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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Being(1994)
ⓒ kpopdb.com
'신해철'에 대해 언급할라치면 사람들의 반응은 대부분 둘 중 하나이다. "재수없다"와 그 외의 반응. 아마도 그의 이미지가 꽤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 또한 Home앨범의 'Turn off the TV'에 담긴 영어 '랩'을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좀 오버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또한 최근 그의 프로젝트 밴드 비트겐슈타인이 나왔을때도 '정말 여러가지 하는 군'이라는 생각까지 했었다. 그러니 '재수없다'는 사람들의 기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신해철의 디스코그래피를 보면 그를 가요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하나로 꼽는 것에 대해 반기를 들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기서 소개할 넥스트의 앨범 'The Being'은 특히 유례가 없는 시도로 보여진다.

신해철이 넥스트의 이름으로 처음 발표한 앨범은 'Home(1992)'이었다. 사실 이 앨범은 가요와 록이 혼재된 독특한 앨범이었는데 이후의 음악보다는 솔로 2집이었던 'Myself(1991)' 쪽에 가까운 감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는 밴드를 구성해서 록을 연주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다.

당시 '서태지와 아이들'로 대표되는 수많은 댄스 가수들이 휘젓고 다니던 분위기를 생각하면 무한궤도와 솔로 활동으로 나름대로 아이돌로서 자리 잡아가던 그의 밴드 결성은 사실상 모험이었다. 몇몇 연주곡들과 소소한 실험적 연주가 담겨있는 이 앨범은 개인과 가족과의 관계를 묻는 내용이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컨셉트 앨범이기도 했다.

기타가 바뀌고 드러머가 베이스로 옮기는 등 4인조로 재정비한 뒤에 나온 이 앨범 'The Being(1994)'은 전작에 비하면 '단절'에 가까운 변화를 보여준 앨범이다. 철저하게 록을 지향하고 있으며 외국의 여러 록 스타일을 모방했지만 그것을 창조적으로 수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작곡과 연주에 있어서 그 복잡도와 정교함이 훨씬 좋아졌으며 앨범의 컨셉트 자체도 전작에 비해 월등히 일관성을 얻어내고 있다.

첫 트랙 'The Return of the N.EX.T'의 인트로는 '아 절정 오버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만큼 낮게 깔린 영어 가사와 요란한 신시사이저 연주가 담겼있었다. 사실 '존재란 무엇인가 묻겠다'라는 오만한 가사와 꽉 잡는 분위기를 이제는 신해철의 개성이라고 생각해도 좋겠지만 역시나 어색하다.

'껍질의 파괴'(The Destruction of the Shell)는 이 앨범의 '존재의 이유'라 부를만한 곡이다. 세 부분으로 나뉘어진 조곡인 이 곳은 드라마틱한 구성을 가지고 있는 본격 프로그레시브 메탈이기 때문이다.

첫 파트 'Overture'에서부터 달리는 연주는 당시 드림 씨어터 (DreamTheater)나 섀도우 갤러리(ShadowGallery) 등을 연상시키는 분위기이긴 하지만 그들에 비해 결코 밀린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두번째 부분인 'The Shell'에서 가사를 전달하는 신해철의 음역은 그 저음가수의 보컬이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을 정도로 다이내믹하게 들린다. 물론 여러 이펙트를 사용한 것도 있겠지만 그는 보컬로서의 정체성을 확보하려면 저음 발라드 가수로는 안되겠다는 자각을 한 듯 하다. 신해철의 강점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세라고 할 수 있으며 그런 움직임은 이후 계속된다.

마지막 부분인 'The Joy of Destruction'에서 들려주는 폭발적인 연주와 힘있는 남성코러스는 이 곡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데 임창수의 기타 솔로와 그 뒤를 받쳐주는 신해철의 키보드 사운드는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유례가 없는 심포닉한 연주이다. 이 정도 사운드를 만들어냈으니 외국의 음악 애호가들이 넥스트를 프로그레시브 록의 범주에 넣고 넥스트의 음반을 찾아다니는 것은 당연하다.

'이중인격자'는 국내 히트곡인데 사실 이런 메탈이 꽤 인기를 얻고 사람들이 노래방에서 부르곤 했다는 것은 아직도 록이 찬밥신세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었다. 게다가 매우 고음역의 날카로운 곡인데 말이다.

메가데스Megadeth의 데이브 머스테인과 비슷한 이죽거리는 보컬을 들려주고 있으며 신시사이저 연주는 ELP를 연상시키고 있고 기타솔로는 멜로딕 메탈적이니 확실히 모방뿐이냐고 몰아붙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신해철의 음악적 행보는 대체로 중도좌파적(?)이라고 할 수 있었으며 그것은 기존의 장점을 잃지않고 조금씩 변화하려는 모습을 말하는 것이다. 모방을 잘 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라는 것은 분명하며 그는 이런 점에서 분명 훌륭한 모방자이다.

'The Dreamer'는 그의 예전 모습을 생각나게 하는 발라드 곡인데 이런 곡들을 넣는 것은 역시 안전지향적인 모습이라고 해도 좋겠다. 하지만 역시 밴드로서의 연주가 담겨있는 록발라드로 녹음했다. 한국의 발라드 문화는 록음악에서도 록발라드만이 대박을 터뜨리는 엽기적 현상을 만들지 않았던가!

뒷면은 또 다른 히트곡인 '날아라 병아리'로 시작한다. 닭살돋는 발라드 곡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런 식으로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죽음에 대해 고민하는 노래를 당시 들을 수 있었는가를 생각해보면 작사가로서의 신해철 역시 우리는 인정해야 할 것이다. 김민기의 '백구'를 떠올리게 하는 가사다.

'나는 남들과 다르다'는 펑키한 리듬에 브라스, 메틀릭한 기타리프, 댄스그룹들이 잘 써먹던 스타일의 코러스 등이 뒤섞인 재미있는 곡이다. 스타일의 혼합이라는 것은 신해철이 지속적으로 추구해온 것으로 아마 그 대표적인 곡은 신해철이 참여한 OST '바람부는 날에는 압구정동에 가야한다'(1993)와 다음 앨범 'The World'에 실린 '코메리칸 블루스'일 것이다. 두가지 버전을 비교해 들어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생명생산'(Life Manufacturing)은 SF영화의 사운드트랙이나 장 미셸 자르(JeanMichelJarre)의 곡들을 연상케하는 신시사이저 연주곡으로 지금까지 꾸준히 영화음악 작업에 관심을 가져온 신해철의 개성적인 연주이다.

'불멸에 관하여(The Ocean)'는 70년대 영국의 심포닉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들의 연주를 연상케하는 신시사이저 연주가 곡 전체를 채우는 곡이다. 비교적 서정적이면서도 웅장한 연주는 앞면의 '껍질의 파괴'와 비슷하면서도 '껍질의 파괴'가 청년적 분위기의 질주하는 곡이었다면 이 곡은 철저하게 소년적인 느낌으로 내면에 대한 다짐을 하고 있다.

이렇게 훌륭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사실 이 앨범의 요란한 부클릿을 들여다보면 어이없는 이미지 메이킹에 가슴이 아플뿐이다. 그래도 이건 다음 앨범인 'The World'(1996)에 비하면 양반이니 조금 참아주기로 하자. 그 스타일의 조악성이 문제인 것이지 당시 앨범을 색다르게 꾸며봐야겠다는 생각을 한 음악인들도 거의 없었으니 넥스트는 이 부분에서 나름대로 신경을 쓴 것이다.

앨범은 음악을 담는 도구일 뿐 아니라 음반 자체를 표현하는 종합 예술적인 매체로 이해하려는 시도는 아직도 우리에게서 찾아보기 힘드니 슬픈 일이다. mp3의 시대에서 음반이 음반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제 외형에도 신경을 써서 소장 자체가 의미있게끔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

넥스트의 훌륭한 점은 괜찮은 록 앨범을 만들었다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들은 그런 음반을 내놓고 대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에 더욱 훌륭한 것이다. 자의든 타의든 그들은 나름대로 록의 부흥(?)을 이끌 책임을 지게 되었다. 이로인해 그들은 해체할 때까지 수많은 라이브를 했으며 라이브 앨범을 세 종류나 내놓을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했다.

한국 대중음악계는 어떻게든 이 분위기를 살렸어야 했지만 음악의 미성숙 때문인지 그들의 해체 이후 또 단절되고 말았다. 걸출한 프로그레시브 메탈 밴드인 예레미가 나타나긴 했지만 그들은 사실상 넥스트와는 독자적으로 나타난 것이며 마이너로 남아있다.

여전히 록과 헤비 사운드를 구사하는 그룹들은 주류 음악계에서 찬밥이다. 넥스트 해체 후 신해철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은 헤비 사운드를 구사하는 노바소닉을 만들었고, 신해철 역시 개인적으로 록 앨범들을 만들어갔지만 신해철과 노바소닉의 음악적 성취를 합쳐봐도 넥스트 시절의 아우라에 견주기는 어렵다.

넥스트는 신해철 개인의 카리스마도 있었겠지만 그것 말고도 합주를 하는 밴드만이 들려줄 수 있는 앙상블을 만들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환상적인 조합을 다시 만들어보려는 듯 신해철은 자신의 최근 프로젝트 비트겐슈타인을 접고 넥스트를 재결성하며 공연을 시작했다.

아직 앨범을 내놓지 않아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넥스트의 재등장이 가요계의 다양성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는 라디오에서 여전히 '마왕'으로 군림하고 있지 않은가. 마왕의 카리스마로 후배들도 지원해주고 메인스트림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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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서재 출판사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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