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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사 석불이 배반평야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보리사 석불이 배반평야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 이종원
들어가는 말

경주야말로 갈 곳이 너무 많아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지 고민에 빠진답니다. 이번 경주행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남산으로 향했습니다. 제 딸과 단 둘이서 걸었습니다.

우선 남산은 지붕 없는 박물관입니다. 수백 개의 유물들이 천년을 그 자리를 지켰고, 오늘도 자연과 호흡하며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불국사 석굴암처럼 사람에 치이지 않고 조용히 신라의 향기를 음미할 수 있기 때문에 주저 없이 남산을 선택했습니다.

남산에도 여러 유물이 있지만 저는 탑골을 찾았습니다. 천년전 신라인의 얼굴을 마음속에 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남천

보리사에 가려면 남산을 부드럽게 감싸 안으며 흐르는 남천을 건너가야 합니다. 남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신라 땅을 적시는 생명수라고 불러도 좋을 듯 합니다.

경주에는 괴상한 풍경이 8개가 있는데 그걸 '신라 팔괴'라고 합니다. 남천 역시 그 중 하나랍니다. 남천의 모래가 하도 부드러워 물은 아래로 흘러가지만 모레는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처럼 보인다고 합니다. 그걸 보여주려는 듯 강은 하얀 속내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 황새가 하늘하늘 거닐고 있어요. 남산의 진면목도 보기도 전에 벌써부터 탄복해봅니다.

보리사

보리사 가는 길은 참 예뻐요. 옹기종기 모여 있는 갯마을에 들어서면 집집마다 소담스런 꽃들이 담장 너머로 손짓을 하고 있답니다.

" 아빠 저 꽃 이름이 뭐야?"

이럴 때 참 난감합니다. 다음부터 꽃 이름 공부를 해야겠어요.

마을을 가로지르면 보리사 오르는 언덕이 나옵니다. 참 예쁜 길이지요 .대숲이 내는 소리만으로 더위가 가십니다. 오를수록 드러나는 경주의 들녁이 뜨거운 가슴을 식혀줍니다.

"아빠. 쉬 마려워. 급하단 말이야."

잘못 조절하여 오줌이 그만 제 옷을 적시고 말았답니다. 물가에 가서 닦아내며 부녀는 한 바탕 웃음보를 터뜨립니다.

보리사 석불좌상
보리사 석불좌상 ⓒ 이종원
보리사 석불좌상 (보물 136호)

처음 보는 순간 느낌이 '참으로 잘생긴 부처다.'아마 미남부처님 선발대회가 있으면 등수 안에 들 수 있을 거야'라는 것이었습니다. 두 눈을 지긋이 내려 감고 서라벌의 중심지인 배반평야를 바로 보고 있습니다. 귀는 하도 길어 어깨에 닿을 듯하고 큼직한 육계는 위엄을 말해줍니다.

수인과 얼굴 모습이 마치 석굴암의 본존상을 보는 듯합니다. 혹시 무슨 연관이 있지 않을까요? 보리사에서 한번 연습하고 석굴암에 가서 본 실력을 발휘하지는 않았나 상상해봅니다.

석불만큼이나 감동을 주는 부분이 부처님 뒤에 모신 광배랍니다.

여섯 송이의 연꽃으로 장식된 두 줄기의 주연선으로 불상 몸체를 둘러 신광을 만들었고, 또 5송이의 연꽃을 두 줄기의 주연선으로 이어 두광을 만들어냈습니다. 연꽃 사이사이에 작은 화불이 계시고 바깥에는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렇게 꿈틀거릴 정도로 정성이 담긴 광배가 또 있을라구요. 아마 남아있는 돌 광배로는 최고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연꽃잎으로 둘러싸여 있는 좌불대도 참 아름답습니다. 부처님의 자비 하나 하나가 연꽃잎으로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석불 뒷면에는 약사여래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보리사 마애여래좌상
보리사 마애여래좌상 ⓒ 이종원
보리사 마애여래좌상

산 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마애 여래좌상이 나옵니다. 샌들을 신고 올라갔는데 발이 미끄러워 얼마나 엉덩방아를 찧었는지 모릅니다. 정수가 어찌나 웃어대는지, 아빠 체면 많이 구겼어요.

떨어지는 땀방울을 훔치며 조그만 바위에 살며시 숨어 있는 여래상을 발견했습니다. 통통한 볼에는 잔잔한 미소가 흐릅니다. 비스듬한 경사면 때문에 그나마 덜 훼손된 것을 감사하게 여깁니다. 비가와도 비에 젖지 않게 되어 있지요.

마애불의 조형미보다 더욱 저를 사로잡은 것은 이곳에서 바라본 시원한 경치랍니다. 저 멀리 경주의 들녘이 한 눈에 펼쳐집니다. 선덕여왕이 누워있는 낭산이 보이고 사천왕사, 망덕사, 황룡사지 등 신라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바라보고 계십니다. 기쁜 모습만 보았겠습니까? 황룡사 구층목탑이 불타는 날, 부처님은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을 겁니다.

탑골 부처바위

갯마을을 벗어나 남천을 따라 더 깊숙이 들어가면 탑골이 나옵니다. 동네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여기 부처님 많이 모여 있는 곳이 어디 있니?"

서로 가르쳐 주려고 안달이 났습니다. 아이들이지만 풋풋한 인심을 느껴봅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가리키는 방향이 서로 달라요. 그만큼 남산엔 부처가 많답니다.

"네 군데 바위에 부처님이 무진장 많은 곳인데 거기엔 탑이 있거든" 그제서야 제가 원하는 곳을 알았나봅니다.

동시에 손가락을 가리키며 "저 짝입니더‥"라고 말한다.

북면에는 구층탑과 오층탑이 보인다.
북면에는 구층탑과 오층탑이 보인다. ⓒ 이종원
부처바위 북면

북면입니다. 처음 만나는 순간 범상치 않음을 느꼈습니다. 불상이 먼저 보일 줄 알았는데, 쭉쭉 뻗은 탑이 먼저 눈에 들어왔으니까요.

그것도 9층탑 '아! 황룡사 9층탑은 이런 모양을 하고 있었구나' 그저 감개무량합니다. 작년인가요? 거대한 황룡사지 주춧돌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탑을 상상해 보았지요. '과연 어떤 모습이 신라의 하늘을 수놓았을까?' 그리고 이제 그 아름다운 모습을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추녀마다 풍경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상륜부도 탑의 교과서에서 보여주듯 완벽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이곳에 천상세계임을 말해주듯 비천상이 날고 있습니다.

부처바위 동면..가장 많은 조각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부처바위 동면..가장 많은 조각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 이종원
부처바위 동면

동면입니다. 부처바위에서 가장 화려하고 가장 조형물이 많은 곳이지요. 무려 13구의 불상과 보살님이 계십니다. 본존불 옆에 계신 불상은 두 손을 모아 가슴 앞에서 합장하고 고개까지 90도로 옆으로 돌려 생동감이 느껴집니다. 하늘 위에는 비천상이 6분이나 날고 있고, 가릉빈가까지 천상을 수놓고 있습니다.

또 다른 바위에는 보리수밑에서 결가부좌로 앉아 명상에 빠져 있는 스님의 모습이 이채롭습니다. 천상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것 같습니다. 얼굴 하나 하나가 천년전 신라인의 모습임을 생각하니 가슴이 저려옵니다. 귀족의 얼굴이 아니라 민초의 얼굴이며 그들의 소박한 염원과 삶의 모습을 느껴봅니다.

탑골삼층석탑
탑골삼층석탑 ⓒ 이종원
탑골삼층석탑

남면 바위위에 탑골3층석탑이 서있습니다. 바위 가장 위쪽에 자리잡고 있어 밑에서도 한 눈에 보입니다. 이 탑 때문에 이 곳이 탑골이라고 불렸나봐요. 역시 바위를 지대석으로 삼고 있어 남산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몸돌의 비례감으로 볼 때 고려초기의 탑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입체감이 살아있는  남면
입체감이 살아있는 남면 ⓒ 이종원
부처바위 남면

왼쪽의 입체 여래입상 덕에 자칫 지루할지 모를 마애불 바위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즉 이차원의 예술을 삼차원으로 승화시켰다고 볼 수 있지요. 얼굴은 마멸되어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입 모양을 봐서는 활짝 웃는 모습일 겁니다. 어깨가 넓고 가슴이 부풀어 올랐습니다. 잘록한 허리가 무척이나 부럽습니다. 아마 신라시대 입상의 특징인가봐요. 굴불사면 석불도 저렇게 잘록한 허리를 가지고 있거든요. 입고 있는 가사 주름이 온 몸을 휘감습니다.

오른쪽 바위에 삼존불이 보이지요. 삼존불을 모실 때 보통 두 협시보살은 서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곳은 세분이 모두 앉아 계십니다. 왼쪽 보살은 아마 형님일겁니다. 본존불처럼 의젓하게 앉아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오른쪽 보살은 몸을 본존불 쪽으로 살짝 기대어 응석을 부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신라 불상의 참 맛이 아닐까요? 힘없는 민초의 심성을 가장 잘 드러낸 작품이 아닐까요? 만약 세 분이 똑같은 포즈로 앉아 있으면 얼마나 지루했겠습니까? 이 작은 변화로 말미암아 돌이지만 전체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겁니다.

저건 모습은 운주사 천불에서도 본 적이 있답니다. 부처님께 의지하고 싶은데 엄숙한 종속의 관계가 아니라 그저 형님같이 나누고픈 심성이 드러난 거지요.

서쪽면은 가장 면적이 좁아 부처님 한 분과 비천상 하나만 새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이 능수버들 사이에 계십니다. 인도에 버드나무가 있겠습니까? 바로 이 땅에 부처님이 계시다는 것을 신라인은 말하고 싶었던 겁니다.

부처바위는 높이가 9미터, 둘레가 30미터나 되는 거대한 바위랍니다. 탑이 있고 불상이 있고, 승려가 있고 비천상, 사자상, 나무 등등 무려 30점이 넘습니다. 가히 '불교문화의 종합선물 세트'라고 불러도 좋습니다. 불국정토가 얼마나 화려한지 그리고 경주가 얼마나 소중한 불국토인지 신라인들은 보여준 것입니다.

'아! 탑골 부처바위' 꽤 오랜 시간을 바라보았습니다. 저도 돌 조각이 되어 느티나무 밑에서, 보리수 밑에서 부처님을 뵈었습니다. 오랫동안 이곳에 머물고 싶습니다. 천상의 세계를 놔두고 잔인한 속세로 들어간다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지요.

"선을 많이 베풀라. 나중에 이 곳에서 다시 만나자" 라는 메시지가 가슴속에 울리고 나서야 탑골을 빠져 나올 수 있었습니다.

한 여인이 돌 속에 숨어 있다.
한 여인이 돌 속에 숨어 있다. ⓒ 이종원
부처골 감실석불좌상 (보물 198호)

다시 강을 따라 올라가면 승마장이 나옵니다. 그 옆 송림사이에 넓은 공터가 나오지요. 현지인에게 물어 물어 간신히 오르는 길을 찾았습니다. 산에 오릅니다. 어렸을 때 시골 동산에 올라가는 느낌이네요. 예전에 화랑들이 오르락거렸던 길이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합니다. 10여분 정도 올랐을까요. 오른쪽에 큰 바위가 하나 보입니다. 그 속에서 부처님이 앉아 천년의 미소를 제게 던져 주고 있어요.

제 딸 정수에게 물었습니다.

"저기 숨어 있는 사람이 누구 같니?" 한참을 고민합니다. 아무래도 안되겠습니다. 객관식으로 내야겠어요.

"할머니, 아줌마, 언니?"
정수가 피식 웃으며 "수녀님이잖아"라고 합니다.

얼마나 멋진 답변입니까? 천년 전의 부처님 모습이 가톨릭의 수녀님 모습을 하고 있으니, 이런 맑은 시선 때문에 딸과 하는 여행이 그저 신이 납니다.

아름다운 미소를 지닌 감실부처
아름다운 미소를 지닌 감실부처 ⓒ 이종원
기계가 있겠습니까? 오로지 정 하나에 의지해서 감실을 만들었을 겁니다. 그 공력만 보더라도 대단한데…. 그 안에 실수 없이 부처님을 깎아 모셨다는 것이 그저 신기할 따름입니다.

초생달같은 눈썹, 부풀어오르는 눈시울에 새악시 같은 수줍은 미소를 보내며 명상에 빠져 있는 듯 합니다. 얼굴은 둥글고 부드러운 곡면으로 처리되어 따사로움이 돌을 통해 전해집니다. 어머님 가슴 같은 포근함이 천년을 이었습니다. 비단 신라인의 얼굴만은 아닐 겁니다. 고려 때도 조선 때도 이 미소는 지켜왔고 , 그 곡선미는 오늘날 우리 삶의 전반에 뿌리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불상은 6세기말이나 7세기초로 추정한다고 합니다. 팔짱을 끼고 있는 손가짐과 대좌를 덮고 있는 옷자락이 그걸 증명해주고 있지요. 해가 움직일 때마다 움직이는 그림자와 그에 따른 미소의 변화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다음엔 꼭 그걸 보려고 벌써부터 벼르고 있습니다.

이성복 시인의 '남해금산'에 나온 싯구가 갑자기 떠오릅니다.

"한 여자 돌 속에 묻혀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그저 남산이 좋아서 남산에 몰입했죠"
남산을 지키는 사람들...남산연구소 김구석소장

▲ 남산연구소 김구석 소장
남산을 가꾸고 사랑하는 시민 모임이 있다고 해서 무턱대고 경주 시내에 있는 남산연구소를 찾았습니다. 다행히 김구석 소장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김구석 소장은 그저 남산이 좋아서 공직도 그만두고 남산에 몰입했다고 합니다. 그는 87년 남산사랑모임의 시민단체에서 출발하여 99년에 남산연구소를 설립했지요. 지금은 노천박물관인 남산유적을 연구하고 , 그 자료를 전산화하고, 남산을 홍보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자체 교육을 통해 문화해설사를 양성하고 일반인들에게 남산을 소개하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6/22부터 8/10까지 매주 일요일 전문가를 모시고 남산 유적답사 행사를 주관합니다. 워낙 인기가 있어 전부 마감되었다고 하네요. 추후 정례화를 시킬 예정이랍니다.

남산연구소는 자체적으로 남산 지도를 만들어 시민에게 배포하고 있어요. 유물에 이름표 하나 다는 것도 훼손이라고 생각했기에 차라리 정확한 지도를 만드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는 군요.

김 소장은 "앞으로 할 일이 많습니다. 150명의 회비로 운영하는데 솔직히 부족하지요. 관심 있는 분들의 도움을 바라고 있어요. 우리 문화를 사랑하는 기업의 도움이 있으면 참 좋겠는데... "라고 말합니다.

김 소장에 따르면 작고하신 향토사학자 윤경렬님의 '겨레의 땅 부처님의 땅' 이라는 책이 가장 남산을 잘 소개한 책이랍니다. 그곳의 사진은 거의 김구석 소장의 작품이랍니다.

남산연구소 홈페이지 : http://www.kjnamsan.org (남산에 관한 자료가 가득 들어 있습니다.) / 이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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