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풍속의 역사
풍속의 역사 ⓒ 강곤
“복장이란 원래 그 시대정신이 베어 있는 육체를 다시 그 시대정신 속에 집어 넣는 거푸집 같은 것이다” 란 푹스의 조금 어려운 말이 아니더라도 (몇몇 그러기를 거부하는 이들도 있지만) 우리는 옷이 자신을 표현하는 매우 효과적인 수단임을 잘 알고 있고, 옷이 그것을 입는 개인 뿐만 아니라 그 개인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 문화적 관계의 산물임에 은연중에 느끼며 대개는 그에 충실하게 옷을 입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을 비롯한 그 많은 국회의원들은 왜 그토록 유시민 의원의 옷차림에 분노했을까. 그들이 고집했던 싱글 정장에 넥타이는 대체 무엇을 표현하고 있으며 어떤 관계의 산물인가.

한때 대학생들의 필독서였다는, 지금은 그 제목도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잊혀진 지 오래인 에두아르트 푹스의 기념비적 대작 <풍속의 역사>는 이러한 질문에 명쾌한 대답을 해주지는 않지만 복장을 비롯해 연애와 결혼, 음식과 광고 등 온갖 사회 생활을 둘러싼 잡동사니들에 대한 관계와 그 배후에 깔린 의도들을 꼼꼼히 추적해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들에 대한 이해를 도와준다.

다시 옷 얘기로 돌아가보자. 절대왕정 시기 귀족의 복장은 길수록 권위를 나타냈다. 얼마나 불편한가 하는 것이 바로 얼마나 많은 종을 거느리고 있는가를 말해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르주아 시대에 접어들자 실용적이면서도 획일적인 복장이 등장하게 된다. 부르주아들은 자유롭고자 했고 또 자유롭게 산책하고 테니스를 쳤다. 무엇보다도 공장이 아니라 사무실에서 바쁘게 돈을 벌어야 했으므로 복장이 거추장스러워서는 안 됐기 때문이다.

또 그들은 귀족도 노동자도 아닌 부르주아란 사실을 굳이 자신의 입으로 말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알아주길 원했으므로 당연히 그들의 복장은 획일적으로 통일 되어갔다. 물론 이것이 모든 부르주아가 같은 디자인, 같은 색의 옷을 입었다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복장의 재질이나 양복의 단추 개수, 혹은 넥타이의 크기와 색깔 같은 차이를 통해서 고급과 저급이 나누어졌으며 당연히 이때부터 유행이라는 것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유행은 끊임 없이 변화했고 그 변화는 부르주아에게 자본을 안겨주었다.

이렇게 본다면 옷이란 역사적인 산물이며 매우 복잡한 전통과 문화의 유산이다. 하기에 우리는 국회의원들의 분노가 너무나 당연하며 그것이 동류의식, 혹은 또래집단에서 갖게 되는 편가르기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지난 시절 유럽의 부르주아가 넥타이 대신에 머리를 따았다거나,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이 영국 법관 마냥 (우리나라 사극에 나오는 여인네 같은) 대형 가발을 쓰고 있지 않는 것이 그나마 다행일지도 모른다.

이것이 대략적으로 <풍속의 역사>가 밝히고 있는, 현재 싱글 양복에 넥타이를 맨 정장의 기원쯤 되는 부르주아 복장의 역사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책의 내용이 부르주아의 옷차림 따위에 대한 고찰 정도로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사실 이 책의 대부분은 성에 대한 풍속이며 하기에 이 책에 대한 가장 간결한 설명은 “성풍속의 사회경제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광고와 드라마 속의 복장에 따라가며 거의 지배를 받는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장점은 무엇보다 지금으로 치면 드라마 주인공의 옷차림에 대한 역사가 아니라 그 옷차림을 따라 하고자 하는 무수히 많은 소비자, 대중에 대한 역사라는 점이다.

풍속의 역사 1 - 풍속과 사회

에두아르트 푹스 지음, 이기웅 외 옮김, 까치(2001)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기억과 기록에 관심이 많다. 함께 쓴 책으로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 줘>, <여기 사람이 있다>, <나를 위한다고 말하지 마>, <다시 봄이 올 거예요>, <재난을 묻다>, <말의 세계에 감금된 것들>이 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