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주에 우리 집에 손님들이 여럿 왔었는데 어울리다 보니 아주 웃기는 현상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날의 대 발견은 날이 지날수록 고만고만한 새끼를 쳐서 지금은 아주 상당한 방계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사람 호칭에 대한 것이다.

손님 중 한 사람이 이전에 전주시 시의원을 했던 사람인데 너도 나도 여전히 의원님으로 부르는 게 아닌가? 근데 더 고약한 건 당사자가 아무렇지도 않게 현직의원 행세를 하는 것이었다. 호칭 상으로 말이다.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는 말은 익히 들어 왔지만 '한번 시의원은 영원한 시의원'이라는 말도 새로 만들어야 할 판이었다.

손님 중 또 한 사람은 변호사였다. 이 사람을 다들 말끝마다 아무개 변호사라고 불렀다. 마당에 둘러앉아 웃통과 함께 체통도 벗어 놓고 삼겹살을 굽고 있는 판에 소주병이 몇 병째 나뒹굴어도 그놈의 호칭은 한 번도 흐트러지는 법이 없었다.

특히 이 변호사의 고등학교 한 해 선배가 있었는데 꼬박꼬박 아무개 변호사라고 부르는 게 아닌가. 나만 아무개씨라고 부르자니 눈치가 보일 지경이었다. 10년 하고도 몇 년 전, 막역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후배처럼 절친하게 지내던 사이라 '씨'라고 불러도 괜찮을 성싶은데도 말이다.

집주인이자 그날의 주인공인 나는 가장님 또는 농부님으로 불리기를 원했지만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내내 나는 제일 만만한 호칭인 선배님 또는 선생님으로 불렸다. 선생? 일찍 태어난 게 무슨 벼슬이라고 쩝~. 일개 가장과 일개 농부는 시의원과 변호사라는 직함 앞에서 찍소리도 못하고 찌그러져 있었던 하루였다.

어느 자리에서 서로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유독 목사 한 사람만 참 이상하게 자기를 소개하는 것을 내가 발견했다. 이 발견 역시 나 혼자만 발견한 것이다.

다들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 아무개입니다. 이렇게 소개를 하는 데 그 목사만 '어쩌구 저쩌구 아무개 목사입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어디에 사는 목사 아무개입니다 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내가 눈치도 없이 코치(?)를 해줬는데 그분이 얼굴을 붉히기에 영문도 모르고 내 얼굴도 빨개졌다. 직전에 '어디에 있는 교사 아무개입니다'라고 인사하는 것을 뻔히 봤으면서도 그 목사는 그 모양이었다. 스님이 '아무개 스님입니다'라고 자기를 소개한다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가?

전라북도 도청 산하에 있는 어느 연구소로 전화를 여러 번 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 이번 주에 있었던 일이다. 내가 '아무개씨 바꿔주세요'하면 전화를 받은 분이 꼭 '아무개 박사님 말이세요?'하는 것이었다.

연구소라면 평연구원들도 대개 그렇듯 그 젊은 분도 박사학위를 가진 모양이다. 근데, 석사학위나 학사학위 가진 사람은 석사님 학사님이라고 안 불리는데 박사학위 소지자만 정식 직함을 놔두고 꼭 박사님으로 불리는지 참 웃기지 않는가? 명함에도 직함과 별도로 무슨 박사 이렇게 적어 다니는 사람들 보면 얼굴을 다시 쳐다보게 된다. 내 명함에 '자동차 1종 면허'라고 적어 넣어 볼까?

경이로운 나의 대 발견이 차별 없는 세상으로 가는 시금석이 될 것이라는데 대해 콧방귀도 안 뀌는 사람들이 많다면 이것 역시 경이로운 일일 것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농(農)을 중심으로 연결과 회복의 삶을 꾸립니다. 생태영성의 길로 나아갑니다. '마음치유농장'을 일굽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