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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강을 든 각설이의 희롱에 부끄러운 시골 아주머니.
요강을 든 각설이의 희롱에 부끄러운 시골 아주머니. ⓒ 김대호
땅끝에서 동쪽으로 15분을 가면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남쪽에 있는 남창5일장이 선다.

다리 건너 완도가 섬일 때에는 인근 섬에서 해산물을 가득 싣고 밀려드는 철부도선이며 제주도 밀감으로 북적대 동네강아지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녔다지만 지금은 강진군 마량항과 완도항으로 전부 옮겨가고 항구의 흔적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래도 어물전 김씨 할머니의 말처럼 '썩어도 준치'라고 2일과 7일 서는 남창장에는 인근 송지며 북일 뿐만 아니라 멀리 완도에서까지 밀려드는 인파로 제법 옛날시장 냄새가 난다. 아마도 인근에 도시가 없어 대형유통매장이 들어서지 않았기 때문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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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찾아오는 손주들에게 용돈도 줘사 주! "

원래 농협 옆이 시장 터인데 노인인구가 많아지면서 장보퉁이를 내리기 편한 터미널 옆으로 옮겨가다 보니 그 길이만도 500미터가 훨씬 넘는다.

생선 한마리를 두고 벌이는 치열한 심리전.
생선 한마리를 두고 벌이는 치열한 심리전. ⓒ 김대호
북일면에서 온 김영수(72) 할아버지는 "옛날 남창장은 참말로 컷제. 완도서부터 신지도 금일도 보길도에서 새벽 참에 온 배들이 물견(물건)을 싹 쓸어 가불먼 늦게 온 사람들은 천신(차지도)도 못했제. 배 댈 때가 없을 때도 있었당께. 추석에 콩쿨대회 할 때는 해남읍보다 크게 했제"라고 말한다.

한 아주머니가 생선 값이 못마땅한지 "아따 쩌그 서는 만원에 여섯 마리드만 여그는 비싸구마"하고 흥정을 붙이자 "아짐(아주머니) 내가 만원주께 한번 사다주씨요. 나도 돈좀 벌게. 이도랑(이 주위)서는 여가 젤 싼지 아씨요" 생선장수가 한 수 위다.

결국 다섯 마리로 낙찰을 보았지만 아주머니는 냉큼 한 마리를 집어들고 만원짜리를 내던지고 도망친다. 생선장수는 애써 좇지 않는다. 미리 예견하고 있었던 표정이다.

"안 남어도 어짜것이요. 그래도 촌 인심이 거시기 하간디. 다 거시기 한께 거시기 한 것이제."

'시골인심이 도시와 같아서 되겠느냐. 시골 장은 원래 깎는 것이 맛이니 막는 시늉만 한 것이다' 대충 이런 뜻이다.

'거시기'로 시작해서 '거시기'로 끝나는 남도의 사투리는 외지인들은 몰라도 전라도 사람들은 다 알아듣는다.

생선전에는 여름별미 보리새우가 미식가들의 입맛을 돋우고 이제 막 맛이 들어갈 낙지도 한몫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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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과일은 비싸 상자로 사지 못한다.
올해 과일은 비싸 상자로 사지 못한다. ⓒ 김대호
아주머니들은 완도 앞바다에서 갓 잡아올린 병어며 감성돔 참돔 돌돔 가오리 같은 향토어종을 뒤적이며 실한 놈으로 제수 감을 구하고 있다. 물가고에도 생선 값은 그나마 싼 편이다.

과일 전에서는 아직 설익은 단감이며 잦은 비로 예년보다 두 배는 올랐다는 사과며 배가 쏟아져 나왔지만 가격 때문인지 상자 단위로 사지는 못하고 비닐봉지에 종류별로 개수를 세서 사는 분들이 많다.

농협 앞에서는 각설이 부부가 신명나게 장타령을 부르며 사람들을 유혹하지만 쉽사리 인파는 모여들지 않는다.

김순심(북평면·54)씨는 "친정 아부지가 호랭이라 처녀 적에 나이롱극장 한번 못가봤당께. 연애 걸어가꼬 야반도주라도 했으먼 이라고는 안살 것인디. 그라고 각설이는 약장시들이 하도 데고 다녀싼게 별로 인기가 없어. 촌사람들도 인자 수준이 높아져 브럿제"라고 말한다.

그래도 장이 파할 즈음에는 처음 보는 거지 모습이 마냥 신기해 아이들이 제법 모여들었고 어르신들이 일삼아 마이크를 빌려 유행가를 멋들어지게 부르며 나눠 준 엿을 맛나게도 드신다.

장날마다 남도 곳곳을 옮겨다니는 고무줄아저씨.
장날마다 남도 곳곳을 옮겨다니는 고무줄아저씨. ⓒ 김대호
도시엔 썰렁한 구조조정 바람에 불경기로 추석경기가 위축됐다지만 그래도 시골은 오지고 푸지다.

고향의 추석장터는 아직도 가난해도 푸짐히 마련해 구걸하는 거지까지 불러 배불리 먹이던 옛 시절의 여유로운 마음이 남아 있었다.

떡방아간엔 밤새 담가놓은 떡살을 빻기 위해 할머니들 10여명이 진을 치고 앉아 수다가 한창이다.

"떡을 시(세)대만 할라고 했는디 니(네)대는 해야쓸란갑서 자석(자식)이 6남매고 시아제(남시동생)들까징 싸줄라면 누 코에 붙일랑가 모르것구마."

7남매 중 큰며느리라는 한 아주머니의 넉살스러운 엄살에 세월의 풍상이 그대로 느껴졌다.

여전히 시골장터엔 고무줄 파는 아저씨며 칼 가는 아저씨가 있다. 예전에 바지춤이 헤지면 끼워 넣던 검정 고무줄이며 아이들 면 기저귀를 채우던 노랑 고무줄까지 여전하다. 다만 숫돌을 들고 다니던 칼갈이 아저씨 대신 모터를 채운 기계로 칼을 가는 모습이 달라진 풍경이었다.

장보따리를 들고 버스를 기다리는 고향의 부모님들.
장보따리를 들고 버스를 기다리는 고향의 부모님들. ⓒ 김대호
12시가 다가오자 여기저기 거나하게 취한 할아버지들의 육자배기 소리가 선술집에서 들려올 뿐 시장은 벌써 파장분위기다.

버스터미널 그늘에는 아직 따가운 9월의 햇살을 피해 삼삼오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장보따리를 안고 버스를 기다린다.

아마도 조상님들에게 선보이고 나면 이제 해바라기 키만큼 자라버렸을지도 모를 손주 녀석 손에 지어줄 추석음식의 재료가 될 것일게다.

버스터미널 구석에서 말없이 담배를 피우고 있는 할아버지가 있다. 아들이 서울서 봉제공장을 해서 고급차도 몰고 다니고 돈도 제법 모았는데 IMF로 다 날리고 나서 며느리는 4살 난 아들을 남겨 놓고 집을 나간 뒤 몇 년째 소식이 없다는 것이다.

고향의 추석은 가난하든 부자든 누구나 반겨하는 푸지고 살진 날이다. 이 할아버지에겐 자식이 돈벌어 성공해서 남에게 자랑거리를 만들어 주는 것보다 1년 내내 농사지어 거둔 곡식을 자식에게 자랑하며 먹이고 싶은 마음이 클 것이다.

부디 이 글을 읽는다면 비싼 선물꾸러미보다는 자식의 얼굴이 최고의 선물이라는 것을 아시고 이번 추석에는 어머니의 송편솜씨를 맛보러 오는 것이 어떨지 권하고 싶다.

여전히 북적거리는 추석대목 시장풍경.
여전히 북적거리는 추석대목 시장풍경. ⓒ 김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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