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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진입로 입구. 미술관 로고가 형상화된 상징물이 파란 옷을 입고 세워져 있다. 오른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빨간 옷을 입은 전화 박스가 있다. 그리고 뒤로 밤색 옷을 입은 건물이 보인다.  모두 창이 많다.
미술관 진입로 입구. 미술관 로고가 형상화된 상징물이 파란 옷을 입고 세워져 있다. 오른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빨간 옷을 입은 전화 박스가 있다. 그리고 뒤로 밤색 옷을 입은 건물이 보인다. 모두 창이 많다. ⓒ 박태신
토요일 오후 덕수궁 옆 돌담길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습니다. 바닥 공사를 한 이후로 한참이 지났는데, 자동차와 행인의 통행 양상이 공사 이전과 많이 달라졌습니다. 자동차는 면허 시험장처럼 구불구불해진 길을 따라 가야 하지만, 행인들은 걷는 일이 한층 자유로워졌습니다.

속도를 마음대로 내지 못하도록 차도를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턱이 없어지고 단지 아스팔트와 보도 블록에 따라 차도와 인도가 구분되는데, 행인들은 가운데의 차도를 마음대로 지나면서 양쪽 인도를 오갈 수 있습니다. 차도는 인도 사이에서 맥을 못 춥니다.

작년에 대법원이 옮겨지고, 시립미술관이 들어서면서 이 길은 더욱 활기가 넘칩니다. 원래는 옛 서울고등학교 자리에 있었지요. 담 너머 덕수궁 그러니까 왕궁이었던 이 곳도 자유로운 나들이 지역입니다. 사진 찍는 이들, 웨딩 사진을 찍는 이들이 유독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합니다. 담장을 사이에 두고 사람들의 자유로움이 넘나듭니다.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도 이렇지요.

루브르는 원래 왕궁이었습니다. 무려 8세기라는 긴 세월 동안 지어진 왕궁입니다. 왕가에서는 화가들의 미술 작품을 수집하고 이곳에서 귀족들에게만 전시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1699년 처음으로 '살롱전'을 열어 공중에게 전시했습니다. 그리고 1793년에 최초의 미술관 성격의 것으로 변모합니다.

오랫동안 왕궁이었던 곳을 개조해서 많은 시민들이 미술 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곳으로 바꾸는 것은 혼란스러웠던 프랑스 역사와 같이 하는 긴 작업이었습니다. 그런 역사를 보내고 이곳은 프랑스 사람들이 가장 자랑하는 곳이 되었고, 그 자부심은 세상이 다 인정합니다. 더욱이 1989년에 박물관 중앙에 투명 피라미드 건물을 완성함으로써 루브르는 또 다른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예술이 정치권력을 가장 확실하게 정복해버린 결과를 유쾌한 놀라움과 함께 목격하게 되는 것이 루브르 궁, 아니 루브르 박물관이다."('시간의 파도로 지은 城'--김화영)라는 말을 기분 좋게 읽습니다.

덕수궁 옆의 미 대사관이 주된 이유를 제공하고 있지만, 예전에 대법원 있을 때는 삼엄한 경비를 서는 전경들이 많았고, 사거리의 중심이 되는 대법원 입구, 그러니까 정동 교회 앞은 광장 같은 곳이면서도 지나기가 껄끄러운 곳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대사관 쪽 길을 마음 편히 지나갈 수가 없고, 반전 데모가 많았던 올 봄에는 더욱 그랬습니다. 전경들이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이 다르기는 했지만 그러던 것이 많이 변모했습니다. 그야말로 자유로운 광장의 면모를 조금씩 갖추고 있습니다.

대법원의 높은 담은 없어졌고, 미술관 올라가는 길은 나무와 꽃들을 벗하며 흥겨운 마음으로 오를 수 있는 언덕길이 되었습니다. 지대가 약간 언덕진 곳에 위치하고 주변에 고층 빌딩이 둘러 싸여 있기 때문에 이곳은 일종의 소도(蘇塗) 같은 곳 같습니다. 마음에 그을려 놓은 잘못을 잠시 묵혀 놓을 수 있는 곳이라고나 할까요.

시립미술관 전면부(파사드). 1927년에 지어졌다. 일제 시대의 건축풍이 그대로 남아 있다. 아치형 창 주변에 세월의 더께가 잔뜩 묻어 있다
시립미술관 전면부(파사드). 1927년에 지어졌다. 일제 시대의 건축풍이 그대로 남아 있다. 아치형 창 주변에 세월의 더께가 잔뜩 묻어 있다 ⓒ 박태신
시립미술관의 신축된 건물은 기존 대법원 건물의 파사드(건물 전면부)만 남겨두고 신축공사를 한 것입니다. 원래는 대법원 건물 전체를 리모델링하여 사용하려고 했으나 1920년대에 지어진 건물이 워낙 노후한지라 이 같은 방식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세 개의 아치형 입구가 전면으로 튀어나와 현관을 장식하고 그 위의 네 개의 연이어진 아치 창이 일제 시대의 건축 양식을 보여 줍니다. 창 주변에 세월의 더께가 잔뜩 그을려져 있습니다.

시립미술관 내부 로비에 들어가면 개방적이고 시원하다는 느낌이 바로 듭니다. 3층의 통 구조로 되어 있어 천장까지 바로 보이고, 천장과 벽의 상당 부분이 유리로 되어 있어 햇빛을 마음껏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되도록 공간을 비어두려 애썼기 때문에 더욱 그런 느낌이 듭니다. 로비 한 가운데는 텅 비어 있고 천장까지 완전히 뚫려 있어 담백한 맛까지 듭니다.

또 위를 올려다보면 1층 천장 벽에 박혀 있는 나무 계단, 2층과 3층의 창문, 3층의 카페테리아가 보입니다. 2층과 3층의 복도도 보입니다. 전시 공간을 좀더 넓히기 위해 로비 부분을 축소할 수도 있었겠으나 그런 시도를 했다면 이와 같은 시원하고 아름다운 미술관은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살다보면 그립기도 한 '여백의 미'를 이곳에서 경험합니다. 최적의 효율성만이 최선은 아니니까요.

서양에서는 이런 통 구조의 건물들이 많습니다. 박물관은 말할 것도 없고, 박물관을 개조한 기차역, 오래된 도서관 같은 곳 말입니다. 새삼 사무실이 가득 들어서 비좁아진 건물 안에서 머무는 시간들이 많음을 실감합니다. 밖이 아닌 실내에서 자주 넓은 시야로 여백이 많은 공간을 둘러본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과의 정서 차이는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공공건물에 이런 곳이 많아졌으면 합니다.

로비 안은 하얀 궁전 같습니다. 흰색 벽이 전체를 지배합니다. 여기에 연한 갈색의 대리석 바닥과 계단, 계단과 복도 칸막이 위의 고동색 커버 등이 직선으로 그어져 은은하고 화사한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게다가 천장에서 들어오는 무채색의 햇빛이 조화를 완성합니다.

층에서 바라본 3층 유리구조물 제5전시실. 전시중이라 창 안으로 내부의 불빛이 보인다. 2층에서 찍었다. 저만치 정면의 창들은 파사드의 안쪽 풍경이다.
층에서 바라본 3층 유리구조물 제5전시실. 전시중이라 창 안으로 내부의 불빛이 보인다. 2층에서 찍었다. 저만치 정면의 창들은 파사드의 안쪽 풍경이다. ⓒ 박태신
게다가 이와 어울리게 로뎅 갤러리의 '글래스 파빌리온'의 축소판 같은, 유리 구조물이 미술관 내부의 정중앙에 위치해 있습니다. 바로 홀 중앙 위 그러니까 3층에 위치하고 천장에 박혀 있습니다. 거대한 유리 조형물 같은 곳이 사실은 하나의 전시실이었습니다. 제 5전시실입니다. 공중에 떠 있다고나 할까요. 무척 신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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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번역가이자, 산문 쓰기를 즐기는 자칭 낭만주의자입니다. ‘오마이뉴스’에 여행, 책 소개, 전시 평 등의 글을 썼습니다. 『보따니스트』 등 다섯 권의 번역서가 있고, 다음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https://brunch.co.kr/@brunoclo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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