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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9일 안동교도소에서 출소한 손준혁 전 한총련 의장을 어머니 이정자씨가 반갑게 맞이 하고 있다.
지난 29일 안동교도소에서 출소한 손준혁 전 한총련 의장을 어머니 이정자씨가 반갑게 맞이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노무현 정부 들어 첫 한총련 및 시국사범에 대한 특별사면이 있었던 지난 29일 오후 안동교도소 앞. 한 청년이 굳게 닫힌 철문을 열고 그를 마중 나온 이들에게 머쓱한 인사를 건넸다.

활짝 웃음 짓는 그에게 묵은 때를 씻으라는 듯 하늘에서는 굵은 빗줄기가 내리고 있었다. 이내 그의 어머니가 그에게로 달려와 품 안 가득히 와락 끌어 안았다.

"엄마, 고마워요…."

애틋하고도 긴 포옹이 시작됐다. 어머니와 아들은 서로의 등을 두드리며 격려했다. 아들의 고맙다는 인사말에 어머니는 오히려 "아니, 내가 더 고맙다"고 답했다. 아들을 봐도 참겠다던 어머니의 눈에서 빗물처럼 눈물이 흘러나왔다.

수배기간 4년, 징역살이 2년, 모두 합쳐 6년여 만에 모자(母子)의 상봉은 이렇게 시작됐다. 수배 도중 도둑질 하듯 조심스럽게 만났던 몇 번의 만남을 뺀다면 이번이 '떳떳한' 첫 만남인 셈이다.

이날 출소한 손준혁(31. 영남대)씨는 지난 98년 6기 한총련 의장을 지냈다. 그런 그가 긴 수배생활 끝에 공안기관에 잡힌 것이 지난 2001년 5월의 일이었다.

한총련 관련 수배자들이 모두 지켜보는 이들의 심금을 울리는 애틋한 사연은 하나쯤 가질 법 하다. 솔직히 말한다면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이 곳에서 사상과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가족을 만나지 못하고 명절 차례를 갑갑한 캠퍼스 안에서 지내는 학생 수배자의 현실, 그것만으로도 슬픈 얘기이다.

아들이 불효자가 되고만 사연

손준혁(사진 오른쪽) 씨가 마중 나온 선.후배들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왼쪽의 이는 같은 날 특별사면돼 출소한 김경환 전 <말>지 기자의 모습. 그는 민혁당 사건으로 지난 99년 구속돼 이번 사면으로 풀려났다.
손준혁(사진 오른쪽) 씨가 마중 나온 선.후배들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왼쪽의 이는 같은 날 특별사면돼 출소한 김경환 전 <말>지 기자의 모습. 그는 민혁당 사건으로 지난 99년 구속돼 이번 사면으로 풀려났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하지만 손씨의 사연은 더욱 애절했다. 손씨가 구속되기 얼마 전 손씨의 아버지가 담도암 말기로 사실상 '사형선고'를 받았던 것이다.

고 손영상(당시 64세)씨. 기자가 고인을 만났던 것은 지난 2001년 5월경으로 기억된다. 준혁씨가 구속된 후 고인의 암투병 소식을 듣고 그를 만났던 것. 당시만해도 외형으로는 고인이 암투병 환자라는 것을 쉽게 알 수는 없을 정도였다. 그만큼 어느 정도 기력은 있었다. 당시 그는 "아들이 무슨 죄가 있느냐. 사람을 죽인 것도, 도둑질을 한 것도 아닌데. 그저 빨리 풀려 나기만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고인과의 두 번째 만남은 지난 2001년 6월말이었다. 하지만 첫 만남과 달리 경남 양산의 외딴 요양원에서 식이요법으로 연명하고 있던 고인은 앉아 있을 기력마저도 잃어버린 상태였다.

당시 그는 아들을 보고 싶지 않느냐는 물음에 "병 때문에 누워 있는 것 보이면 오히려 걱정만 시킬 것 같아. 뭐 뾰족한 수도 없잖아. 누워 있다는 이야기 들으면 그 안에 갇혀서 걱정만 시키지…."라며 허탈감과 아들 걱정이 앞서는 듯 보였다.

지난 2001년 6월 경남 양산의 한 요양소에서 고 손상영씨가 아들이 보낸 편지를 읽고 있다. 그는 당시 담도암 말기로 투병생활을 하고 있었다.
지난 2001년 6월 경남 양산의 한 요양소에서 고 손상영씨가 아들이 보낸 편지를 읽고 있다. 그는 당시 담도암 말기로 투병생활을 하고 있었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하지만 하루하루 고비를 넘기던 그에게 왜 아들에 대한 그리움이 없었을까. 그는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옆에 내 나이 또래 사람이 입원해 있었거든. 근데 거기 아들이 병간호를 해주고 있더구만. 그 모습 보니깐 왜 그렇게 서럽던지…."고 속내를 털어놨다.

그것이 기자와 고인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고인은 그로부터 약 한 달 후인 같은 해 7월 25일 오전 대구 영남대의료원에서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채 생의 마지막 고삐를 거머쥐고 있다,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아들에게 병 수발을 받고자 했던 그의 소원은 그렇게 물거품으로 끝이 났다. 준혁씨는 같은 날 오후에야 구속집행정지로 풀려났다. 영남대 교수들과 학생 그리고 시민들까지 수많은 탄원서를 제출됐지만 우리 사회가 지닌 최소한의 관용은 죽음 뒤의 아버지와 아들의 만남만을 허락했다.

당시 장례식장에서 상복을 입은 채 만난 준혁씨는 기자에게 "제가 죄인입니다"라는 짧은 말만 남겼다. 그리곤 아버지의 영정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로부터 2년 여의 시간이 지났다. 준혁씨는 대통령 특별사면으로 풀려나 어머니의 품에 안기면서 한껏 웃음 지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평생 아버지에 대한 죄스러운 마음으로, '불효자'로 살아가야 할 그의 상처는 과연 누가 어떻게 씻어 줄 수 있을까. 준혁씨는 출감 후 첫 소감을 묻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징역살이를 했던 사람들은 감방에서 입었던 옷은 안에 두고 나오거나 재소자들에게 남겨 두고 온다 더군요. 하지만 그대로 가지고 나왔어요. 어머니께서 아버지가 입던 옷가지를 몇 벌 넣어 주셨는데 하나도 손을 못 대고 그냥 가지고 나왔어요. 아버지에겐 죄를 지었죠. 물론 제 의도는 아니였지만…. 하지만 저를 지켜주신 그 마음 '내 아들은 정당하다' '구급차에 실려 면회 하지는 않겠다. 아들이 걸어 나올 때 까지 기다리겠다'는 그 고마운 마음에 보답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 결심하고 있어요."

지난 29일 한총련 및 각종 시국사범에 대한 특별사면은 늦은 감은 있지만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일부 기결수에게만 해당된 이번 사면을 두고 '비난'도 없지 않다. 특히 최근 쟁점으로 떠오른 한총련 관련 수배자 문제에 대한 해결은 그만큼 뒷걸음쳤다.

한총련 문제를 두고 혹자는 '문명사회의 수치'라고 표현하며 해결을 요구하는 반면 또 다른 이들은 '죄를 지은 만큼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대응한다.

하지만 그 '죄'가 무엇인지 우리는 지금쯤 다시 생각해야하지 않는가. 아니! 생각해야만 할 시간이 오지 않았나. 바로 그것이 제2, 제3의 '불효자' 손준혁를 만들지 않는 길은 아닐까. 그들의 '죄'보단 그들에게 주어진 상처가 너무 깊지 않았나. 우린 이 아픔들을 너무 소외 시키지는 않았나.

"한총련 해법, 말만 아닌 정치적 결단을 내려야
어머니가 해주신 따뜻한 밥 먹고 싶어"
[인터뷰] 특별사면으로 출소한 손준혁씨

▲ 출소한 손준혁씨
ⓒ오마이뉴스 이승욱
- 출소한 소감은?
"이제 정말 나온 것 같다. 근데 부담이 많다. 재판 중인 한총련 10기 의장이 있다. 물론 근래에 긍정적인 반응 특히 핵심당국자들, 대통령이나 법무부장관 등의 반응이 긍정적이긴 하지만 그런 반응만으로는 한총련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정말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 핵심당국자들이 언급했듯이 정말 결단을 내려 한총련이 자유로운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해줘야 하지 않는가."

- 한총련 문제가 쟁점이 되고 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 것으로 생각하나.
"법률적으로 어떻게 푸는가 하는 문제는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이상 어렵지 않겠는가. 하지만 당국자들의 의지가 있다면 국민과의 대화 속에서 한총련이 정말 이적단체인가 아닌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법률적인 해결책을 모색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생들과 대화하고 남북관계가 변화된 만큼 현실을 직시해서 (국가보안법 등) 법개정 문제와 함께 풀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 한총련이 최근 들어 더욱 내부개혁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또 발전적인 해체까지 공언하고 있는데…. 전 한총련 의장으로 이런 흐름에 대해서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
"한총련이 자기의 문제를 가지고 스스로 결정하고 개혁과 혁신의 방향을 찾아가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외부적인 압력, 예를 들어 이적규정 문제나 여러 가지 탄압을 피하는 방법으로 받아들인다면 다시 한번 생각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근래의 반응은 시대의 변화에 발 맞춰 가는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한다."

- 이번 사면에 대한 느낌을 이야기한다면….
"법률적인 개념은 잘 모르지만 사면이라고 하는 것은 형을 확정 받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행하는 대통령의 조치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미결수가 제외 됐다고 하는데. 사면이라고 하는 것은 법률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현재 법률이 현실이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 하는 것이 아닌가. 당연히 미결수나 수배자들에게도 그러한 조치가 내려져야 하지 않는가. 나의 바람은 10기 한총련 의장의 재판에서 10기 한총련이 이적단체가 아니라는 판결을 내려 줄 것을 요구하고 싶다. 그렇게 한다면 한총련 문제를 풀어 가는 좋은 단초가 되지 않을까. 우선 대법원에서 한총련10기에 대한 판례를 남기기 위해 정부와 재판부가 결심해야한다."

- 앞으로 계획은?
"일단 어머니한테 잘해야 할 것이다. 학교를 졸업 못했기 때문에 1학기 정도 학교를 더 다녀야 하고. 또 한총련 합법화와 국가보안법, 아직까지 갇혀 있는 양심수와 정치수배자들을 위해 조금이나마 힘을 보탤 것이다."

-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웃음) 집에 가서 어머니가 해주시는 따뜻한 밥을 먹고 싶다." / 이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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