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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중, 나는 월요일이 제일 부담스럽다. 월요일엔 영어와 영어독해가 들었는데 두 과목 모두 단어시험을 보기 때문이다.

외워야 할 영어단어 개수는 과목당 스무개, 시간은 단 3분이다. 그 짧은 시간을 위해서 우리는 영어 단어를 말 그대로 ‘달달’ 외워야 한다.

영어 단어시험을 앞둔 쉬는 시간이 오면 교실은 바빠진다. 어떤 아이들은 그룹을 짜서 같이 영어 단어를 외운다.

“너 'depict'가 모 개?”

“후후, ‘묘사하다’잖아. 내가 그 정도도 모를 것 같으냐? 좋아 이번엔 내가 물어보지 ‘오래 견디는’이 영어로 모 개?”

“오래 견디는? 가만 있어봐 아까 분명히 외운 기억나는데…. 야야, 말하지 마.”

“(갑자기 끼어든 친구) 바보 'durable'이잖아. 그것도 빨리빨리 못 말 하냐.”

“왜 말해!”

그나마 이들은 어렴풋이나마 단어 뜻을 알기 때문에 여유가 있다. 그렇지 못한 경우라면 홀로 중얼거리기도 하고 흰 종이를 가득 메울 만큼 쓰고 또 써가며 외우는 것이다.

이렇듯 평소에도 외워야 할진대 중간고사와 기말고사의 내신 시험 철이 다가오면 그야말로 무언가 외우는 것은, 더더욱 일상이 되어버린다(그래도 요즘엔 선생님들께서 우리 대학 가는데 유리하라고 시험을 쉽게 내주신다. 그런데 그 쉽다는 것은 선생님께서 찍어주신 것을 모두 외워야 가능한 이야기다).

일례로, '공업'의 경우 6면에 걸친 프린트의 온갖 알 수 없는 ‘기어’의 이름이며, 발전소의 발전방식, 발전순서 따위를 모두 외워야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가 있다.

작문의 경우에도 선생님께서 나누어 주신 60문제 프린트의 문제와 답을 외워야 한다.

그런데 한창 준비하고 있는 수능의 경우도 외워야 할 것 투성이라는 점에서 보면 같은 경우다. 다만 조금 다른 것은 외운 것을 토대로 생각도 해야한다는 것 정도.

친구들하고 이야기 할 때 이런 어쩔 수 없는, 암기 위주의 공부에 대해서 불만을 터트리고는 했다.

“아 짜증나. 나는 왜 우리가 지금 공업 같은 과목 배우는지 모르겠다고. ‘조명의 종류’를 왜 외워야 하는데. 중요한 것도 아니면서, 안 그래도 수능 공부하느라 바쁜데.”

“그러게 말이야. 더 심한 건 교련이야. 질병의 종류는 왜 다 외워야 하는데? 붕대감기는 왜? 사람 다쳤으면 그 시간에 빨리 119에 신고해야지.”

“하하, 그래 맞아. 근데 수능에서도 왜 외워야 하는지 모르는 거 천지잖아. 개념이나 공식도 외워야 하고, 어떤 사람은 그냥 유형을 외우라던데, 하여간 이런 것들도 다 외워야 문제를 풀던데…….”

“그래. 사탐(사회탐구), 과탐(과학탐구)도 다 외워야 할 것 투성이야.”

나는 이런 상황이 불만스러웠다. 그건 다른 아이들도 느끼는 바였다.

처음에는 그래도 일종의 반항심(?)에 우리는 왜 맹목적으로 외워야만 하냐고 여러 사람에게 물어도 봤다. 그럴 때마다 ‘그래서 넌 공부하지 않을 거냐?’라는 반박이 뒤따랐고 그럴 때마다 할말을 잃었다.

그리고 아무리 불만스러운 상황이더라도 반복되다 보니까 무신경해지는가 보다. 지금은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게 된 것을 보니…….

이제는 외우는 것을 아주 잘한다. 점수를 잘 받기 위해서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그냥 외우는 것이다. 외우고 시험을 보고, 또 시험이 끝나면 껄끄러운 짐을 벗어 버리듯, 외운 많은 것을 잊어버린다. 그리고 이런 생활이 이제는 편하게 느껴진다.

암기로 충만한 하루하루 그것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 우리에게 평범한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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