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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대면 물감이 뚝뚝 묻어 나올 것만 같은 고흐의 그림을 보고있노라면, 고흐라는 사람은 물감의 화학성분의 냄새가 짙게 배어 나오는, 어딘가, 어두운 다락방의 이미지를 갖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나에게 '반 고흐, 영혼의 편지'라는 일종의 초대장이 날라 왔고, 나는 주저없이 8,500원의 입장료를 내고 고흐의 '다락방'의 문을 슬그머니 열었다.

왠지 나의 풍경과는 어색한 고흐의 편지를 읽는다는 것은 쑥스러움마저 느끼게 했다. 아마도 시대가 다른 한 사람의 일대기가 아닌 편지를 읽는다는 것이 일기를 훔쳐보는 것 이상의 것들을 보여 주기 때문일 것이다.

사촌 동생 테오와 친구 고갱에게 쓴 편지, 편지들을 읽으며 나는 첫 번째로 고흐의 신념과 확신을 볼 수 있었다. '그래, 뭐가 될 사람은 뭐가 다르긴 다르군.' 고흐는 자신의 그림에 대한 소신과 확신을 자주 편지에 썼다. 너무도 자신있는 고흐의 필적에 약간의 거북함이 팔뚝의 하얀 각질처럼 일긴 하였지만, 나는 그것이 곧 자기암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슬픔>. 고흐의 습작화중에 <슬픔>이란 그림이 있는데, 그 그림에는 고개까지 푹 숙인 채 쪼그려 앉아 있는 한 여인이 나체로 표현되어 있다(여기서 성적자극을 받는 사람이 있다면 그 그림을 보여 주지 못함에 유감을 표한다. 그 그림을 보면 생각이 바뀔 테니 말이다). '아무 것도 입지 않음'은 고흐 자신의 순수한 열정을 의미하는 듯 했다.

하지만 경제적 여건과 자신의 소망에 대한 자신감에 미치지 못함은 잿빛 데생 안에 슬픔으로 갇히고 마는 그래서 고흐는 실로 자기 그림에 대한 자신감은 있더라도 한 편에서 꾸물거리는 '실패'라는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스스로 자신의 그림을 높이고 그것을 자신이 믿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써 알림으로서 책임감을 가중시켜 더욱 열심히 그림 그리는 데에 열중하는 것이다.

자기암시.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어쩌면 요즘의 '나'의 모습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나 또한 자기암시로서 유월의 여름을 함께 했던 것. 하지만, 고흐도 자기암시를 했었을 거라고 믿는 한가지 이유는 작가도 글로써 자신의 심리를 표출하듯 화가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슬프지 않다면 어째서 슬픔을 그리랴?

그렇게 나는 고흐의 짙은 다락방안으로 점점 깊이 파고 들어갔다. 그리고 고흐의 조금은 지나치게 당당한 점에 빠져듬을 느낄 수 있었다. 힘든 이 세상에서(이제 열 여덟이지만 게으름으로든 뭐든 세상은 힘들다) 열심히 사는 원동력에 주술을 부여한다면 무엇이든 할 수있다는 '자신감'이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생각한다.

'온 우주는 나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저네들이 이상한 것이다.'라고. 이런 나의 생각은 무조건 얼토당토하기만 한 것일까?

순간 '풋'하고 웃음이 나온다. '이러다 혹시 나도 가슴에 총탄을 쏘지 않을까?'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면서 고흐의 죽음을 그려본다. 그가 간질병이었다는 것을. 발작이 일어나면 물감튜브를 입에 짜서 진정을 시켰다는 고흐. 고흐…. '모든 것을 끝내고 싶다'는 그의 말은 가슴에 구멍을 내어 여태껏 고흐의 가슴속 무거운 집념과 책임감들을 흘러 내버렸다. 그리고 그제서야 '그림을 통해서만 말할 수 있는 사람' 고흐가 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고흐의 여러 편지들 중에서 마지막 몇 장의 편지를 남겨 둔 어느 편지에는 지금도 두근대는 '말'이 하나 있다.
"가장 평화로운 죽음은 별까지 걸어가는 것이다."

고흐의 죽음은 <슬픔>과도 비슷했다고 본다. 자살이 별까지 걸어가는 행위는 아닐 테니까. 만약 자살이 평화로운 죽음이라면 모든 사람이 아니더라도 나는 분명 자살을 시도했을 것이다. 비록 고흐는 별까지 걸어가는 그런 류의 죽음을 맞이하진 않았지만, 분명 그는 평화로운 죽음을 택한 것이다.

그의 한마디, 그의 초상화, 그의 그림, 그의 편지를 다시 고이 접어 두고 다락방을 나올 때, 등뒤에서 느껴지는 따스함은 분명 그 곳을 들어갈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케케한 물감냄새들이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 속 물감처럼 따스하게 변해버린 것 같다고나 할까. 가슴에 별같은 슬픔을 간직하고 있던 고흐. 나는 그 별을 꺼내고 하늘에 날려보내어 다시금 그 별까지 걸어가는, 가장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하고 싶어진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스페셜 에디션, 양장)

빈센트 반 고흐 지음, 신성림 옮김, 예담(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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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일본오사카에서 산지 6년이 되었습니다. 유학, 아르바이트, 직장생활, 20대후반이 되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많습니다. 열심히 달려온 것 같은데, 아직은 아무것도 이루어진것이 없는 모습인것같아 좌절감도 듭니다. 그래도 다시 일어서야지 하는 마음으로, 오랜만에 오마이뉴스에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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