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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도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일제하 식민지 시절의 친일 반민족 행위 규명과 친일잔재 청산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는 민족문제연구소 회원이다. 내가 친일군인 김창룡이 대전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있다는 것을 안 것은 약 3년 전의 일이다.

김영삼 정부에서 김대중 정부로 정권이 교체될 무렵인 1998년 2월에 대전국립묘지의 장군묘역으로 슬그머니 이장되었다는 것이었다. 누군가 치밀하게 준비해 오다가 정권 교체기의 공백을 이용하여 전격적으로 성사시켰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김창룡이 누구인가. 그는 일제 때는 일본의 관동군 헌병대에서 밀정으로 있으면서 만주의 항일독립투사들을 잡아들이는 데 혈안이 되어 50개가 넘는 항일독립군 조직을 적발해 검거하였으며, 그 혁혁한 전과를 인정받아 일본군에서 승승장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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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선생 볼낯없다, 김창룡묘 파내라"

그러다 해방 뒤 체포되어 두 번이나 사형선고를 받고도 탈출에 성공하여 우리 군에 투신하였으며, 결국은 민족지도자 김구 선생의 암살을 사주하는 등 갖은 반민족 행위를 저질렀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국립묘지에 묻힐 수 있단 말인가? 그의 묘가 국립묘지에 있는 것이 정당하다면 그의 사주에 의해 암살당한 김구 선생의 모친과 아들의 묘는 왜 그곳에 같이 있어야 하는가? 과연 누구의 묘가 그곳에 있어야 하는가.

지난해 현충일에 대전국립묘지에서 김창룡 묘 이전을 촉구하는 첫 집회를 열었다. 몇몇 시민단체의 호응으로 성공리에 집회를 마쳤고 올해 현충일에 다시 집회를 열었다. 올해에는 참가단체가 10개를 넘었고 시민들의 호응도 대단했다.

대부분 시민들은 김창룡의 반민족 행위에 대해 모르고 있었으며, 그가 국립묘지에 묻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그가 친일 반민족 행위를 자행한 군인이었고, 지금 국립묘지에 묻혀 있다는 것을 안 순간 기꺼이 서명에 응해 주었다.

올해는 8·15 광복절을 앞두고 집회를 한 차례 더 열었다. 지역 언론의 관심은 전과 달리 높았다. 두 해에 걸쳐 집회를 열며 느낀 것은 이제 친일잔재 청산이 민족문제연구소만의 관심사항이 아니며 많은 시민이 공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묘가 국립묘지에 있는 한 우리는 늘 부끄러울 것이다. 제 나라의 불행한 시절에 나라와 민족을 배신하며 일신의 안위를 추구한 부역자들을 처단하기는커녕 국립묘지에 묻어주는 관대함을 보이는 나라가 우리나라말고 또 있을까? 아이들이 보고 배울까 겁난다.

독립운동을 한 애국지사들은 자신이 고통스러웠던 것은 물론, 가난을 자식들에게 대물림하는데, 반민족 행위를 한 사람들은 대를 물려가며 잘살 수 있다면 누가 누란의 위기에 목숨 바쳐 나라를 지키려 하겠는가? 자식들에게 고개를 들 수가 없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 뜻을 같이하는 모든 시민사회단체에 ‘친일반민족 행위자 김창룡 묘 이장 추진위원회’ 구성을 제안한다. 김창룡 묘 이장은 반드시 이루어내야 할 과제다. 이는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고 흐트러진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반민족 행위자들은 죽어서도 단죄받는다는 추상같은 원칙을 세워 다시는 불행한 시기에 나라와 민족을 배신하는 무리들이 나타나지 못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내년 현충일에는 이런 일로 집회를 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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