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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내 모습.
회사 내 모습. ⓒ 오마이뉴스 윤성효
마산자유무역지역 안에는 일본에 본사를 두고 있는 (주)한국씨티즌 공장이 있다. 78년 종업원 60명으로 출발한 이 회사는 88년 2900여명에 이를 정도로 호황을 보였으며, 90년대초부터 점차 줄어들더니 94년 200명만 남게 되었고, 지금은 폐업된 상태다. 노조는 '위장폐업'이라며 100일이 넘게 농성을 하고 있다.

공욱석씨.
공욱석씨. ⓒ 오마이뉴스 윤성효
자유무역지역은 한때 우리나라 수출을 주도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외국 자본은 이익이 남지 않거나 노사갈등 등을 겪으면서, 자본을 회수해 가면서 문을 닫아버리기도 한다. 지금은 다국적 기업이 세계 각국으로 손을 뻗치는 시대로, 과연 다국적 기업의 경영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는가에 관심이 많다. (주)한국씨티즌 사태는 이런 차원에서 다국적 기업의 '횡포'를 파악할 수 있는 하나의 사례라 할 수 있다.

(주)한국씨티즌은 2002년 11월 "2003년 1월 31일까지 폐업한다"고 선언했다. 종업원들은 '위장폐업'이라 하지만, 당시 노조 집행부가 폐업에 합의하는 바람에 법적으로도 곤란한 처지에 놓여 있다. 회사와 노조가 '직권조인'을 하고 만 것이다.

2002년 4월 공장장으로 있으면서 경영에 어느 정도 참여하고, 지금은 '한국씨티즌 폐업철회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으로 있는 공욱석(49)씨를 만나, 폐업 과정에서 불거진 사항들을 살펴보았다. 어느 정도 경영에도 참여한 당사자이기에, 그가 받아들이는 다국적 기업의 '횡포'에 대해 느끼는 강도는 일반 종업원과 다르다고 할 것이다.

공씨는 "아무리 다국적 기업이라 하더라도 횡포가 심하다"면서, "경영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경영이 투명하지 않으면, 적자가 난다고 하더라도 종업원들은 믿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그러면서 공씨는 "다국적 기업들이 현지 사람을 경영자로 임명하지만, 이는 경영에 책임을 진다는 차원보다는 그들의 앞잡이 노릇으로 만드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또 "다국적 기업의 우리나라 사장들이라 하더라도 우리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주)한국씨티즌 사태가 벌어진 뒤 한국인 사장과 전 노조 위원장은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기자도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했으나 연락이 되지 않았다.

아줌마 노조원들이 회사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 모습.
아줌마 노조원들이 회사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 모습. ⓒ 오마이뉴스 윤성효
"폐업 오래 전부터 계획한 것으로 보여" 갖가지 증거자료 발견

공씨는 씨티즌 일본 본사가 오래 전부터 폐업 준비를 해왔다고 보고 있다. 구체적인 증거까지 제시했다.

[업무보고내용 서류] 먼저 폐업 이후 사장 집무실에서 찾아낸 "업무보고내용"이란 제목의 서류였다. 거기에 보면 "2003년 3월말까지 폐업을 달성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노력하겠다"면서, "미국 잡화상도 8월말에 불러 영업을 한 사실을 노조에 홍보했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그리고 "경찰서와 노동부, CIA, 자유무역지대 관리원 등에도 이같은 정보를 흘린다"며, "이는 10월말 정도 설명하겠다"고 되어 있다. 이로 볼 때 이 서류는 9월 경에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 회사는 2002년 11월 22일 종업원들 모아 놓은 자리에서 폐업 선언을 했는데, 사장이 작성한 서류대로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외에도 2002년 11월 30일 작성한 "추진전략"도 발견되었는데, 여기에 보면 갖가지 폐업 전략이 담겨 있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경영개선했냐] (주)한국씨티즌은 90년대 말 시계를 월 8~10만개 정도 생산했다. 그런데 점차 줄었고, 새 사장이 들어선 2002년 4월에는 월 7~8만개, 이후에는 월 6만개, 폐업발표 전에는 3만개까지 줄었다. 경영진은 계속해서 적자 타령만 했으며, 임금인상과 시계시장 변화 등을 이유로 폐업의 정당성을 알렸던 것.

공욱석씨는 회사가 경영개선의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시계 생산량에서도 알 수 있듯이, 경영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없었다. 우리는 생산 위주의 공장으로, 영업은 일본 본사에서 해왔는데, 경영에 대한 책임은 일본 본사한테 있다"는 것.

그리고 "회사의 경영이 어렵다는 사실을 종업원들에게 알리고, 대책을 세울 수도 있었는데 하지 않았다. 가령 적자라면 임금을 줄일 수도 있었는데,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누적적자 21억원이 발생했다면서 폐업의 한 이유로 내세웠다.

적자를 보충하는 수단도 정상적인 형태로 진행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 달 생산량에 있어 적자가 발생하면, '다미'라 하여 불량품이 나오게 하여 본사에 보내고, 본사는 그 숫자만큼 지원금을 보내는 형태였다는 것. 이에 대해 공씨는 "적자를 보충하는 방법이 정상적이지 않고, 변칙으로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사장 교체] 이 회사는 2002년 4월 인사를 단행했다. 이전에는 일본인 사장이 있었다. 그러다가 지난해 4월 1일 한국인 전무를 사장으로 승진시키고, 일본인 사장을 부사장으로 임명했다. 이때 공씨도 부장으로 있다가 공장장으로 승진한 것이다. 당시 본사는 이같은 인사에 대해 "한국의 기관과 접촉하는 데 있어 유리하다"는 등의 이유를 내세웠다.

이같은 인사 조치도 폐업 수순을 밟기 위한 차원으로 보고 있다. 공욱석씨는 "폐업을 염두에 두고, 한국에서 나머지 일 처리를 하는 데는 한국인 사장이 유리하다고 보고 인사조치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직권조인] 종업원들은 폐업을 막아야 한다는 취지로 위로금을 '60개월치'를 요구했다. 회사와 당시 노조는 14차 협상까지 벌였으며, 1월 22일 서로 합의하고 말았다. 당시 노조 위원장은 '위로금 20개월'에 합의했다. 당시 조합원들은 "위로금 합의 등에 있어 조합원들의 찬반투표를 거칠 것"을 요구했다.

그런데 전 노조 위원장은 찬반투표 등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합의했다. 당시 노조 위원장은 "단협에는 위로금이 12개월로 명시되어 있어 조금이라도 더 받아야 한다는 취지로 합의했다고 밝혔다"는 것.

조합원들은 전 노조 위원장에 대해 불신을 했고, 선거를 거쳐 새 위원장을 추대했다. 그러면서 한국노총 소속이던 노조는 폐업 단행 후 민주노총 금속노조 소속으로 전환했다. 공씨는 "직권조인이 되었던 것도 회사의 치밀한 계획에 의한 것으로 보여진다"면서, "사장과 전 노조 위원장이 어떤 이득을 보았는지는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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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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