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아줌마 노동자들이 앉아 뜨개질을 하는 모습.
아줌마 노동자들이 앉아 뜨개질을 하는 모습. ⓒ 오마이뉴스 윤성효
"고향이 전남 나주인데 19년간 공장 다니면서 명절 때면 한번도 거르지 않고 갔지요. 시어머니가 계시고, 맏며느리라서 꼭 가야 하는데, 어제 시어머니께 이번에는 못 간다고 말씀 드렸어요. 그랬더니 두 동서 데리고 한다면서, 안 와도 괜찮으니까 꼭 승리하라고 하시데요. 그 말을 들으니 눈물이 납디다."

일본 본사의 폐업에 맞서 8개월째 부당폐업철회 투쟁을 벌이고 있는 한국씨티즌의 '아줌마 노동자' 최앵두(49)씨가 한 말이다. 남편도 직장을 잃어 그녀가 벌어서 생계를 꾸려왔는데, 그동안 받아오던 고용보험금도 이번 달로 끝이 나는 바람에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그런데 추석까지 닥쳤으니 마음이 무겁기는 그지없다.

모두들 추석 준비에 바쁜 8일 오후, 마산자유무역지역 내에 있는 한국씨티즌 공장을 찾았다. 최근 일본 원정투쟁단과 본사와의 면담이 이루어졌다는 반가운 소식이 알려져서인지, 아니면 그래도 추석이 다가오고 있어서인지 분위기는 예전과 달리 들떠 있었다. 이전 취재 때와 달리 아줌마 노동자들은 농담도 던지면서,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차례상도 부실하게 차려야 하고, 고향에도 갈 수 없는 처지를 서로 알기에, 넋놓고 앉아 있으면 시름만 쌓이는 법이라 더욱 바삐 움직이는 것 같았다. 대여섯명의 아줌마는 투쟁기금으로 사용하기 위해 뜨개질을 하고 있었으며, 티끌 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깨끗한 사무실을 쓸고 닦는 아줌마도 보였다.

한국씨티즌 아줌마 노동자들은 현재 78명이 남아있다. 올해 1월 22일부터 폐업에 들어갔지만, 노동조합은 "이전 노조와 기습적으로 합의했다"며 철야농성에 돌입해 지금까지 투쟁을 벌이고 있다. 사측에서는 '점유방해배제가처분신청'을 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지난 4월말 청산변호사는 용역경비를 동원해 강제퇴거명령을 집행했으나 아줌마 노동자들은 물리적으로 막아냈다. 이 때 일로 박성희 노조위원장이 업무방해 혐의로 구속된 처지다.

그동안 3차에 걸쳐 일본원정투쟁단이 활동을 벌였으며, 지난 9월 3일 일본 본사에서 면담이 이루어졌다. 면담결과 △강압적이 아닌 대화로 풀어나가기로 했으며 △구속자와 고소·고발문제를 풀 것 △청산자금(200억원)의 사용처에 대한 조사 등을 벌이기로 했다. 그러나 이는 면담 내용으로, 원정투쟁단과 본사와의 공식 교섭에 의해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줌마 노동자들은 투쟁의 고삐를 늦출 수 없는 상황이다.

생존권 사수를 바라며 아줌마 노동자들이 손도장을 찍어 놓은 모습.
생존권 사수를 바라며 아줌마 노동자들이 손도장을 찍어 놓은 모습. ⓒ 오마이뉴스 윤성효
아줌마 노동자들은 그동안 전 사장과 청산 변호사의 집 앞과 부산 일본영사관에서 1인시위를 계속해서 벌였으며, 창원에 있는 씨티즌정밀에서 집회를 열기도 했다. 아침 저녁으로 마산과 창원시내를 돌며 유인물을 나눠주기도 했고, 여러 차례 집회를 열어오고 있다.

한국씨티즌 사태로 인해 1명의 구속과 2명의 수배, 14명의 고소고발에다 26명은 손배가압류가 내려져 있는 상태다. 이경옥 한국씨티즌 노동조합 위원장 직무대행은 "사측에서 가혹하고 폭력적인 방법으로 사태를 몰고 갔다"며, "앞으로 폐업과정의 의혹에 대한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줌마 노동자들은 추석 연휴 동안 이틀씩 돌아가면서 집에 다녀온 뒤, 공장을 지키기로했다. 법원으로부터 받아놓은 '퇴거명령'에 대한 집행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공장을 지키기로 한 것이다. 김계선 부위원장은 "전부 엄마와 며느리들로, 제사를 지내야 하는 명절이 제일 힘들다"면서 "여건이 허락하는 대로 추석을 지내기로 했다"고 말했다.

둘째 며느리들은 추석 전날 출근을 하고, 맏며느리는 그날 집에서 차례 준비를 하기로 했다. 누구 한 사람 반대하지 않고, 쉽게 합의에 이르렀다. 둘째 며느리인 유봉두(55)씨는 지난 주말 벌초 때 고향에 가서 "추석 때는 못 온다"는 말을 이미 해놓았다고 말했다.

"웃어른들도 다 알고 계셨다. 이번 추석 때는 못 온다고 했더니 '이미 발을 들여놓았으니 어떤 식으로든 결판을 내야 한다'면서 '이기고 난 뒤에 다음 명절 때 온나'는 말을 하시더라."

그러면서 유씨는 "추석이 되어도 좋은 줄 모르겠어요"라 말했다. "직장 생활하는 아들이 엄마 투쟁하는데 많이 격려를 해주기는 하지만, 그동안 자식한테 손 벌리지 않았는데 이제 고용보험도 끝나가고 해서 추석을 지나고 나면 살아가는 게 더 걱정이에요. 그래도 추석 보내기를 위해 아줌마들이 마음을 쓰는 걸 보면 우리 공장 사람들은 부자요."

이경옥 직무대행은 "추운 날 투쟁을 시작했는데 무더위도 지나가고 다시 추운 계절이 오려고 하는데도 끝나지 않았다"면서 "아줌마 노동자들은 그래도 끝까지 가자고 한다"고 말했다.

한국씨티즌 아줌마 노동자들은 집회 때 자주 쓰는 구호가 있다. 바로 "질긴 놈이 이긴다, 위장폐업 철회하라"이다. 이같은 구호처럼 아줌마 노동자들의 투쟁은 추석에도 계속되고 있다.

이들은 최근 씨티즌정밀 앞에서 집회를 열면서 '생존권 사수'라고 쓴 피켓을 사용했다. 이때 아줌마들은 머리카락을 잘라 붙였다. 잘라도 다시 자라는 머리카락처럼 이들 아줌마들의 투쟁은 끈질기게 계속될 것으로 보였다.


관련
기사
[실상] 한국씨티즌 노조 100일 넘게 농성 계속

아줌마 노동자들이 집회를 열면서 '생존권 사수'라 쓴 피켓을 사용했는데, 글자 속에 머리카락을 잘라 붙여 만든 것이다.
아줌마 노동자들이 집회를 열면서 '생존권 사수'라 쓴 피켓을 사용했는데, 글자 속에 머리카락을 잘라 붙여 만든 것이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