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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일에 결코 간단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청계천 복원사업의 착공시기를 두고 서울시와 시민단체·전문가간에 밀고당기는 공방이 한창인 가운데 '청계천복원시민위원회'(이하 시민위원회)가 본위원회를 소집해서 서울시의 계획대로 7월 1일 착공을 심의·결의함으로써 청계천 복원사업에 관한 한 서울시와 뜻이 같음을 선언한 것이다.

물론 7월 이전에 교통대책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7월 착공 후에도 문화재 원형복원 등에 대한 시민위원회의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는 일종의 '조건부 수용결정'이라는 형식을 갖추긴 했지만 왠지 석연치 않은 구석이 보인다.

이러한 시민위원회의 석연치 않은 결정을 따져보기 전에 청계천 복원사업의 추진체계가 어떤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서울시 차원에서 청계천 복원사업과 관련된 기관은 세 기구가 있는데, 먼저 행정조직으로서 '청계천복원추진본부'가 있고, 전문지원기구로서는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의 '청계천복원지원단'이 있다. 또 청계천복원사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각계각층의 시민대표 및 관계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민·관 파트너십 기구로서 '청계천복원시민위원회'가 있다.

세 기구 중에 형식적으로는 심의·의결기능을 갖고 있는 시민위원회가 서울시 조례상의 기구로서 제일 중요한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청계천 복원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한 작년 하반기부터 줄곧 핵심적인 내용은 시민위원회가 아니라 '청계천복원추진본부'로부터 나왔고, 그것도 시민위원회의 검토나 의결을 거쳐서 사회화된 것이 아니라 서울시 행정 차원에서 일방적으로 발표되었다.

문제는 그러한 사례가 한두 번의 우연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반복됐다는 데 있다. 이러한 현상이 반복되자 작년말부터 서서히 시민위원회 내에서 "서울시가 행정주도로 너무 앞서 나가는 게 아니냐"라는 볼멘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시민참여분과위원회는 직·간접 이해당사자들의 저항을 대화를 통해 해결하기 위해서 상인들과 수차례의 간담회를 하는 등의 적극적으로 노력했다.

하지만 서울시와 시장은 "대부분의 상인들은 청계천 복원사업을 지지한다"는 아전인수식의 상황판단에 매몰되어, "하늘이 두쪽 나도 청계천 복원공사는 7월 1일에 착공한다"는 주문만을 집요하게 설파했다.

이렇듯 시민위원회의 위상에 반하는 일련의 사건들이 끊임없이 반복되면서 이 문제를 대응하기 위해서 시민단체에서 참여한 몇몇 위원들은 비공식적으로 대책을 강구하는 모임을 갖기도 했지만 결국은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 아니어서 판을 깰 상황은 아니다"라는 것이 그들의 판단이었다. 결국 "내부에서 좀더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결의를 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던 차에 지난 5월 1일 시민위원회는 느닷없이 7월 1일 착공 찬성이라는 카드를 과감하게 들고 나왔는데, 몇 가지 석연치 않은 점에 대한 문제제기를 해보자.

첫째, "7월 1인 착공 전에 교통대책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라"는 조건이 관철되지 않으면, 시민위원회는 7월 1일 착공에 대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 어떠한 결의도 밝히지 않았다.

이 점은 단순히 교통대책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는 분명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미 경찰청에서는 운수업체, 지역주민들의 반발 등을 이유로 청계천 복원과 관련된 교통대책을 새롭게 수립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한다면 시민위원회가 제시한 요구조건은 아무런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

둘째, "7월 1일 착공 이후라도 문화재 원형복원 등에 대한 시민위원회의 의견을 반영하라는 조건"은 그야말로 "조건"이 될 수 없다는 모순이 있다.

7월 1일부터 청계고가 및 복개도로를 걷어내는 공사를 시작하면 청계천 복원사업은 웬만해서는 중단될 리가 없다. 기왕에 시작한 공사를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 설사 막을 수 있다 하더라도 공사를 시작한 후에 중단시키는 것보다도 착공 전에 계획에 반영시키는 것이 훨씬 사회적 비용이 덜 드는 방식이라는 것쯤은 상식에 속한다.

만약에 시민위원회가 광통교와 수표교에 대해서 시민사회와 문화계에서 주장하듯이 원형복원을 요구했을 때 서울시가 그것은 받아들이지 않으면, 시민위원회는 도대체 어떤 이행 강제수단이 있는가? 아니면 그때 가서 복원공사를 중단시킬 수 있다고 보는가?

그 답은 "아니오"가 분명한데, 그걸 알면서도 "조건부 수용결정"을 한 시민위원회의 의도는 과연 무엇인가? 명분쌓기용인가? 아니면 단순히 한번 질러본 것인가?

셋째, 시민위원회로서 "시민들의 의사를 반영한 결정인가?"하는 점이다.

이것은 근본적인 질문이다. 시민위원회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서울시 공무원들의 반발을 설득하기에 바빴다. 그들을 상대하느라 모든 역량을 쏟았다."

달리 말하면, 서울시민들의 생각이 어떠하며, 어떻게 시민들과 함께 청계천 복원이라는 대역사를 함께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고민할 겨를이 없었다는 것이다.

지난 1월에 녹색서울시민위원회가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서울시민 88.8%가 다소 늦어지더라도 전문가와 시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한 후에 공사를 시작해야 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지금까지 서울시가 청계천 복원후의 조감도로 제시한 청사진이 서울시의 기본계획과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시민위원회가 서울시의 손을 들어준 것은 오히려 시민위원회 안에 "시민"이 없다는 자기정체성을 분명히 보여준 결정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렇듯 청계천 복원사업과 관련된 사회적 논란에 대해서 아무런 해결방안을 제시하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서울시의 뜻을 수용한 이번 시민위원회의 결정은 잘못된 것이며, 더 이상 시민위원회는 시민사회와 시민단체를 대표하는 기구가 아니다.

청계천 복원사업은 단순한 물리적, 물성적 변화를 열망하는 수준의 사업이 아니다. 시간적으로는 개발연대 시절의 역사를 단절하고 지속가능한 사회의 실체를 열어나가는 패러다임의 변화이고, 철학적으로는 생산력에 대한 절대적 신봉에서 생명을 존중하는 가치체계의 변화를 예고하는 대역사다.

따라서 단기간의 물리적 변화를 드러내는 토목공사보다는 이 사업을 통해서 시간적으로 영구히 이어질 가치와 의미를 창출하는 쪽에 무게를 두어야 할 일이다. 그 역사적 선택의 기로에서 시민위원회는 보수적 미끄러짐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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