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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전쟁 종료 후 새롭게 세계적 문제로 대두되는 것이 북핵 문제이다. 이 방송 제목이기도 한 '경계도시'인 남한은 이 문제에 대해 가장 가까이 있기에 그만큼 민감하고 적절한 해결방법을 찾아야 한다. 지금의 노 대통령의 방미도 그러한 노력의 하나이다.

이렇게 북핵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이 시점에 KBS가 송두율 교수와 관련된 프로그램을 방송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는 북핵을 위험 요소로 인식하고 제거하기에만 급급해 하지 말고 좀 더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깨우침을 주기 때문이다.

송두율 교수는 재독 철학자로 독일 뮌스터 대학교수이다. 그는 대한민국의 정보기관이 '북한의 고위급 공작원' 즉 '간첩'으로 추정하고 있기 때문에 입국 금지된 상태다. 2000년에 고 문익환 목사를 기리는 기념사업회에서 송 교수를 '늦봄 통일상'의 수상자로 선정했다. 그는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귀국을 추진했으나 꿈에 그리던 고국 방문은 안타깝게도 무산된다.

귀국 무산 후 그는 말한다. "내 움직임은 늘 간파 당한다. 일상이 전쟁이고 긴장이다. 한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다. 어떻게 쉽사리 속내를 비칠 수 있겠는가?" 이 말에 나는 그가 간첩이냐 아니냐의 진실 여부를 떠나서 같은 민족으로서의 동정심이 생겼다. 만약 비록 그가 간첩이라도 떠나간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인간의 공통적인 본능이기 때문이다.

지구상의 마지막 경계 도시,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다. 그 경계인 휴전선은 가시적 경계에 불과하다. 이 나라를 경계 도시라 정의할 수 있는 것은 가시적 경계가 아니다. 지금 자신을 그렌츠겡어, 즉 경계인이라 말하는 송 교수의 존재에 의해 그 경계의 실체가 드러나게 된다. 그 경계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는 남과 북, 송 교수의 사상과 귀국문제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현실, 그리고 그 경계의 중앙에 있는 송 교수를 외면하려는 우리의 모습이 보인다.

송 교수가 남한 사회에서 문제시되고 외면당하는 원인을 살펴보자. 먼저 사상면에서 그의 북한 인식을 들 수 있다. 그는 광주서중과 중동고등학교를 거쳐 1963년 서울대 문리대에 진학한다. 재학시절 그는 시인 김지하 등과 한일회담 반대운동에 참여하면서 사회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다 독일 유학길에 오른다.

하버마스 교수의 지도를 받으며 학위논문 집필에 몰두하여 1972년 철학 박사학위를 받고 서독의 뮌스터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한다. 1987년 이후 학문적인 활동에 주력하여 이듬해에는 북한문제에 대한 새로운 주장을 제기한다. 북한을 그들 자신의 눈으로 바라볼 때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는 이른바 '내재적 방법론'이었다.

이 같은 주장은 당시 국내 학계에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저서나 논문을 실제로 정독하고 살펴보지 않은 나로서는 확실하게 그의 북한 인식을 명확히 정의내릴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을 보고 인터넷을 통해 간접적으로 검토해 본 결과 그를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이며, 권력서열 23위인 김철수’로까지 몰아붙이기에는 정당성이 결여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말 그대로 '내재적 방법론'은 북한 인식의 여러 방법론 중 하나에 불과할 뿐이다. 그는 매우 성실하고 뛰어난 지식인으로 객관적이고 학자의 양심을 가지고 있다. 독일에서의 생활이나 인터뷰, 주변 사람들과의 돈독한 인간관계를 보면 그의 됨됨이나 양심은 의심하기가 어렵다.

두 번째로 그가 외면당하는 이유는 그의 방북이다. 정부는 방북을 계기로 다시 한번 그를 '친북인사'로 규정하고 그를 더욱 주시한다. 유학길에 오른 후 현실적인 제약으로 인해 남한으로의 귀국은 한번도 없었던 반면 10여 차례 방북한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그는 방북 활동에서 남북의 다리 역할을 자임하면서 남북한 해외학자들과 함께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다음으로 독일에서 민주사회건설협의회 활동을 한 것을 들 수 있다. 이는 남한 사회 체제에 대한 반발과 비판의 행동으로 당연히 남한 사회에서는 눈에 거슬리는 행동이 된 것이다. 그는 자신을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이며, 권력서열 23위인 김철수’로 지목한 황장엽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였으며 2001년 8월 23일 그 소송 결과가 나왔다.

송 교수가 김일성을 면담하고 수차례 북한을 방문하는 등 북한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 친북 성향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김철수’라는 주장을 입증할 증거는 없다. 황씨의 주장은 북한 체제의 허구성을 알리려는 의도로 작성된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 점과 황씨가 북한 대남담당 비서인 김용순에게 송 교수가 김철수라는 말을 전해들은 점을 감안할 때 이를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는 있었다고 볼 수 있으므로 손해배상 책임은 없다

이에 대해 두 당사자는 그 후에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내가 송 교수였더라도 이러한 판결에 이의를 제기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한없이 무기력해졌을 것이다.

이 판결에서 간첩여부에 대한 확고한 결정을 내리지 않음으로써 그는 가혹하게도 경계인의 위치조차 상실해 버렸다. 한편 판결에 있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대목에서 도대체 누구를 위한 이익이며, 현재 송 교수의 권위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과연 우리에게 어떠한 이익을 주느냐 하는 것에 의문을 갖게 된다. 위와 같은 어이없는 이유로 인한 모호한 판결에 그 누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 것인가.

송 교수의 말대로 그는 경계인으로서 이분법적 논리에 의해 생긴 ‘경계 도시’에서 객관적 3자일지 모른다. 그의 말대로 그 경계를 허무는 통일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되어야 한다. 한편 그의 방법론처럼 자기 속의 타자로 그 과정을 수행하여 할 것이다. 송 교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현실인식과 북핵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의 방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 경계의 송 교수를 통해 우리는 그 실체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현재 남북의 장벽은 무너지지 않고 있고 우리는 경계에 확실하게 자리잡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장벽을 허물기 위해 그 틈을 이용해야 한다. 그 틈으로 우리는 서로 소통하고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이해해야 한다. 현 시점의 북핵 문제 또한 경계의 틈으로 바라보고 소통을 시도해 봐야 할 것이다. 바로 그 틈에 해결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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