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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서 발견한 기아자동차의 3도어 프라이드.
베를린에서 발견한 기아자동차의 3도어 프라이드. ⓒ 윤여동
직접 가서 보니 정말로 작은 차들이 많았다. 특히 3도어 차를 자주 볼 수 있었다. 차의 좌우로 문이 하나씩 그리고 뒤로 트렁크 문 하나, 이렇게 문이 3개로 보통 5개인 일반 차보다 차체가 작은 차들이다.

독일의 베를린 시내에서는 서울에서도 보기 쉽지 않은 기아 자동차의 3도어 프라이드 팝을 발견할 수 있을 정도였다. 더 작은 차들도 있었다. 티코보다도 훨씬 조그만 2인승 차가 있었다. 처음엔 모형으로 길가에 전시해 놓은 것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이 조그만 차를 그것도 뚱뚱한 사람이 몰고 다니는 것을 직접 보고 나서야 진짜 자동차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베를린 시내에서 종종 볼 수 있는 2인용 차
베를린 시내에서 종종 볼 수 있는 2인용 차 ⓒ 윤여동
흔히 독일을 자동차의 왕국이라고 하지만 내 눈에 자주 보인 건 BMW 마크를 단 고급세단이 아니라 소형차였다. 다시 서울로 돌아와 보니 오히려 독일보다도 여기에서 BMW를 더 자주 보는 것같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한국보다 유럽에 소형차가 더 많이 굴러다닌다는 사실은 주관적인 내 인상 뿐만이 아니라 객관적으로도 증명되는 사항이다. <내일신문> 기사(2003.2.11)에 따르면 경차 비율이 프랑스 39%, 이탈리아 38.8%, 일본 27.6%인데 비해 우리는 6.8% 이다. 경차 판매율은 IMF직후에 25%까지 치솟았지만 최근엔 3~4%대를 기록하고 있다.

왜 우리는 큰 차만을 고집하는 것일까? 이러한 소형차 비율의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하는 것일까? 우리가 소득 수준이 더 높아서일까? 말도 안되는 소리라는 것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일본의 경차기준이 660cc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일본인들은 우리의 소득 수준과 비교해서 정말로 작은 차를 몰고 다니는 셈이다.

그러면 유럽이나 일본은 미국과 달리 지형이 좁아 작은 차를 선호하는 것일까? 그렇게 따지면 박 터지는 서울은 마티즈도 버겁다.

큰 차를 선호하는 원인은 경제적인 것도, 지리적인 것도 아니다. 그것은 차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의 차이인 듯 하다. 대부분 유럽사람들에게 자동차는 기본적으로 운송 수단이지만 한국 사람들에게는 사회적인 지위를 과시해야는 수단으로써 의미가 더 크다.

그래서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서 차는 가능한 커야 하는 것이다. 중국은 더 하다고 한다. 동일한 모델의 차도 50cm정도 더 길게 나올 정도로 큰 차 선호 경향이 뚜렷하다고 한다. 지나친 단정일 수도 있겠지만 개발도상 단계에 있는 후진 사회일수록 차 크기에 더 집착하는 것 같다.

명품 소비문화를 다룬 <대한매일> 신년 특집호를 보면 지난친 단정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신년 특집호에서 베른하르트 쿠완트라는 독일인은 "독일에서도 1960년대 라인강의 기적을 이루면서 1인당 GNP가 1만~1만5000달러로 높아지자 그에 따른 과소비 풍조가 10년 동안 지속됐다"면서 "그같은 과도기를 겪은 뒤 사람들은 비로소 합리적이고 실리 위주의 소비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독일은 1만 달러일 때 과소비가 심했지만 우리는 1만 달러가 밑돌지만 과시형 소비로 따라 잡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차는 무조건 커야 하고 빚을 내서라도 명품을 사야만 한다. 배낭여행마저 명품쇼핑여행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한 외국인의 말마따나 한국인들은 보여주는 삶에 너무 집착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여주는 데 집착한다는 것은 자신이 없다는 열등감의 반증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처럼 내적인 자신이 없는 삶이 행복하기도 힘들다.

소비를 통해 자신을 과시하려는 것은 후진성

문제는 이러한 과시형 소비가 개인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사회 자체가 자신의 성공을 과시하도록 끊임없이 압력을 가한다. 입신양명의 유교 전통 때문에 더한지 몰라도 차의 크기에 따라 다른 대접을 받는 것은 엄연한 사회적 현실이기도 하다. 차가 작으면 그만큼 작은 인간 취급을 당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점 때문에 무리해 가면서도 큰 차를 사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차를 살 때 이점으로 고민했다.

하지만 사회를 바꾸어 나가는 것은 결국 깨어 있는 이들의 몫이다. 주변의 몰상식한 대접을 감수하면서도 합리적인 행위를 실천해 나가는 것. 이런 운동이 필요하지 않을까. 운동이 꼭 거창해야만 하는가. 합리적인 소비문화의 확산을 통해 사회를 바꾸어 나가는 것, 이것이야말로 주장만 난무한 우리 사회에서 정말로 필요한 운동이 아닌가.

환경에도 도움되고 교통소통에도 일조하고 더구나 경제 부담도 덜 수 있는데, 이런 운동이라면 해 볼 만한 것이 아닌가. 물론 여전히 차 산다는 것 자체가 버거운 분들이 있을 것이고, 이런 것쯤은 진작에 실천하고 계신 분들도 있을 테지만 말이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의 목적 중 하나는 나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소비를 통해 무리해 가면서 나를 과시하려는 것은 분명 후진사회에서 보이는 과도기 현상이다. 이것은 짧은 유럽여행을 통해 깨달은 것이다. 여전히 머리 따로 몸 따로인 면도 있지만, 아무튼 이 깨달음만으로도 비행기표 값은 번 셈이다.

여름방학을 맞아 많은 대학생들이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날 것이다. 유럽의 외형만 보지 말고 그들의 사는 모습도 보고 와서 전파시킬 것은 전파시켰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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