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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로] '코드'란 말의 오만함 PDF
[태평로] '코드'란 말의 오만함 PDF ⓒ 디지틀조선
왜 "이념 논란 없는 대선이 맹목적"이며 "이념의 뒷받침 없는 정책논쟁은 사상누각"인지 그 이유는 나와 있지 않다. 이게 소위 한 신문의 사설을 쓰는 기자의 수준이다.

필자는 이 결론 부분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학자의 '사상'을 한두 개의 단어로 '검증'할 수 있다고 믿는 확신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필자의 이런 확신을 뒷받침해준 것은 이한우 기자가 최근(5월6일)에 쓴 "코드란 말의 오만함"이라는 칼럼이다.

그는 <학술이야기>를 쓰는 기자답게, 대통령의 "코드"라는 말에서 "기호학"부터 시작해서 "80년대 운동권"과 "비밀조직의 암호"까지 끌어온다. (그의 기호학에 대한 설명을 그대로 믿는 독자들이 없기 바란다. 그가 주장하는 기호학의 기원과 기호학에서 사용되는 '코드'라는 개념에 대한 설명까지 모두 오류라는 점을 밝혀두고 싶다. 기호학에서 '코드'는 결코 '암호'라는 의미로 사용되지 않는다.)

나는 이한우 기자가 "코드"라는 용어가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의 인선과정의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지적했기를 바란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을 쓴 것이 잘못이고 어떤 사람을 쓰지 않은 것이 잘못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이한우 기자는 기껏 "아리송한 코드 운운하며 말장난"이나 하고 있을 뿐이다. "책 좀 읽었다고 유세 떠는 행태"를 보이면서 말이다. 국민들 가운데 과연 누가 "코드가 맞는다"는 대통령의 말에서 비밀조직을 떠올리고 기호학을 떠올린단 말인가?

설명하기도 민망하지만, "코드가 맞는다"는 말은 "나와 일하는 방식이 유사하다"거나 "공유하는 부분이 많다"는 의미의 일상적 표현일 뿐이다. 이 용법을 이해하는 데 "운동권"이 왜 나오고 "비밀조직"이 왜 나와야 한단 말인가? 그의 어처구니 없는 상상력은 다음의 주장에서 극에 달한다.

"사실 80년대 전반에 대학을 다녀보지 않은 사람들은 '코드'라는 말이 갖는 무궁무진한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비밀결사를 함께 할 정도의 내밀한 공속감(共屬感)을 나눠갖지 않고서는 어떤 사람에 대해 '코드가 같다'고 말하기 어렵다. […] 문제는 코드 운운하는 사람들이 그 코드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지하 운동을 하고 있다면 코드의 내용을 말하지 않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국민 앞에 정치하겠다고 나온 사람들이 실상(實相)은 숨긴 채 코드가 맞니, 다르니 하며 편가르기를 하는 것은 국민들을 깔보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그는 '코드'라는 단어 안에 대통령의 "무궁무진한 의미"가 담겨 있다고 믿는 모양이다. 역시 그는 '사상검증'의 전도사답게 대통령에게 "코드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말하라"고 요구한다.

독자 중에서는 이한우 기자가 일상적 용어와 학술개념을 혼동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한 신문의 기자라는 사람이 모든 사람들이 다 이해하는 일상적 언어의 용법을 모른단 말인가?

필자가 보기에 이한우 기자의 글이 갖는 기능은 아주 명백하다. 그가 최장집 교수에게 했던 그 방식 그대로, '코드'라는 하나의 단어를 통해서 대통령에게 "비밀결사"와 "운동권"의 음산한 이미지를 부여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독자 그 누구도 '코드'에 그런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 것이므로, 그는 자상하게도 종횡무진 80년대로, 그리고 프랑스로 헤매고 다녀야 했다.

필자는 <조선일보>의 철학에 입각해서 이한우 논설위원의 사상을 '검증'해보려 한다. 그가 최장집 교수의 글에서 불온한 사상을 읽었듯이, 나는 그의 글에서 비논리,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강박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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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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