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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8일 방미중인 윤영관 외무통상부 장관과 기자회견중인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
지난 3월 28일 방미중인 윤영관 외무통상부 장관과 기자회견중인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 ⓒ 미 국무부
"미 국무장관 파월은 사임 의사가 있는 것인가? 팽(烹) 당하는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인가?"

지난 4일 미 유력 일간지 <워싱턴포스트(이하 WP)>의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2004년 선거에서 재집권에 성공한다 해도 파월 장관과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은 사임할 것'이라는 보도가 뜨거운 관심을 모으고 있는 가운데 일부에서는 이 보도가 파월의 영향력을 무력화하기 위한 '음모론'일 것이라고 주장하고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WP는 4일자 1면 기사 '부시 재집권에 성공하면 국무부 개편할 듯 - State Dept. Changes Seen if Bush Reelected'에서 "아미티지 부장관이 최근 콘돌라자 라이스 안보 보좌관에게 부시 대통령이 재집권에 성공한다 해도 자신과 파월 장관은 사임할 것"이라는 의사를 전달했다고 '익명의 관계자'의 말을 빌어 보도했다.

사임 배경과 관련해 WP는 "파월의 사임은 한번의 임기 동안만 봉직할 것이라는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WP 보도 이후, 각 언론의 반응

WP의 보도가 나간 뒤 파월은 국영 중동방송(SAWA - 아랍권을 대상으로 미 정부가 운영하는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내가 사임할 것이라는 보도는 말도 안 되는 것"이라며 "워싱턴 정가에 흔히 나도는 가십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라이스 안보 보좌관에게 사임 의사를 전달했다고 지목된 아미티지 부장관 역시 "터무니없는 보도"라며 부인하는 가운데 백악관과 국무부측도 WP의 보도 내용을 강하게 부인하고 나섰다.

미 정부의 일관된 부인에도 불구하고 세계 언론의 시각은 '파월의 사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영국의 텔레그래프는 "파월이 2기 내각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은 워싱턴 정가의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파월의 사임을 기정사실화 했다.

영국의 가디언 또한 한 외교전문가의 "자신에 대한 충성심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부시가 충성심이 강한 라이스 안보 보좌관을 등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말을 인용보도 해 오히려 파월의 사임 뒤 후속인사에 관심을 두는 분위기다.

언론이 파월의 사임에 더 큰 비중을 두는 배경에는 여러 가지 분석이 뒷받침되고 있다. 현재 그가 66세의 고령이라는 점, 2기에 걸쳐 국무장관을 지낸 전례가 극히 드물다는 점(레이건 행정부 때 조지 슐츠 장관 한 명뿐), 파월의 아내가 그의 정치적 행보에 반대한다는 점, 부시 행정부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강경파에 둘러싸여 외로운 행보를 하며 여러 좌절을 맛보았다는 점 등등이 파월의 사임에 무게를 두게 되는 요인들이다.

임기 17개월을 앞두고 나온 사임설, 음모론 제기돼

파월 장관이 2기 내각에 불참할 가능성이 큰 것은 사실이나 잔여 임기를 17개월이나 남겨 놓은 시점에서 '사임설'이 제기되는 것과 관련해서는 '음모론'이 제기되는 등 실제 그의 사임여부와는 별개로 '사임설이 제기된 시점과 관련된 논란'이 더욱 거세게 일고 있다.

미국의 유력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5일 "중도 성향의 파월의 사임은 골수 공화당 지지자들뿐만 아니라 민주당 지지자들도 원하는 결과"라며 양당은 파월의 사임을 '서로에게 유리한 상황을 연출할 것'으로 보는 시각, 때문에 그의 사임설이 음모론에 기인해 촉발된 것으로 보는 시각을 소개했다.

뉴욕타임스는 "파월의 지지자들은 이번 사임설을 평소 그의 온건한 행보에 거부감을 보여온 공화당 매파들이 파월을 무기력하게 만들기 위해 저지른 소행으로 보고 있다"는 이른바 보수파의 음모론을 제시했다.

또 "파월이 2기 부시행정부에 불참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내년 대선에서 민주당에게 유리할 것이기 때문에 민주당의 기대감에서 나온 보도일 가능성도 있다"며 민주당의 음모론을 보도하기도 했다. 파월의 사임이 민주당에 유리할 것이라는 전망은, 그의 온건한 성향을 지지해온 온건파 유권자들이 '매파'들로 구성될 부시의 외교팀을 보고 부시를 외면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에 기인한다고 뉴욕타임스는 덧붙였다.

그러나 파월의 강한 '사임 부인'에도 불구하고 이미 각 언론에는 후임 국무장관의 이름이 거명되고 있다는 점과 하마평에 오르고 있는 인사들의 면면이 역대 '국무장관'들 중에서 최고의 강경파 성향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음모론이 있다면 보수파의 음모론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라이스 안보 보좌관과 울포비츠 국방부 부장관이 유력한 국무장관으로 거론되고 있다.

영국 언론들, 라이스와 울포비츠에 우려 표해

한편 미국의 강력한 동반자로 이라크 전쟁을 함께 이끈 영국 언론들이 파월의 후임으로 거론되고 있는 라이스와 울포비츠에 대해서 '대화가 통하지 않을 인물들'이라며 큰 우려를 표하고 나서 이들에 대한 영국측의 우려를 대변했다.

영국의 가디언은 "파월이 사임하고 라이스가 국무장관이 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사실이라면 영국의 영향력은 감소하게 될 것"이라며 "라이스가 주미 영국대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는 있다 해도 파월 장관과 같이 블레어 정부와 궁합이 잘 맞을 것이라고 보는 전문가는 많지 않다"고 보도했다.

영국의 BBC 방송 또한 인터넷판에서 한 외교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파월 장관과 아미티지 부장관은 부시 행정부의 다른 각료들보다 유럽의 시각을 잘 이해하려고 노력했다"고 보도해 파월 국무팀에 대한 아쉬움의 일단을 나타냈다.

BBC 방송은 또 "2기 국무부 장관으로 기용될 가능성이 있는 울포비츠 국방부 부장관은 이라크 전쟁을 기획한 매파 중의 매파"라면서 "그가 장관에 기용된다면 이라크에게 사용했던 방법을 북한과 이란에게 적용시킬 것을 우려하는 이들이 많다"고 일각의 우려를 소개했다.

사임 논란, 고독한 파월의 위치 확인시켜

이번 파월의 사임논란이 실제 음모론에 기인해 터진 것인지, 익명의 취재원을 인용한 WP의 오보인지 판단이 쉽지 않은 가운데 매파들로 구성된 부시 행정부 내에서 그가 어느 정도로 고독한 위치에 처해 있는지를 확인시켜준다는 점에서 나름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파월은 자주 부시 행정부 내에서 '따돌림'을 당했으며 이로 인해 고독함을 많이 느껴왔다. 언젠가 한번 파월은 자신의 유럽 외교채널에게 농담처럼 "부시의 강경매파들은 나를 상대로 '지하드(성전)'를 벌이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대화 중심의 외교노선을 지향한 파월이 큰 곤란을 겪었다고 한 영국 언론은 전했다.

집권 내내 '예방전쟁'이라는 명목 하에 UN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침략전쟁을 자행하는 부시 행정부 내에서 UN의 중재를 통한 사태해결과 우선적인 당사국과의 대화를 선호한 파월의 목소리는 매파들의 고함소리에 대부분 묻혀버렸다.

지금까지의 상황도 그에게는 쉽지 않은 '지하드'의 연속이었건만 잔여 임기를 17개월이나 남겨 둔 상황에서 '파월이 2기 부시팀에는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도는 또 다시 파월의 입지를 축소시키는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라는 전망이 대두되고 있다. 한 마디로 후임으로 거명되고 있는 라이스, 울포비츠 등의 입지가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이라크 재건문제, 중동문제, 북핵문제 등 부시 외교팀에는 지금보다 더 큰 난제들을 남겨두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부시 행정부 중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국제기구의 권위를 인정하고, 유럽의 시각을 이해하고, 당사국과의 대화를 선호하는 파월 국무장관의 입지를 크게 위축시킬 언론의 보도가 워싱턴 정가를 강타했다.

그의 입지를 흔든 뒤 대신 차지할 공화당 매파들이 어떤 계획으로 북핵문제 등 현존하는 외교문제를 대할 것인지 심지어 영국에서조차도 우려의 시각으로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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