다.

곽재구의 예술기행 - 내가 사랑한 사람 내가 사랑한 세상

곽재구 글, 정정엽 그림, 열림원(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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