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장자모 회원들은 인권위의 장애인운전면허시험제도 개선 권고 후 첫 면허시험에 응시했다.
장자모 회원들은 인권위의 장애인운전면허시험제도 개선 권고 후 첫 면허시험에 응시했다. ⓒ 박신용철
"장애인이 차의 운전에 관하여 필요한 적성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는 차의 종류에 따른 특성과 장애의 상태 및 정도를 고려해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할 것이고, 최근 자동차산업의 발달로 자동차의 각종 장치를 조작하는 데 드는 힘이 감소되는 등 장애로 인한 운동능력의 부족은 운전보조장치의 개발로 인해 상당한 정도로 보완될 수 있으므로, 외형적인 신체상태별 장애 정도만으로 판단하고 운전보조장치에 의한 보완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률적인 운동능력을 요구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국가인권위원회 장애인 운전면허취득 차별 사건 결정, 2003. 7. 4)

8월 22일 오후 2시 김은순(28·여·뇌성마비), 안형진(25·남·뇌성마비), 유기용(28·여·뇌성마비), 이세희(23·여·뇌성마비)씨가 운전면허 시험을 보기 위해 도봉운전면허시험장으로 들어섰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신체적 장애를 이유로 운전면허 취득을 제한하는 것은 평등권을 침해하는 차별행위"라고 판단내리고 경찰청장에게 장애인운전면허제도의 개선을 권고한 지 90일 되는 날이었다.

이들은 '장애인자가운전권확보를 위한 사람들의 모임'(이하 장자모) 회원들로 국가인권위 권고조치 이전에도 도봉운전면허시험장으로 운전면허 시험을 치르러 왔으나 원서조차 접수시키지 못한 채 돌아간 경험들을 가지고 있다.

장자모 회원들이 운전면허응시원서조차 접수시키지 못하고 발길을 돌린 것은 도로교통법에 명시된 '장애인운전능력측정시험' 때문이었다. 운전면허 시험에 응시하는 비장애인들은 응시원서 작성→신체검사→원서 접수→필기시험→기능시험순으로 응시하게 되지만, 장애인들은 운전면허 원서를 접수시키기 전 '장애인 운전능력측정시험'을 필수적으로 거쳐야 한다.

장애인 운동능력측정실 앞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장애인 운동능력측정실 앞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 박신용철
그동안 장애인들은 장애유형과 정도가 천차만별임에도 비장애인의 기준에 맞춰 설정된 기기를 이용해 검사를 받아야 하는 장애인 운전능력측정시험이 장애인 차별이라며 폐지를 요구해왔다.

이러한 요구를 경찰청에서 귀담아 듣지 않자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사건으로 접수했고 인권위는 장애인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렇게 해서 이들은 인권위의 장애인운전면허시험 개선 권고이후 처음으로 운전면허 시험을 보러 온 것이다.

장자모 회원인 이들 4명의 장애인들은 도우미들의 도움을 받아 자동차운전면허 응시원서를 작성하고 시험장 지하에 있는 신체검사실로 향했다.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시력, 색맹 등의 검사를 한 뒤 의사의 검진을 받았다. 의사가 장애인들을 판단한 뒤 운전능력측정시험을 받아야 하는지 여부를 결정하고 있었다. 이는 자동차운전면허응시표에는 정신질환, 경련성질환, 마약류, 알콜중독 등으로 인한 치료여부를 묻는 '질병에 관한 신고서'가 있는데 이 부분을 기입한 사람은 의사의 검진을 받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들이 처음으로 도봉운전면허시험장측에 항의를 한 것은 응시원서 비용에 관한 것이었다. 통상적으로 운전면허시험장에서는 접수비, 신체검사비 등을 우선적으로 받고 있는데 소요비용을 다 지불한 뒤에야 받게 되는 '장애인 운전능력측정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원서도 접수시킬 수 없게 된다는 것이었다.

장애인들의 운전면허 응시단계마다 도봉운전면허시험장 민원실 관계자들이 동행해 도움을 주기도 했는데, 이에 대해 안형진씨는 "우리한테만 특별하게 대하지 말고 운전면허시험장을 찾는 모든 장애인들에게 잘 대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도봉운전면허시험장 민원실 노용호씨는 운전은 자신뿐 아니라 타인의 생명과 재산에 손상을 주기 때문에 검사조건이 까다로운 것"이라며 "지난 10년간 통계치를 보면 10만명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결국 1년에 한 개의 군(郡)에 해당하는 1만명이 사망하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고 말해 장애인운전능력측정시험의 불가피성을 간접적으로 강조했다.

4명의 장애인들이 운전능력측정시험을 보고 있다.
4명의 장애인들이 운전능력측정시험을 보고 있다. ⓒ 박신용철
국가인권위 권고에 따른 추가조치 여부를 묻자 노용호씨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결정은 받아봤지만 '권고사항'일 뿐 법적 구속력은 없는 것"이라며 "장애인 운전능력측정시험은 법에 의해 시행되는 것이다, 아직 경찰청으로부터 어떤 지침도 하달된 것이 없다"고 말했다.

신체검사와 의사검진을 받은 장자모 회원 4명은 운전면허시험장 1층 오른쪽 구석에 위치한 '장애인운전능력측정시험장'으로 갔다. 장애인 운전능력 측정시험은 자동차 운전석 모형을 한 장치에 장애인이 앉아 측정검사를 받게 되면 검사자와 연결되어 있는 컴퓨터에 의해 합격, 불합격 여부가 자동으로 확인되는 시스템이었다.

장애인운동능력측정검사 기기 운전석 앞 모니터에는 '핸들을 오른쪽으로 두 바퀴(720도) 정도만 돌리시고 24초 동안 유지하십시요'라는 안내문구가 붙어 있었다. 이것은 '4.8㎏ 수동핸들을 2.5초 이내에 720도 회전시켜 24초 동안 유지해야 합격하는 것은 비장애인에게도 힘들다'며 가장 장애인 차별적인 것이라고 지적받아왔던 검사기준이다.

장애인운동능력측정시험에는 핸들조작, 발브레이크조작, 수동식 브레이크 조작, 엑셀레이터 조작, 수동식 엑셀레이터 조작, 클러치 조작, 기아변속 조작, 사이드브레이크 조작의 단계를 가지고 있으며 이것들 중 하나라도 불합격하게 되면 운전면허 응시원서를 접수할 수 없게 된다.

장애인운전능력측정시험 기기
장애인운전능력측정시험 기기 ⓒ 박신용철
이날 운전능력측정시험에 응시한 4명의 장애인들 중 합격한 사람은 이세희씨 단 한 명뿐이었다. 장애인들은 운전능력측정기기에 대해 신뢰할 수 없다면서 "장애인 당사자가 참석하지 않은 채 결정된 장애인운전능력측정시험 기준과 기기로 다양한 유형을 가진 장애인들의 운전능력을 측정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강하게 항의했다.

기자가 장애인운전능력측정기기에 앉아 직접 수동핸들(한 손으로 조작하게 되어 있음)을 조작해보았는데 한 손으로 수동핸들을 돌리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유기용씨가 수동핸들을 조작하며 '힘들다'고 말하고 있다.
유기용씨가 수동핸들을 조작하며 '힘들다'고 말하고 있다. ⓒ 박신용철
장애인들이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결정을 거론하며 최소한 수동핸들을 파워핸들로 교체하는 등의 조치도 이루지지 않은데 항의했지만 '임의대로 바꿀 상황이 아니다, 법조문이 바뀌어야 한다"는 말만 되돌아왔다.

결국 장애인들은 "운전능력측정검사제도에 대해 책임자가 직접 나와서 장애인들의 의견을 듣고 공식입장을 밝혀라"고 요구하면서 연좌농성에 들어갔다. 이들의 요구사항은 △현재 경찰청에서 진행중인 '장애인운전면허시험제도' 연구용역을 담당하고 있는 연구모임을 해체하고 장애인당사자가 참여하는 새로운 연구모임 구성 △장애인 운전능력측정시험 폐지 △장애인이동권 보장이었다.

장애인들의 연좌농성이 시작되자 도봉운전면허시험장 조희련 시험장장이 직접 나와 이들의 요구사항을 경청한 뒤 공식입장을 밝혔다.

조희련 시험장장은 "국립재활원 교수진들이 시험장에 내방하기도 했다, 장애인운전능력측정시험제도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개선될 것으로 본다"며 "면허시험장은 법개정에 관여할 위치에 있지 않고 법에 규정된 대로 면허시험에 응시하도록 시행하고 있다, 가능한 장애인들에게 기회를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답했다.

조희련 시험장장(長)은 또 "경찰청에서 추진중인 법개정이 있은 후 지침이 하달되면 그에 맞춰 시험에 응시할 수 있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면서 "장애인들의 요구사항을 경찰청에 전달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대해 장자모 안형진 대표는 "장애인운전능력측정시험 기기가 없어질 때까지 계속해서 운전면허시험에 응시하고 우리의 요구가 관철될때까지 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애인들은 운전능력측정시험이 장애인차별이라며 폐지하라면서 책임자의 공식 답변을 요구했다.
장애인들은 운전능력측정시험이 장애인차별이라며 폐지하라면서 책임자의 공식 답변을 요구했다. ⓒ 박신용철
이들 장자모 회원들이 여러 운전면허시험장들 중 도봉운전면허시험장을 찾은 것은 장애인들의 운전면허응시가 어렵다는 통계를 바탕으로 장애인운전능력측정시험 때문에 응시원서조차 내지 못해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는 사실을 경찰청에 전달시키기 위한 '전략' 차원이었다.

이에 대해 유기용씨는 "도봉운전면허시험장에 운전면허시험을 응시하러왔던 장애인들 중 상당수가 운전능력측정시험에서 탈락한 뒤 강남운전면허시험장에서는 문제없이 운전면허시험에 응시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현재 경찰청은 국립재활원과 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에 장애인운전면허시험에 대한 연구용역을 발주했으며 10월경 연구를 끝내고 11월 개정법안 공청회를 열 계획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01년~2002년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위원 2002년 3월~12월 인터넷시민의신문 편집위원 겸 객원기자 2003년 1월~9월 장애인인터넷신문 위드뉴스 창립멤버 및 취재기자 2003년 9월~2006년 8월 시민의신문 취재기자 2005년초록정치연대 초대 운영위원회 (간사) 역임. 2004년~ 현재 문화유산연대 비상근 정책팀장 2006년 용산기지 생태공원화 시민연대 정책위원 2006년 반환 미군기지 환경정화 재협상 촉구를 위한 긴급행동 2004년~현재 열린우리당 정청래의원(문화관광위) 정책특보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