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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장애인 영화제의 또 다른 주인공들을 만나보았다. 영화제를 기획하는 스텝부터 뒤에서 일하는 자원 봉사자들까지 그들이 어떻게 영화제와 인연을 맺었는지 나름의 사연들을 들어보았다.

"세상은 장애인도 함께 어울려 사는 곳인데 모든 것들이 일반인들을 중심으로만 만들어 졌어요."

청각 장애인을 인터뷰 할 때면 꼭 옆에 붙어서 똘망똘망한 눈망울로 지켜보는 귀염둥이 아가씨가 있었다. 장애인 영화제 자원 봉사자 막둥이 김새미(14)양은 부모님이 전부 청각 장애인이시다.

비록 영화제에서는 막내지만 집에서는 맏이라며 부모님께 큰딸로서 제 할 도리를 못한다고 미안해한다. 연이어 막내 동생이 부모님의 말을 못 들어 유독 성장이 느린 것 같다는 어른스런 걱정과 함께.

부모님과 달리 건청인으로 태어난 김양은 부모님 대신 전화를 거는 일부터 시작해 각종 통역을 도맡아 하고 있다. 4살부터 어머님이 친구들과 수화하는 걸 곁눈질로 배웠다는 그녀는 뭐가 그리 좋은지 수화 통역 자원 봉사가 마냥 재미있다고 한다.

"남들과 다른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게 자랑스러워요! 일반인들이 못하는 수화를 제가 할 수 있다는 게 재미있고 신기해요."

김양은 가끔 극장에 가자고 어머님을 조른다고 한다. 그 때마다 번번이 어머님은 "돈 아깝다" 며 그녀의 요청을 거절했다. 이에 김양은 "한국 영화에도 자막이 붙어 엄마랑 같이 극장에서 한국 영화를 보고 싶다" 며 예의 그 똘망한 눈빛을 빛내며 당당히 바람을 밝힌다.

약간의 말을 할 수 있는 어머님과 달리 그녀의 아버님은 한 마디의 말도 못하신다. 때문에 생활을 하는 동안 아버지는 맏딸인 김양의 통역에 많은 의지를 하고 있다. 이에 아버님이 자꾸 김양에게 미안해하시고 이런 모습을 지켜보는 그녀의 마음은 더 아파 올 따름이라고 한다.

"장애인들은 일반인과 단순히 유전자 하나 차이에 지나지 않아요. 그 유전자 하나 때문에 장애인이 남들에게 무시당하고 미안해하며 살아요. 저도 처음엔 부모님이 장애인인데도 불구하고 다른 장애를 가진 분들을 이상하게 봤어요.

근데 정말 잘 못된 생각이더라구요.장애인은 그냥 유전자 하나 때문에 일반인들보다 좀 불편 할 뿐이지 일반인들과 다를 게 없다는 걸 알았으면 해요."

과연 그녀의 키가 얼마나 자라야 어머님과 손잡고 극장 나들이를 할 수 있을까. 이미 생각만큼은 수억 만년 나이를 먹은 세상보다도 더 성숙한 14살이었다.

ⓒ 김진석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말 그대로 '비' 라는 단어의 차이만 있을 뿐이죠!"

어린 시절 자원봉사하는 아버지를 따라 자연스레 청각 장애인과 만난 류혜란(20)양은 이미 준비된 예비 사회 복지사였다.

수화 노래 공연으로 작년에 영화제와 인연을 맺은 그녀는 또 한번 자원봉사자로 참여하며 인연의 끈을 이어가고 있다. 류양은 처음 수화로 대화했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얼마나 신기했는지 몰라요. 청각 장애인들과 같이 어울리면서 소리로 듣는 세계가 아닌 보는 것에 의존하는 새로운 세계를 배웠어요. 그리고 청각 장애인도 수화로 노래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죠."

보통 일반 사람들은 친구들과 수다로 혹은 술 한잔하며 서로의 애환을 달랜다. 가끔 사람이 싫을 때면 음악을 들으며 혼자만의 행복을 찾기도 한다. 이러한 기본적 욕구를 해결하지 못하는 청각장애인들을 옆에서 지켜보며 그녀는 같이 마음 아파하고 안타까워했다.

"우리는 음악을 들었을 때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가슴속에 쌓인 고민을 친구에게 다 털어 놓으며 시원함을 얻잖아요. 근데 청각 장애인들은 밖으로 풀어 내 버려야 할 응어리들이 자꾸만 가슴속에 혼자 쌓여만 가는 거예요.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하고 얼마나 답답할지 과연 상상이나 가세요?"

그녀는 한집 건너 수화를 하는 미국을 예로 들며 우리 나라도 언젠가 온 국민이 수화를 할 수 있게 되는 꿈을 꿔본 적이 있다고 한다. 현재 한국에 수화를 하는 사람이 너무 부족하다고 걱정하는 류양은 아주 잠깐 유행처럼 대학가에 번진 수화 열풍을 못내 아쉬워했다.

서울농아인협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여타 장애인 모임에 정기적으로 참여하는 등 장애인 복지법에 지대한 관심이 있노라 밝힌 그녀는 장애인을 '개성인' 이라 부른다.

"장애인이라고 사람을 따로 구분지어 버리는 분류가 참 못 마땅해요. 장애인들 모임에 나가면 오히려 일반적인 제가 더 비정상인이 되요. 결국 상대적인 거죠. 장애인들은 단지 우리와 남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는 것뿐이예요."

우리는 곧 앞으로 뚝심있고 건실한 장애인 사회복지사 한 명을 만날지도 모른다. 그녀의 귀추가 기대된다.

ⓒ 김진석
"수화는 사람이 사랑을 나눌 때 나는 행복한 소리"

멀쩡한 직업이 있는 화학공학 연구원이 안정된 삶의 궤도를 박차고 뛰쳐나왔다. 군 제대를 거쳐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인으로의 진입을 밟아가던 중 불현듯 고등학교 시절 아련한 꿈이 떠올랐다.

주위의 갖은 만류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직장에서는 얻을 수 없는 나름의 보람과 행복을 찾아 과감히 일상을 던져버린 수화통역사 김종경(31)씨.

고등학교 시절 우연히 자원봉사를 다니다 청각 장애 어린이를 만났다. 고작 세 살배기인 어린아이가 웃지도 놀지도 않고 세상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것에 김씨의 마음이 동했다. 그 때부터 김씨는 독학으로 수화를 공부하며 어린아이에게 수화를 가르쳤다.

뜻하지 않은 기묘한 인연으로 그렇게 김씨는 막연하게 '특수교육교사' 를 꿈꾸게 되었다. 비록 교사는 아니지만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그는 학창 시절 희미하기만 했던 꿈을 당당히 움켜잡아 올곧게 형태를 만들어 가고 있다.

"수화 통역사는 단순히 말만 전달하는 게 아니에요. 한 사람의 인격을 걸러주고 비춰주는 창문입니다. 청각 장애인에 대한 기본적인 애정이나 존중이 없으면 아무리 수화 통역을 잘 해도 청각 장애인들에게 인정받을 수 없어요.

우리는 청각 장애인들에게 제일 먼저 세상을 보여주는 창문입니다. 자칫 창문이 뿌해지면 청각 장애인들이 가장 먼저 상처를 받죠. 때문에 청각 장애인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자 가장 믿지 못하는 사람이 통역사이기도 해요."

아이러니 했다. 일을 하는데 있어 서로의 '불신' 이 가장 큰 고민이라는 김씨는 청각 장애인이 통역사와 사회를 못 미더워하는 것만큼 사회 또한 장애인을 믿지 않는다며 연방 씁쓸해 했다.

"장애인들 스스로가 자기 힘으로 당당히 자신의 권리를 되찾아야 해요. 그건 아무리 도와주고 싶어도 제가 대신 할 수 없는 부분이고 또 저한테는 그럴 권리가 없어요.

장애인들이 가장 상처를 받는 것 중 하나가 같은 권리나 욕구를 가진 사람으로 보지 않는 사회의 시선이에요. 그런 상처들로 인해 끝까지 싸우지 않고 도중에 포기하는 사람들을 볼 때 저로선 해 줄 수 있는 게 없어 참 답답하고 안타까워요."

'장애인이든 비 장애인이든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자신이 꿈꾸며 희망하는 것들을 말하고 표현 할 수 있는 세상' 이 바로 다름아닌 그의 소원이다. 막연했던 꿈을 현실로 이뤄냈던 것만큼 김씨의 소원도 그저 단순한 소원으로만 그치지 않기를.

ⓒ 김진석
"앞으로의 지향점이요? 장애인 영화제가 없어지는 거요."

제2회 장애인 영화제부터 홍보를 도맡아 하고 있는 박명희(31)씨는 '장애인들이 영화 관람을 요청할 때' 와 '관람 후 장애인들이 웃고 나올 때' 일의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바람이 불면 자칫 날아가 버릴 것처럼 한없이 가녀려 보인 그녀지만, 외유내강인 듯 아무리 생각해도 딱히 힘들었던 점이 없노라 고개를 젓는다.

"지금은 그런 생각을 안 하지만 처음에 잘 모를 땐 내가 무언가 도움을 준다는 생각으로 일을 했어요. 근데 오히려 지금은 스스로 공부를 더하고 배우면서 제가 오히려 더 많은 도움을 받아요.

장애인분들도 우리와 별반 다를 게 없어요. 나쁜 사람이 있으면 좋은 사람도 있고 고집이 센 사람이 있으면 없는 사람도 있고 그저 똑같아요."

영화제를 준비하면서 고민이 되는 것이 있는 즉, 다름 아닌 일반인과의 통합성 혹은 영화제의 대중화 문제이다. "일반인들이 다 본 유명한 한국 영화를 장애인을 위해 뒤늦게 상영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뜸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며 우려를 표하는 그녀는 영화제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이 이만 저만이 아닌 듯 싶었다.

일반인들을 끌어 모으려면 주말에 극장을 빌려 평소에 볼 수 없었던 특색있는 영화들을 상영해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유명한 한국 영화를 놓친 장애인들이 소외돼 버린다. 게다가 토요일에 극장을 구하는 일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이나 힘들다. 은근 슬쩍 장애인 영화제 미래에 대해 심중을 떠봤다.

"앞으로 이런 장애인 영화제가 없어져야 하지 않겠나요? 장애인이 누구나 극장에 다니면서 원하는 영화를 아무거나 볼 수 있다면 굳이 지금처럼 지나간 유명 한국 영화를 상영해야 할 이유가 없죠. 그리고 하루 빨리 그렇게 되야 하지 않을 까요?"

반론의 여지가 없는 완벽한 대답이었다.

ⓒ 김진석
"저라고 판사하지 말라는 법 있습니까?"

"지금은 수화가 필요 없습니다" 라고 당당히 밝히며 들을 때만 통역을 통해 듣고 대답 할 때는 또박또박 말을 하는 영화제 기획팀 스텝 윤정기(37)씨는 살면서 일반인들을 접해야 하기 때문에 일부러 말 대답을 고집한다.

7년간의 만학을 마치고 올해 8월 경희대 법학과를 졸업하는 그는 전화 한 번 걸어 보는 게 소원이라고 한다. 얼마 전 윤씨는 졸업을 위한 TEPS 시험을 봤는데 듣기 평가 때문에 시험 점수가 너무 안 좋았다며 청각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전무한 TEPS 시험제도에 진한 안타까움을 표했다.

뒤늦게 대학에 들어가 안들리는 귀로 법학을 공부하며 정말 힘들었노라 담담히 고백하는 윤씨는 몇 번씩이나 주저 앉고 싶었는지 모른다며 그간의 고됨을 털어 놓았다.

"지금 포기하면 법대에 안 들어 온 것만도 못하다고 생각을 했어요. 나라고 판사 못합니까? 저도 남들처럼 당당히 직업을 갖고 싶을 뿐입니다. 뒤늦게 법 공부하면서 정말 도중에 몇 번씩 주저 앉았습니다. 하지만 내 자신을 이겨야 이 사회에서 청각 장애인으로 당당히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은 강인하고 올 굳게 성장한 그였지만 자신에게도 사춘기가 있었고 정말 많은 방황과 고난의 시간을 흘러 보냈노라 조용히 읊조렸다. 그가 가장 싫어하는 건 장애인을 불쌍한 사람 혹은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으로 묘사하는 사회의 시선이라고 한다.

"우리도 똑같은 대한민국의 한 사람으로 모든 분야에 함께 존중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나중에 판사가 되면 꼭 '장애인 차별 금지법' 을 만들 것입니다. 전 있는 그대로의 지금 제 모습을 만족하고 사랑합니다."

앞으로 법학과 대학원 석박사 과정을 준비 중 이라는 윤씨는 "자신만 열심히 하면 세상에 안 될 것이 없다" 며 그 누구보다도 강인한 삶의 의지를 지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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