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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 빨리 보내라는 메일로 편지함이 가득 찼어요. <매스컴 시민>이라는 저널리스트를 주 독자층으로 하는 잡지인데요, 이곳에 일본의 미디어 현실, 보도 행태에 대한 글을 기고하고 있어요."

'원고가 늦어서 죄송하다'는 제스처를 지어 보이는 신숙옥씨. 그녀의 천진난만한 표정만 보면 그가 일본 사회에서 가장 '잘 나가는' 인기 강사인 동시에 무서울 것 없어 보이는 과격한 인권 운동가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신숙옥씨의 공식 직함은 인재 육성 회사 '고가샤(香科舍)' 대표. 이 밖에도 '이시하라 도지사 퇴진 네트워크 공동 대표', '일본 교직원 조합 21세기 커리큘럼 위원회', '다문화 공생대' 등 여러 단체를 담당하고 있는 현장 활동가다. 또 <유쾌하지 못한 남자들>, <재일 조선인의 가슴 속> 등 여성과 인권 문제에 대해 활발히 저술 활동을 펼치고 있는 작가이며 일본 방송의 시사프로에 나가 일본인 패널들과 설전을 펼치는 시사평론가이기도 하다.

신숙옥씨가 대표로 있는 '고가샤(香科舍)'는 일본 기업 및 학교, 공공기관의 위임을 받아 직장 내 직원 연수를 주업무로 하는 곳이다. 그럴 듯한 학벌도 없고, 재일조선인이며 게다가 여성인 그녀가 일본 사회의 톱클래스 구성원을 재교육하는 것이다.

"잘못된 일본 사회는 잘못된 교육 현실이 만들어 낸다는 생각에서 일본 교육을 바꿔보고 싶었죠. 그런데 법적으로 재일조선인은 교사가 될 수 없는 게 또 하나의 현실이었어요. 공교육이 아닌 다른 교육 기관을 만들어 보자는 시각에서 출발한 것이 바로 인재 육성 회사였죠."

광고 회사 하쿠호도의 엘리트 코스인 특별 선전반에서 8년간 근무 후, 그 때 얻은 노하우를 쏟아 부은 결실이 바로 '고가샤(香科舍)'다. 지금은 일본 사회에서 일등 기업으로 인정을 받고 있지만 회사를 설립하고 한동안은 수많은 차별에 고난의 길을 걸어야 했다.

기업의 많은 담당자들이 한국식 이름이 적힌 명함을 집어던지기도 했고 여성이 강의한다는 것만으로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리는 연수생들도 숱하게 보았다. 최근에는 작년 북한과 일본의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공식적으로 '일본인 납치 문제'를 인정한 여파로 인해 '신숙옥의 강연을 중단하라'는 극우 세력의 협박도 많이 받는다.

하지만 그러한 협박과 항의 속에서도 지금까지 신숙옥씨의 인권 강연회는 한 번도 중단된 적이 없다. 그만큼 그녀의 강연은 모두가 납득하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합리성과 논리성으로 무장돼 있다. 게다가 강연회장에서의 그녀는 그 누구보다 뛰어한 만담가로, 타고난 카리스마로 좌중을 웃기고 울리며 인권 강연을 진행한다.

신숙옥씨가 생각하는 인권은 '이 세상 모든 약한 자들의 권리'다. 그 안에는 일본에 살고 있는 소수민족, 물론 재일조선인도 포함된다, 어린이, 여성, 노인, 차별 부락민, 장애인이 들어있다. 그리고 이들이 살기 편한 세상이야 말로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곳이라고 말한다.

"약자에게 힘내라, 분발하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겁니다. 따돌림을 당하는 학생에게 힘내라고, 분발하고 해봤자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괴롭히는 자, 그런 잘못된 사람들을 양산하는 잘못된 사회 구조를 꾸짖고 바꿔나가야 하는 것이죠."

최근 신숙옥씨가 가장 염려하는 것은 일본 사회의 우경화다. 고이즈미 총리의 자민당 총수 재선, '창씨개명'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아소타로 정조회장의 총무성 장관 임명, '3국인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 도지사의 재선 등, 우경화로 치닫고 있는 것이 현재 일본의 상황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80년 전, 관동 대지진 때 우리 선배들이 겪었던 공포가 현재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 나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공포, 그것이 지금 일본 사회를 살아가는 재일조선인이 느끼는 감정입니다."

이 세상에 홀로 남더라도 '인간다운 삶'을 위한 투쟁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신숙옥씨. 두려운 현실과 차별에 맞서 당당히 싸우는 그녀가 진정 아름다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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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차 영상번역작가. 인터뷰를 번역하는 것도 쓰는 것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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