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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그러니까 2002년 월드컵이 열린 해 날 좋은 가을에 당시의 남자친구(지금의 남편)와 나는 결혼식을 올렸다. 한 해하고도 석달 전 여동생이 먼저 시집을 간 덕택에 나는 허둥대지 않고 차근차근 결혼준비를 해나갔다.

남편과 나는 둘이 모은 돈으로 결혼을 마치고 싶었기에 저금액수와 들어올 축의금을 예상하며 계획을 세워나갔고, 계획은 거의 들어맞아 약간의 이익금(?)도 남길 수 있었다.

그러나 결혼식 비용 이외에 부모님의 지출도 만만찮았고, 축의금을 내신 분들도 나의 지인보다는 부모님 지인이 훨씬 많은건 당연한 일이었기에 남은 돈은 부모님께 모두 드리고 신혼여행을 열심히 다녀온 후 양가에 하룻밤씩 자러 먼저 친정집을 가게 되었다.

친정집에서 결혼식 관련 물건들을 정리하던 중 결혼식날 오셨던 하객들의 이름과 축의금 액수가 적힌 일종의 장부인 방명록을 보게 되었다.

방명록 사이에는 흰봉투들이 주인 필체에 따라 이름 석자와 그 안에 들어있는 돈의 액수들이 적힌 채 두툼하게 끼워져 있었다. 봉투를 한 장씩 넘기면서 이름을 되새기며 ‘아! 누가 오셨었구나’(사실 결혼식 당일은 정신이 없어 누가 왔었는지 자세히 생각나지 않는다) 하고 확인하던 차에 조금은 황당한 봉투 하나를 보게 되었다.

두꺼운 검정 사인펜으로 봉투에 적힌 이름은 '아줌마'. 우리나라 성씨중 ‘아’씨가 있다는 말은 들어 보지 못했고 설사 ‘아’씨가 있다해도 이름이 줌마라는 것은 좀 이상하지 않은가.

어머니 친구 분들 중 한 분인 것 같다고 추측하긴 했지만 그래도 다른 친구분들 대부분은 본인의 이름을 적어놓았는데, 아줌마라고 적어 놓은 봉투를 보니 참으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내가 결혼했다는 사실과 그 아줌마라는 이름을 나도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과 또 이젠 내 이름자보다는 아줌마로 불릴 날들이 더 많아 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왔으며 세월이 오래 지나 어느날엔가는 나도 이 봉투의 ‘아줌마’처럼 내이름을 밝히기보다는 아줌마라는 보통명사에 묻혀서 나 자신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면 기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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